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은 어느 별에서 살기에 이 천박한 인식을 현실이라고 우길까('커플팰리스')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4. 2. 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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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성공하면 아이돌 팀 멤버가 되는 서바이벌과 같을 수 없다(‘커플팰리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불쾌함도 재미가 될 수 있을까. 고자극 '결만추'(결혼을 위한 만남 추구)를 내세운 엠넷의 연애 예능 <커플팰리스>는 스토리 대신 스케일을 택한 연애 예능이다. 아니, 이 프로그램을 연애 예능이라 하기엔, 연애 과정은 과감히 건너뛴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100인의 선남선녀가 결혼이란 목적 아래 스튜디오로 모였다. 결혼정보회사를 콘셉트로 내세운 만큼, 서사와 캐릭터 대신 남자는 직업과 연봉, 자산이란 스펙을 프로필로 삼고, 여자는 외모를 경쟁력으로 삼는다.

1,2화에서는 100명의 대규모 미팅이 이뤄졌는데, 착석 기준부터 난감하다. 여성 출연자들은 솔로 기간이 오래된 순서로 1번부터 50번까지 번호를 부여받고 앉아 있고, 남성 출연자들은 회전초밥집의 컨베이어벨트에 오른 마냥 런웨이를 한 바퀴를 돌고 난 뒤, 3명씩 조를 이뤄 등장해 결혼 조건, 외모, 스펙 순으로 매력을 발산하며 선택을 기다린다.

안 그래도 등장인물이 많아 혼잡한데, 보면 볼수록 혼란함이 가중된다. 이것이 진정한 현실인 것일까. 결혼이 스포츠였던 것을 못 깨닫고 살았던 것일까. 연애 예능은 대표적인 비대본 콘텐츠지만 핵심은 드라마라는 데 있다. 현실에서 건져 올린 입체적이고 생생한 출연자들이 흥미진진한 배경과 서사, 감정선의 변화로 꽉 채워진 오늘날의 로맨틱코미디, 로맨스물이다. 즉, 현실성은 있지만 전형적이지 않고, 판타지를 불러오는 동시에 인위적인 맛은 빠진 캐릭터가 그려낸 서사물이 빚어내는 재미다. 이 점이 어떤 소재와 설정, 자극의 강도를 갖든 연애 예능의 공식이었다.

그런데 <커플팰리스>는 스케일로 인해 애초에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감정선이 아니라 '초이스'의 영역이다. 그마저도 지상파 주말드라마의 가족관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와 젊음이란 도식을 1차원적으로 내세우고 평균을 무척 상회하는 조건들을 통해 넘사벽의 판타지를 만들려 한다.

물론 가치 충돌도 있다. 남자의 경쟁력을 자산이냐 외모냐의 선택은 1,2화의 주요한 주제였다. '걸어 다닐 남자 원해요. 다른 남자와 비교 싫어요.'라는 남성 출연자의 결혼 조건이 나오자 MC 유세윤은 아마 자가 차량 없는 사람일 거라고 하고, 그러자마자 호감을 표현하는 여성 출연자들의 파란 불빛이 우수수 꺼진다. 옆 출연자가 자신 연봉만한 시계를 차고 있다는 비교나, 강남 산다는 이야기로 교감을 이루는 데이트 장면을 굳이 그 수많은 촬영분 속에서 포인트로 집어낸다. 부모 두 분 모두 치과의사, 연봉이 얼마인 치과의사라는 조건이 나가면 무조건 여성분들이 좋아할 거라고 커플매니저들은 흥분하고, 연봉 3천 연극배우의 연봉과 직업이 공개되자 파란불은 0표로 떨어지고, 커플매니저들은 여성들이 볼 때 이게 현실이라고 다시 한 번 입을 모은다.

