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시 1년 지났는데 ‘통신시장 경쟁’은 공염불… 정부 ‘단통법 폐지’ 카드에 통신업계 “효과 글쎄”

윤진우 기자 2024. 2. 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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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 ‘2024년 주요정책 추진계획’ 발표
지난 1년간 가계 통신비 인하 1400원 축소 그쳐
디지털 기반 민생 안정으로 ‘단통법 폐지’ 등 추진
단통법 없애 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 촉진 집중
할인 정보 빠른 특정 소비자만 혜택 받을 수도
전체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에는 효과 없을 듯
서울 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 앞 홍보 문구./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2월 ‘통신 시장 과점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가계통신비 지출은 1년간 1%(1400원·지난해 3분기 기준) 줄어드는 데 그쳤다. 대안으로 내놓은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 폐지가 경쟁 유도, 가계통신비 완화에 얼마나 효과가 나타날지 의문이다.”(A 통신사 한 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3일 ‘2024년도 주요정책 추진계획’을 통해 단통법 폐지 카드를 공식화했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민생 안정을 위해 5G(5세대 이동통신) 요금제 최저 구간을 기존 월 4만원대에서 3만원대로 낮추는 5G 요금체계 개선과 단통법 폐지, 제4 이동통신사 시장 안착 지원, 플랫폼 상생 협력 강화 등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 단통법 폐지 일부 소비자만 혜택… 가계통신비 완화 효과 낮을 수도

단통법 폐지 필요성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계는 대부분 동의하는 모양새다. 통신사가 보조금을 경쟁적으로 지급하는 시장 경쟁이 시작될 경우 휴대폰 구입 비용 자체가 떨어질 수 있어서다.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전체 보조금 자체가 줄어들면서 통신사들의 수익성만 개선됐다”면서 “자율 경쟁을 통한 경쟁 활성화 측면에서는 단통법 폐지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할인 등 마케팅 정보에 어두운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휴대폰을 구입하게 되는 단통법 폐지 부작용에 대해서는 별도 제도로 보완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신사가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법으로 제한하는 단통법 취지 자체가 세계적인 추세와 맞지 않다”라며 “보조금 차별 지급 같은 부작용도 다른 제도를 통해 보완할 수 있는 만큼 단통법 폐지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했다.

다만 단통법 폐지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통신사가 경쟁사 고객을 뺏어오기 위한 ‘번호 이동’에 보조금을 집중할 경우 할인 정보에 빠른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받으면서 전체 가계통신비 인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통신사가 마케팅비를 특정 소비자에게 집중해서 가입자를 뺏어오는 게 통신 시장 독과점 체제를 해소하고 가계통신비를 낮출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했다.

◇ 가입자 뺏기 경쟁 없을 듯… 분리공시제로 보조금 자체 늘려야

통신업계는 단통법 폐지에 따른 가계통신비 완화 효과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휴대폰 가입 회선이 5616만명(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체 국민 수를 넘어선 상황에서 돈이 되는 5G(5세대 이동통신) 가입자 수도 3280만명으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굳이 마케팅비를 쏟으면서 가입자를 뺏어올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마케팅비를 쏟아 가입자를 데려와도 수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만큼 이전과 같은 보조금 경쟁이 일어날 확률이 낮다”라며 “약속한 보조금을 실제로 지급하지 않는 불완전 판매 등 단통법으로 사라진 부작용이 단통법 폐지로 다시 생겨날 수 있다”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통신시장 경쟁 유도’의 최종 목적인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중저가 휴대폰 출시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게 통신업계의 주장이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가계통신비는 통신망을 사용하는 통신요금과 휴대폰 할부금인 통신장비가 더해진 값이다. 통신요금은 지난해 말 기준 전년 대비 2% 올랐지만, 통신장비 지출은 29% 뛰었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통신비 부담의 상당 부분이 휴대폰 단말기 가격이 올라서라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발표에서 휴대폰 구입 부담을 낮추기 위해 40만~80만원대 중저가 휴대폰 출시를 유도한다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단통법 폐지보다 분리공시제 도입이 가계통신비 인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분리공시제는 전체 보조금을 구성하는 이동통신사 지원금과 제조사 장려금을 따로 공개하는 것이다. 현재는 갤럭시S24 울트라에 지급되는 보조금에 대해 ‘45만원’이라는 금액만 표시되지만, 분리공시제가 도입되면 ‘SK텔레콤 25만원, 삼성전자 20만원’과 같이 별도로 구분해 공개된다. 통신사는 제조사 핑계를, 제조사는 통신사 핑계를 대는 상황이 사라지면서 전체 보조금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 방 위원장은 “휴대폰 가격 자체를 낮추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을 공개해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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