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거부하는 양심을, ‘뒷조사’로 판단하겠다고요? [The 5]

하어영 기자 2024. 2. 11. 14: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 파이브: The 5] 서로 다른 ‘양심’ 기준, 그 사이에 낀 청년
2020년 11월 11일 대체복무 대원 1기생이 대전교도소 교육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기자가 답합니다.

▶▶IT전문저널리스트인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이 진행하는 ‘인공지능시대의 진로와 미래’ 대면수업이 궁금하다면 ‘휘클리 심화반’을 신청해보세요.

지난달 11일 대법원이 폭력과 전쟁에 반대한다는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대를 거부한 윤재연(가명)씨에게 “신념이 깊고 진실한지 의심스럽다”며 병역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윤씨가 평소 비폭력·반전·평화주의 관련 시민운동을 하지 않았고, 한때 ‘배틀그라운드’라는 온라인 전투 게임을 즐겼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병무청의 판단은 전혀 달랐습니다. 윤씨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뒤 새로 도입된 대체복무제도에 따라 병무청 대체역심사위원회(심사위)에 대체역 편입을 신청했는데요. 2021년 심사위는 윤씨가 독서, 명상, 학습을 통해 전쟁 참여를 거부한다는 평화주의 신념을 형성했다고 판단하고 대체복무를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윤씨는 대체복무를 하루도 해보지 못하고,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구속될 위기에 처했는데요. 개인의 양심은 누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대체복무제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고 있을까요?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자였고 지금은 그들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에게 물었습니다.

[The 1] 대법원은 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엄격하게 따졌을까요?

임재성 변호사: 양심적 병역거부에서 본질은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 신념이 얼마나 굳건한가이고요. 근데 실제로 양심이 어떻게 빈틈없이 논리적이고 완전무결할 수 있나요.

일반 시민은 자기 안의 진지하고 굳건한 내면의 소리를 설명하고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외국에선 (양심을 따지는 과정이) 고학력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절차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개인이 생애에 걸쳐 신념을 갖게 된 과정과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그 신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The 2] 개인 신념 때문에 군대에 안 가겠단 거잖아요. 개인이 충분히 설명하는 게 맞지 않나요?

임재성 변호사: 그렇다고 해도 개인의 설명을 법원이나 심사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들여다봐야 해요. 대법원은 (총을 쥐는) 집총 거부의 신념이 종교적 세계관이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우린 어차피 우주에서 보면 티끌 같은 존재인데, 왜 서로 못 죽여서 안달하냐’라는 개인적 깨달음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생각의 차이와 우열을 누가 말할 수 있나요. 병역거부의 신념은 배경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평화주의든, 생태주의든, 여성주의든 그 배경보단 결심이 중요하고요.

2020년 10월26일 처음 설치된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로 대체복무 대원 1기생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The 3] 병역을 거부하는 신념은 내면의 양심이잖아요. 언제,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요?

임재성 변호사: 사람은 통상 나이를 먹어 사회생활을 하거나 대학생활을 할 때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됩니다. 그 중간에 많이 바뀌기도 하고요. 그러니 병역거부의 신념은 신청 시점의 양심, 신념으로 판단해야지, 과거에도 지금과 같았냐 아니냐에 집중하면 여러 모순이 생겨요.

대표적으로 예비군 병역거부가 있어요. 이미 군 복무를 마친 사람도 이후 여러 경험 속에서 집총 거부의 양심이 생겨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기도 해요. 이런 선택을 두고 ‘예전에는 총을 들었는데 왜 지금은 총을 들 수 없다는 거냐?’ ‘일관되지 않다’라고 한다면 예비군 거부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 없어요. 근데 (법원은) 삶의 전부가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인생 전체가 비폭력 평화주의로 일관돼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죠.

[The 4] 다른 국가는 어떤가요?

임재성 변호사: 통상 외국에서는 폭력 전과가 있는지, 총기 면허를 발급받은 적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법원이 게임 이력까지 살피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실제 우리나라 재판에서는 어떤 영화를 봤는지, 웹하드에 어떤 콘텐츠를 다운받았는지도 봐요. 그건 (병역거부 판단에 부정적인) 네거티브 요소를 확인한다기보다는 뒷조사 수준에 가까워요. 지금 법원은 (병역거부 판단에 긍정적인) 포지티브한 측면보단 네거티브한 측면을 과도하게 들여다보고 있어요. 네거티브한 요소를 제한적으로 들여다보는 걸로도 대체복무 인정 여부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The 5] 법원과 달리 병무청 심사위는 대체복무를 대부분 허용하던데요. 왜 대체복무제를 개선하자는 주장이 나오나요?

임재성 변호사: 대체복무제의 징벌성 정도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체복무 기간은 36개월로 현역 복무 기간(1년6개월)의 2배입니다. 다른 국가에서도 대체복무가 현역보다 길긴 하지만 1.5배가 넘지는 않거든요. 어느 정도 확립된 기준입니다. 기간만 문제는 아니에요. 지금 대체복무자는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며 교정업무를 하고 있어요. 그 업무는 교정공무원을 뽑아서 하는 게 맞습니다. 사회복지나 소방 분야에서도 (인력) 수요가 많잖아요.

▶▶[The 5]에 다 담지 못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와 대체복무 현황을 휘클리에서 읽어보세요. 주간 뉴스레터 휘클리 구독하기. 검색창에 ‘휘클리’를 쳐보세요.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