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은 원래 그렇다? 곤충이 가로등에 붙잡히는 ‘딱한 이유’

김지숙 기자 2024. 2. 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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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곤충은 왜 가로등 주변으로 모여들까. 인공조명이 곤충의 감각에 혼동을 주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토마스 앵거스/임페리얼컬리지 런던 대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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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Q. 영어 속담 중에서 손해를 볼 줄 알면서도 무언가에 강하게 이끌리는 모습을 두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방 같다’(Like a moth to a flame)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름날 거리의 가로등이나 전광판 주변에는 하루살이, 모기, 나방 등을 보면 정말 곤충들이 새카맣게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도대체 곤충들은 왜 불빛 주변으로 모여드는 걸까요?

A. 곤충이 불을 찾는 이유가 뭘까요. 본능적으로 끌린다거나 먹이로 착각한다는 이야기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과연 곤충이 불을 ‘좋아해서’ 얻는 이득이 있을까요. 오히려 빛 주변에 여러 개체가 모여 경쟁도 높아질 뿐 아니라, 전구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 죽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 이유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곤충이 빛 주위에 모여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인공조명으로 곤충을 포획했다는 기록은 서기 1세기 로마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벌집을 나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빛을 이용한 덫을 만들었다고 해요.

이처럼 인류는 곤충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나은 방제를 위해서 곤충이 왜 빛으로 모여드는지 그 이유를 탐구해왔습니다. 그동안 유력하게 생각되어 온 가설은 주광성(phototaxis, 走光性) 탈출 이론, 나침반 이론 등입니다.

지난 2019년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이포보 주변 가로등에 대형 하루살이들이 몰려있는 모습.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주광성이란 생물이 빛의 자극에 반응해서 빛을 향해 혹은 빛을 멀리하는 움직임을 말하는데요, 식물이나 수생 조류가 광합성을 하기 위해 빛을 찾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광성 탈출 이론은 이렇게 곤충이 낙엽 틈새를 날다가 빛이 있는 곳을 탈출구로 여겨 그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유명 가설이 바로 곤충이 달이나 태양을 기준으로 삼아 이동하다 인공 빛에 영향을 받아 경로를 이탈하고 빛 주변에 모여든다는 나침반 이론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명확하게 규명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기존 가설들과는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바로 곤충들이 밝은 곳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빛에 이끌려 간다기보다, 인공조명이 곤충의 방향 감각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보이는 행동이라는 주장입니다.

연구진은 지구 상에서 가장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는 코스타리카의 몬테베르데 클라우드 포레스트 자연구역에서 나방, 잠자리, 초파리, 매미나방 등 곤충 10종의 비행을 촬영했다. 새뮤얼 파비안/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대학 제공

새뮤얼 파비안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대학 연구원과 국제연구진은 “인공조명은 곤충에게 비정상적인 비행 행동을 유발하는데, 이것은 곤충이 빛으로 위와 아래를 인지하는 독특한 감각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그간 곤충이 왜 빛으로 다가가는지 다양한 가설이 있었던 것에 비해 이를 설명할 운동 데이터는 극히 드물었다면서 이번 연구가 자연 환경과 실험실 두가지 조건에서 나방, 잠자리, 초파리, 매미나방 등 곤충 10종의 비행을 비교·분석해 내린 결론이라고 전했습니다.

먼저 연구진은 지구 상에서 가장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는 코스타리카의 몬테베르데 클라우드 포레스트 자연구역에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곤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적외선 고속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해 ‘기준’을 잡고, 인공조명에서 곤충의 비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궤적을 관찰했습니다.

반사판인 흰색 시트를 아래 깔고 빛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한 환경(왼쪽)에서 곤충들은 등을 뒤집어 추락했다. 반면 조명을 설치하고 그 위로 시트를 친 경우에는 일반적인 경우처럼 위쪽으로 날아갔다.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대학 제공

빛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조명을 다양한 각도로 설치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이 전구의 빛이 아래쪽을 향하도록 설치한 경우와 삼각대에 전구를 장착해 빛이 위쪽을 향하게 한 경우, 그리고 빛이 한 지점이 아닌 넓은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나무에 흰색 시트(캐노피)를 펼치고 자외선을 투사하는 경우로 세분화했습니다.

곤충의 비행은 각기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빛이 아래를 향하도록 설치된 경우, 곤충들은 날개와 등을 전구 쪽으로 기울여 빛을 등지고 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잠자리, 나방 그 외 곤충 모두 이러한 각도를 유지하며 전구 주위를 일정한 궤도로 날거나 그 주변으로 날아올랐는데요, 빛이 위쪽을 향하게 되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종종 비행을 멈추거나 아예 빛을 향해 몸을 뒤집어 추락해버리고 말았던 거죠.

나방이 아래쪽 인공조명의 영향으로 비행 중 등을 뒤집으며 추락하는 모습.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대학 제공

연구진은 이런 행동이 곤충의 배광반사(Dorsal Light Response)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배광반사란 곤충이나 물고기에게서 나타나는 자세 조절 기능으로, 본능적으로 밝은 방향으로 등을 향하는 행동을 말해요. 이번 연구에 참여한 야시 손디 미국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대학 박사는 “인간과 달리 대부분의 곤충은 공간을 인지하는 전정기관이 없다. 이들은 오랜 진화를 통해 밝은 쪽을 ‘위쪽’으로 인지해왔는데 갑자기 빛이 위를 향하게 되면 곤충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상실해 추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라고 과학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곤충이 빛에 이끌려 전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빛에 의해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빛 자체가 곤충을 꾀어낸다면 먼 거리 빛을 향해 다가와야 하는데, 연구팀이 진행한 장거리(85m) 실험에서 빛에 끌려온 곤충은 50마리 중 2마리에 그쳤습니다. 즉 인공 조명이 직접 곤충을 끌어들인다기 보다는 지나가는 곤충을 가두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연구진은 곤충이 빛에 이끌려 전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빛에 의해 균형 감각을 잃고 주변을 맴돌거나 추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대학 제공

연구팀은 숲에서 촬영한 총 477개의 현장 영상을 통해 이런 행동 패턴을 관찰했고, 실험실에 진행한 빛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제기됐던 주광성 이론과 나침반 이론 등이 모두 이번 실험 데이터와는 맞지 않는다면서, 곤충이 인공조명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연구진은 “밝은 인공조명은 곤충의 비행 메커니즘에 방해하고 장거리 경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태양 빛이 땅을 향해 떨어지듯 가로등이나 건물 조명도 아래로 퍼지게 비추면 곤충들이 받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조명의 방향을 변경하거나 수를 줄여 곤충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인용 논문: Nature Communications, DOI: 10.1038/s41467-024-44785-3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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