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떠나보낸 父…끝내 恨 풀어낸 73세 딸

정세진 기자, 김인한 기자 2024. 2. 12.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70년만에 순직 인정…군인사망보상금 지급불가결정 취소 청구 소송 승소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고 박경복 이병 유해. 딸 박태순씨 가족사진과 부인 고 황두분씨(오른쪽위) 사진 등이 붙어있다./사진=박태순씨 제공


"제 나이 73세인데 하루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지 않고 지낸 날이 없습니다."

숨진 아버지의 군인사망보상금을 지급해달라며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군재정관리단을 상대로 소송을 건 70대 여성이 1심에서 승소했다.

박태순씨(73) 아버지 고(故) 박경복씨는 6.25전쟁 중에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고 입대했다. 박씨는 입대 2달만인 1953년 2월 군병원에서 숨졌다. 그간 국방부는 "1953년 사망 당시 동일 호적 내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박씨 딸에게 군인사망보상금 지급을 거절해 왔다.
국방부, 호적에 없으면 보상금 지급 못 해… 법원 "호주제 폐지 결정 취지에 반해"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정희)는 박씨가 국군재정관리단장을 상대로 제기한 군인사망보상금 지급불가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지난 6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증거들과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 인정되는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는 망인의 유족(딸)"이라며 "망인의 군인 사망 보상금(사망급여금)을 지급 받을 권리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군인 사망 보상금은 약 1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지난해 11월28일 변론절차에 출석해 '원고측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는 판사의 요구에 눈물을 흘리며 준비한 입장문을 읽었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를 불러보지도 못하고 사진 한장 남지 않아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70년을 살았다"며 "70년만에 순직 판정을 받았지만 (국방부는) 단 한 번의 사과의 표현도 없었다"고 했다.
사과궤짝에 담겨온 군인父, 70년 만에 순직 인정…끝나지 않는 싸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가 발견한 고 박경복 이병의 병상일지. 진상위는 1953년 1월 31일 제63육군병원 군의관 유광흥 대위가 발급한 사망진단서도 발견했다. 박경복 이병은 영양실조로 입원해 20일 만에 사망했고 대전화장장으로 보내졌다. /사진=박태순씨 제공

박씨는 1951년 9월25일 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 고(故) 박경복·황두분씨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1952년 11월쯤 초가지붕을 이고 있던 아버지에게 징집관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입대해야 한다며 집을 떠났다.

1953년 2월 초 군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씨 어머니와 사촌형제들이 시신을 인수하려 논산 훈련소로 찾아갔다. 훈련소 관계자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대전 육군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대전에서는 다시 논산으로 가라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유족들은 시신을 넘겨받지도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며칠 후 면사무소 직원이 군인 2명과 화장한 아버지 유골을 사과궤짝에 담아서 가져왔다"며 "사망 원인도 경위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남편을 잃은 박씨 어머니는 재산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 시댁에서 쫓겨났다. 고아가 된 박씨는 5촌 당숙의 양자로 입양됐고 3살이던 1954년에 출생신고와 함께 호적에 올랐다.

전쟁이 끝난 후 이장이 찾아와 '죽은 사람이 호적에 그대로 있으니 집에서 죽은 걸로 신고하자'며 유족을 설득했다. 제적등본(호적제도 하에서의 출생·사망 등을 기록한 서류)에는 박씨 아버지가 1951년 12월 17일 외서면 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다.

박씨는 2021년에서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로부터 "박경복님이 군 복무중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조사결과를 받았다. 국방부는 박경복 이병의 순직을 인정했다. 박씨는 고향 뒷산에 모셨던 아버지 묘를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이후 여러 차례 소송 끝에 박씨는 생년월일을 정정했고 박경복씨와 친생자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 받았다. 이후 아버지의 군인사망보상금을 신청했다. 국방부는 '부친 사망 당시 동일 호적에 있지 않다'며 박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춤이라도 추고 싶은데 끝난 게 아니다"…국방부 "항소 검토"
박태순씨(72) 아버지 고 박경복씨(향년 22세)는 한국전쟁 중인 1953년 1월 31일 대전 육군 63병원에서 사망했다. 국방부는 2022년 69년 만에 박경복 이병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2022년 7월 태순씨와 가족들은 고향에 묻었던 아버지 유골을 수습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영상=박태순씨 제공

결국 박씨는 지난해 5월 국방부를 상대로 사망보상금 지급불가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청구했다. 7개월 만인 지난 6일 승소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는 머니투데이와 한 전화통화에서 "매일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짐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라면서도 "춤이라도 추고 싶었는데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고 했다. 이어 "설날을 앞두고 판결을 받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아버지는 저를 그렇게 예뻐해 가지고 저울에 매일 달아보고 기둥에 세워보고 하셨다고 들었다"고 했다.

한편 국방부 관계자는 "패소 사실을 인지했으며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법률적 검토를 거쳐 향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