“차라리 목을 비틀어다오!” 매에게 붙들린 비둘기의 비명 [수요동물원]

정지섭 기자 2024. 2. 1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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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갈대꽃인줄 알았더니 매에게 뽑힌 비둘기 깃털
자신보다 덩치 큰 새 사냥한 뒤 산채로 깃털뽑아
매, 조롱이, 말똥가리 등 중소형 맹금류의 사냥법이 대형종보다 더욱 잔혹
새매가 찌르레기를 덮친 뒤 깃털을 뽑기 시작하기 직전의 모습./John Cox Youtube

산들바람이 일렁이는 고요한 숲속. 바람에 흐느적거리던 가녀린 잎사귀가 풍성해집니다. 민들레 홀씨인지 눈꽃인지 모를 희고 뽀얀 꽃술이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날아와 키작은 들풀의 잎과 가지에 들러붙습니다. 꽃술은 점차 풍성해지고, 갈대숲과 억새풀을 심어놓은 듯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푸르름을 머금은 여름과 늦가을의 정경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드문 장관이에요. 이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진 곡절은 그러나 섬뜩하고 끔찍합니다. 포식자의 살육본능이 만들어낸 광경이거든요. 오늘의 동영상(USFWS Columbia Pacific Northwest Facebook)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들풀에 나붙은 꽃술은 사실은 비둘기의 깃털입니다. 방금까지도 숲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구구구구’ 지저귀다가 개구리매에게 붙잡혔어요. 개구리매는 비둘기를 덮친 뒤 가슴팍을 덮고 있던 눈빛의 새하얀 깃털부터 뽑아내기 시작했어요. 그래야 살점을 뜯어먹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뽑힌 깃털이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날아가다가 들풀에 달라붙어 꽃술·홀씨·억새꽃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 겁니다.

개구리매가 비둘기를 잡은 뒤 뽑아낸 깃털이 바람에 흩날려 주변 잎에 붙어있다./USFWS Columbia Pacific Northwest

수십개의 깃털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순간, 비둘기의 맨살이 드러나고 개구리매의 거침없는 식사가 시작됩니다. 연회색 비둘기의 색깔이 점차 붉은 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미국 오리건주의 숲속에서 촬영돼 연방 어류 야생동물국 페이스북에 얼마 전 게재된 이 동영상을 설명하는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이것이 자연이다(This Is Nature)’. 중소형 맹금류들이 몸집에 걸맞지 않은 무섭고 잔혹한 사냥꾼이라는 걸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죠. 안쓰러운 일이지만, 저 가련한 비둘기는 개구리매의 식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까지 정신이 또렷했을 공산이 큽니다. 이 냉혹한 장면 속에 중소형 맹금류들의 전형적인 새 사냥·포식 매뉴얼이 들어있습니다.

줄무늬새매에게 사냥당한 찌르레기가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CornellLab Project FeederWatch

실로 많은 새들이 육식을 합니다. 백로·왜가리·까마귀·갈매기·펭귄 등이 죄다 육식조류예요. 그럼에도 맹금류(Birds On Prey)로 정의되는 종류는 크게 수리·매류와 올빼미류입니다. 갈고리같은 발톱과 날카로운 부리로 살점을 찢어먹는 새들을 통칭하죠. 좀 더 좁은 의미의 맹금류는 역시 새들의 제왕이라 일컬어지는 수리·매류입니다. 수리·매는 크게 세 파벌로 구분지어집니다. 엄청난 몸집으로 위압감을 자랑하지만, 죽은 사체에 연명하는 스케빈저인 벌처(vulture·대머리수리)가 있고요. 엄청난 파워와 피지컬로 큼지막한 사냥감들의 숨통을 단숨에 끊는 이글(eagle·수리)이 있어요. 이들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중·소형 맹금류를 통칭해서 매(hawk)라고 합니다. 매의 카테고리에는 정말 많은 중·소형 맹금류들이 있는데, 대부분 ‘~수리(~eagle·~vulture)’로 끝나는 대형종과 달리 이름이 제각각이예요. 그건 영어 뿐 아니라 우리말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새가 사냥한 비둘기의 깃털을 뜯으면서 본능적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bushcraftuk.com

예를 들어볼까요? 새매(sparrow hawk)·조롱이(falcon 또는 kestrel)·송골매(peregrine)·개구리매(harrier)·솔개(kite)·새호리기(hobby)·말똥가리(buzzard)·물수리(osprey)... 이렇게 많습니다. 중소형 맹금류들은 대개 신출귀몰하는 활공술과 놀랄만한 스피드를 앞세워 사냥에 나섭니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조롱이의 사냥술을 예로 들어볼까요? 몸길이 최장 50㎝, 날개 펼친 길이는 1.2m인 이 새는 공중으로 치솟아 선회비행을 하면서 자신보다 낮은 고도로 날고 있는 새를 공략합니다. 비둘기·종다리·어치·찌르레기 등이죠. 목표물을 포착하면 수직에 가깝게 돌진합니다. 순간 속도가 시속 340㎞까지 치솟으며 몸뚱아리 자체가 거대한 탄환이 됩니다. 타깃이 된 새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채 땅바닥으로 내리꽂힙니다. 속도와 비행방향 등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을지언정 조롱이·말똥가리·솔개·새호리기 등이 이런 방식으로 사냥합니다.