스펙과 함께 내세우는 결혼 조건 또한 엠넷 특유의 자극 강한 MSG 장치다. 화려한 스펙과 도회적인 외모 위로 '아이 낳지 않을 분 원해요.', '결혼 후 살림할 여자 원해요.', '아이 네 명 이상 원해요.', '제사 6번 원해요.', '엄마처럼 챙겨주는 연상녀 좋아요.' 등 <나는 솔로>에서 나왔어도 '경각심'을 가질 만한 결혼관을 '조건'으로 내걸며 자극을 주입한다. 첫 만남 데이트에서 여성분에게 다짜고짜 솔직히 날씬한 건 아니라면서 살 뺄 의향을 물어보는 출연자나, (여자가) 밥을 잘하면 좋다.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저녁밥 안 차려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출연자의 인터뷰 영상을 개인 의견이라고 자막을 달면서까지 굳이 내보낸다. 그 의도는 뻔하다.

연애 예능에 대해 "연애부터 미래 가능성까지 무수한 것을 포기한 N포 세대의 그림자를 바탕으로 한다"는 일각의 분석도 일면 일리가 있지만 2024년도 달력을 쓰는 현재는, 해석이 달라져야 한다. 2017년 채널A <하트시그널> 이후 이른바 현재 연애 예능이라 부르는 장르가 흥행한 이유는 이야기의 힘에 있다. OTT가 사랑하는 비대본 콘텐츠의 대표 장르지만, 결말부터 그 과정까지 벌어지는 '서사'에 몰입한다. 그리고 그 몰입의 단초가 리얼리티이며 장면 장면을 이어주는 호흡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선이다.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고 작법도 경험이 쌓이며 그 수준이 올라갔다. 대중의 눈높이도 당연히 높아졌다. 오늘날 대중이 연애 예능의 서사를 즐기는 방식은 판타지나 대리만족적 체험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을 그 안에 대입해보거나, 출연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관계에서의 배움과 인간다움의 영감 혹은 반면교사를 얻기도 하는 등의 일종의 사회실험과 같은 학습의 효용이 크다.

<커플팰리스>는 잘 알려졌다시피 '결정사'를 키워드이자 프로모터로 삼는다. 그런데 결혼정보회사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듀오가 20~30대 미혼남녀 총 300명(남자 150명, 여자 150명)을 대상으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관련 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52%였는데, 그 주요한 평가 이유는 '현실성이 떨어져서'(35.3%),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30.1%),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겨서'(19.9%) 순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세 가지를 기반으로 기획한 것이 <커플팰리스>다.

<커플팰리스>는 연애 예능이 다시 한 번 활기를 얻는 지금, 스토리보다 스케일을 택한 색다른 시도가 보여 흥미로웠다. 그런데 오늘날 대중들이 연애 예능에 과몰입하고 마음을 쓰는 이유와 너무나 동떨어진 해답을 가져왔다. 연애 예능의 동력은 현실을 담보한 새로운 서사인데, <커플팰리스> 출연자들에게 해놓은 너무나 짙은 화장은 리얼함에 대한 상징적 답변으로 느껴진다. 자꾸, 결혼의 현실이라는 강조를 하는 데, 이 쇼가 생각하는 현실의 준거집단은 과연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결혼을 스포츠 토너먼트, 혹은 아이돌 서바이벌쇼처럼 접근하는 현실이 통할만한 보편성인지 의문이 든다.

콘텐츠의 신선함 측면에서나 결혼에 대한 사회적 담론 측면에서나 너무나 고루하고, 솔직히 천박하다. 한 참가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지만, 결혼은 성공하면 아이돌 팀 멤버가 되는 서바이벌과 같을 수 없다. 안대를 찬 경주마처럼 인생의 동반자, 한 가정의 씨앗이 될 행복의 조건을 외모와 스펙으로 한정 짓고 결혼을 성공의 한 조건으로 삼으며 경주하고 경쟁하는 화려한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인위적으로만 느껴진다. 이 쇼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하지만 <커플팰리스>이 당면한 가장 '속 시원한' 현실은 0%대 시청률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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