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이뼈 골절상서 복귀...발레리노 임선우 “춤이 좋아서 포기하지 않았다”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2. 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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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빌리’ 출신, 로잔 콩쿠르 수상 등
유니버설발레단 드미솔리스트 임선우
2020년 골절상 후 3년 반 만에 완치
16~18일 ‘코리아 이모션 정’ 무대에
“어떻게든 다시 춤추려 포기 안했다...
글 쓰고 블로그 소통하며 불안 견뎌”
2020년 정강이뼈 골절상 이후 3년 반 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무대로 돌아오는 유니버설발레단 드미 솔리스트 임선우. 이승환 기자
‘봄을 품던 단단한 겨울나무는 이제 꽃을 피울 준비를 마쳤다.’

지난 2022년 3월, 당시 복귀 무대를 마친 유니버설발레단 드미 솔리스트 임선우(25)는 결연했다. 앞서 2020년 여름 연습 도중 ‘뚝’ 하고 부러졌던 정강이뼈가 완전히 붙었다기엔 다소 일렀지만, 춤이 너무 간절했다. ‘춤추는 헤르만 헤세’라는 필명으로 블로그도 운영 중인 그는, 복귀 첫 무대의 여운과 의지를 꾹꾹 눌러 담아 ‘다시 춤을 추겠다’고 썼다. 그러나 통증은 계속됐다. 반년 만에 다시 휴직서를 써야 했다. 그로부터 또다시 1년 3개월이 지났다. 골절상 이후로 총 3년 반, 그가 16~18일 두 번째 복귀 무대를 앞두고 있다.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릴 유니버설발레단의 ‘코리아 이모션 정’ 공연이다. 완치 판정을 받고, 마침내 꽃피울 때가 왔다.

최근 연습실에서 만난 임선우는 “엑스레이 사진에서 금 없이 딱 붙어있는 뼈를 보고 울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불과 두 달 전, 지난 12월 중순의 일이다. 그를 괴롭히던 통증도 사라져 점프도 뛸 수 있게 됐다. “부상 이후 3개월 혹은 6개월 마다 엑스레이를 찍었으니까 정말 많이도 찍었어요. 조금씩 좋아지긴 해도 매번 금이 가 있어서 속상했는데 연말에 가보니 감쪽같이 붙어있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죠.”

임선우는 이후 발레단원들의 휴식기였던 1월 내내 텅 빈 연습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는 “하도 오랜만에 몸을 쓰니 근육통은 있다”면서도 “컨디션은 아주 좋다”고 했다.

6세에 발레를 배우기 시작해, 11세에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국내 초연 당시 주인공 빌리 역할로 활약했으며, 18세에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수상한 천상 무용수. 그런 그가 21세에 골절상을 입었다. 춤에만 집중하고 싶어 대학 진학을 마다하고 발레단에 입성했는데, 긴 휴직은 그의 계획에 없었다. 불면증을 앓았다. 밤마다 아픈 다리를 만지면서 ‘혹시라도 낫지 않으면’이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1대 빌리 출신이자 유니버설발레단 드미 솔리스트로 활약 중인 발레리노 임선우(25). 스물한 살에 정강이 뼈 골절상을 입은 그는 “어릴 땐 춤추는 게 마냥 신났다면 이젠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싣게 된다.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승환 기자
좌절과 불안에서 그를 구해준 건 글쓰기였다. 발레단 활동과 병행하려 세종사이버대 문예창작과에 지원해뒀는데, 뜻밖에 휴직 기간 중 수학했다. 특히 책 ‘마음 쓰는 밤’ 등을 낸 고수리 작가의 에세이 수업을 들으면서 블로그를 개설해 글을 썼다. 무용수와 관객이 아닌, 작가와 독자의 관계로 세상과 소통하게 된 것이다. “글을 쓰면서 위로받았어요.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었고요. 밤에 잠이 안 오고 걱정이 깊어질 땐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보면서 힘을 냈죠.”

임선우는 ‘춤이 왜 좋냐’는 질문을 받으면 빌리 엘리어트가 그랬듯 “그냥 좋다”고 답하곤 했다. 그때 춤은 마냥 기쁘고 신나서 추는 것이었지만, 이제 춤은 그의 성장과 함께 ‘희로애락’의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이번엔 그에게 ‘여전히 춤이 좋으냐’고, ‘자신을 아프게 한 춤이 밉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어리석은 물음이었다. 그는 “춤이 좋아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시 추고 싶으니까 휴직을 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늘 발레만 보고 살았죠. 그러다 다치고 나서는 이것저것 보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도 바뀌었어요. 지금은 춤을 대하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동작 하나하나 한 번 더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춰보려고 해요.”

그에겐 글을 모아 출판하거나, 창작 안무를 완성해 한 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목표가 새로 생겼다. 앞선 로잔 콩쿠르 수상 이후 ‘파리오페라발레에 입단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던 그는 “여전히 해외 진출 기회가 있다면 도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결코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의욕을 앞세우기보단 자신을 살피는 데 집중해야 한단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부상의 원인이 됐던 ‘앙트르샤 씨스’(공중에서 발을 좌우 3회씩 교차하는 동작) 등 고난도 기술에 대한 심적 트라우마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는 “올해 만큼은 제 몸에 적응하려 한다”며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으며 다치지 않고 춤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부상으로 두 번의 휴직 후 복귀를 앞두고 유니버설발레단 창작 발레 ‘코리아 이모션 정’의 한 장면을 연습하는 드미 솔리스트 임선우.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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