매에게 사냥당한 비둘기의 사체가 처참하게 널브러져있다./World Animal Foundation

먹잇감이 쥐처럼 몸집이 작은 먹잇감이라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공격 즉시 그자리에서 절명하며 고통없이 생을 마무리하거든요. 문제는 대등한 몸집을 가진 새들이 습격당했을 때예요. 사냥꾼은 거칠게 최후의 저항을 하는 먹잇감들을 단숨에 제압하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을 담은 동영상(Babyhawk Facebook)을 잠깐 보시죠. 자신의 몸뚱아리보다 훌쩍 큰 해오라기를 사냥한 뒤 숨통을 끊지 못해 애먹고 있는 모습의 매입니다.

대개 자신보다 몸집이 비슷하거나 혹은 큰 먹잇감을 사냥한 중소형 맹금류는 과감하게 선제적 행동에 나섭니다. 바로 깃털뽑기(feather plucking)입니다. 누가 포식자이든 새를 먹기 위해서 깃털뽑기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예요.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덩치에 맞먹는 새를 덮친 중소형 맹금류들은 먹잇감의 처절한 저항 속에서도 서둘러 깃털을 뽑기 시작합니다. 포식자는 먹잇감의 숨통을 끊을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피식자는 자신을 덮친 포식자를 떨쳐내고 도망가기에 힘이 3%쯤 모자랍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채로 털뽑기’가 시작돼요. 놈들은 먹잇감의 거친 날갯짓과 절규나 다름없는 지저귐에도 아랑곳않고 부리를 신경질적으로 움직이며 깃털을 숭숭 뽑기 시작합니다.

말똥가리가 사냥한 새를 먹으면서 깃털을 제거하고 있다./Protect The Wild

이 가련한 먹잇감은 자신의 몸에 내려앉은 괴수가 부리를 꽂고 자신의 금은보화 같은 털을 뽑아 공중으로 흩날리는 과정을 두눈을 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고통보다 더 한게 공포일 겁니다. 헤벌린 부리와 그렁그렁한 눈망울에는 공포와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이 가혹한 게임의 승패를 뒤바꿀 수가 없다면, 차라리 먹잇감이 고통없이 삶을 마치게 해주는게 최소한의 자비일 듯 해요. 그래서 포식자의 발톱에 붙들린 새들은 종류에 따라 각자 다른 울음소리를 내고 있겠지만 이를 해석하면 뜻은 한결같을 겁니다. “아프다…제발…제발…날 잡아먹어도 좋으니 차라리 내 목을 비틀거나 분질러다오.”

중소형 맹금류들은 대형 수리류를 능가하는 흉포한 포식자이자 사냥꾼이다. 정면에서 근접촬영한 물수리의 모습./Oakland County Blog

하지만, 이런 절규가 포식자의 뇌리에 전달될리 만무합니다. 그런 자비를 베풀만한 이성이나 지능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발버둥거리는 먹잇감의 깃털을 우두둑 뜯어내는 중에도 머리를 쳐들고 주변을 홱 돌아보며 경계하는 그 눈빛에선 냉혹한 킬러의 본능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기적처럼 포식자의 발톱을 밀어내고 목숨을 구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집니다. 그러나 대개는 포식자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우아하고 고상한 깃털이 뽑히고 맨살이 드러나더니 일순간 파헤쳐지며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죠. 그건 마치 1대1 격투기 게임에서 패배가 가까워져올 때 기다란 바(bar)가 점차 붉은 색으로 물드는 장면을 연상케도 해요. 이 처절한 사냥의 현장은 그래서 뒷마무리까지도 눈뜨고 없을 정도로 처참합니다. 배를 채우고 날아가버린 자리에는 뽑혀나간 깃털과 남은 몸뚱아리가 널브러져있습니다. 아무리 ‘이것이 자연’이라지만, 왜 이리도 잔혹한 걸까요?

지상최대의 맹금류로 알려진 안데스 콘도르. 그러나 여느 맹금류보다 발톱과 부리가 무딘 편이어서 사냥을 하지 않고 사체를 찾아 먹는다./San Diego Zoo

그렇다고 중·소형 맹금류들보고 ‘네놈들 거 좀 덜 잔인하게 사냥할 순 없느냐’며 힐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들이 수십만년을 통해 이어온 생활 방식입니다. 다만 이토록 잔인한 사냥법을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맹금류에게만 전매특허로 부여한 자연의 균형감엔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맹금류 중 가장 위압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놈은 안데스 콘도르입니다. 머리에서 꼬리끝까지 몸길이는 1.3m에 이르고, 두 날개를 펼친 너비는 무려 3.2m에 달합니다. 경비행기라고 해도 무방할 사이즈입니다. 그런데 이 압도적 사이즈를 가진 안데스 콘도르의 주식은 이미 죽어서 썩어문드러지고 있는 사체입니다. 산 짐승을 사냥하기에 발톱과 부리는 무디기 그지 없고, 기류를 타고 최소한의 날갯짓을 하는 비행방식으론 고공강습식 고속비행은 엄두도 못냅니다. 만일 안데스 콘도르가 중·소형 맹금류식의 사냥법을 구사했다면 어땠을까요? 현대판 익룡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겠죠? 안데스 콘도르에게 사냥당한 먹잇감에 사람이 포함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새매·솔개·황조롱이 무리의 날개폭이 5㎝만 길었어도 지구상의 생태지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입니다. 맹금류에게 ‘사냥솜씨’와 ‘사이즈’를 동시에 부여하지 않은 균형감각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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