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입맛 참 까다로웠다더니…이것도 양보 못 했다 [기술자]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2024. 2. 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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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식탁에 더 오래 앉아 있으면 권력 부패의 시작이다.”

한 끼 식사에 10분 이상을 쓰지 않았다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딱 2가지에는 참 관대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프랑스산 샴페인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카페 로얄(Cafe Royal)’이라고 부르는 음료입니다.

카페 로얄은 커피와 각설탕, 브랜디로 만듭니다. 커피가 담긴 잔에 스푼을 걸쳐놓고, 거기에 각설탕을 올린 뒤 브랜디를 붓고 불을 붙이는 게 끝입니다. 만드는 법은 어렵지 않은데 이 브랜디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게 참 화려하고 낭만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보는 맛’이 중요한 건 똑같은 모양입니다. 푸른 불빛이 감도는 이 음료를 나폴레옹이 이성에게 직접 만들어주며 유혹했다는 야사(野史)까지 있으니까요. 오늘날이었다면 아마 인스타그램에 나폴레옹을 태그한 ‘인증샷’이 한 번쯤 올라왔을 겁니다.

골프장에서 ‘펑’ 하고 터뜨리는 그 술
샴페인은 골프 등 스포츠 대회 우승은 물론, 결혼식이나 시상식처럼 축하할 일이 있는 자리에 종종 등장합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이번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나폴레옹의 술, 샴페인과 브랜디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두 술 모두 드셔 보신 적이 없더라도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한 번쯤 접해보셨을 겁니다. 골프를 즐기신다면 우승한 이가 ‘샴페인 세례’를 받는 걸 종종 보셨을 텐데요.

얘기가 나온 김에 샴페인(Champagne)에 대해 먼저 알아볼까요? 샴페인은 프랑스 북동부 상파뉴(Champagne) 지역에서 만든 포도주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스파클링 와인’이지만, 주질 등을 고려했을 때 ‘샴페인’이라는 고유명사로 더 불리는 편입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첫 단계는 우선 베이스 와인(숙성에 들어가기 전 단계의 와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1차 발효한 베이스 와인을 스테인리스스틸 탱크에서 블렌딩 한 뒤 효모와 양분을 첨가해 발효하면 기포, 즉 거품이 발생하는데요.

이 와인을 병에 담아 압력을 가한 상태로 재발효합니다. 효모가 사멸되어도 풍미를 더하고자 1년 반~5년 정도는 그대로 숙성하는데요. 이후 적절한 때가 되면 병을 거꾸로 뒤집어서 효모가 병목으로 모이게 한 뒤 병목 부분을 냉각합니다.

이때 마개를 열면 압력에 의해 효모가 밖으로 튀어나오고, 병 안에는 맑은 와인만 남게 되는데요. 병목 부분을 냉각하고 손실된 양만큼 소량의 와인으로 채워준 뒤 다시 코르크 마개로 병을 막으면 우리가 아는 ‘샴페인’의 모습이 됩니다.

샴페인은 차게 마셔야 온전하게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음에도 겨울에 큰 인기를 끄는 주종입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참, 샴페인을 만드는 데는 주로 3종의 포도를 사용합니다. 무게감이 있으면서 향이 진한 ‘피노 누아르(Pinot noir)’, 과육의 풍성한 맛이 강한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e)’, 그리고 섬세하면서 산뜻한 ‘샤르도네(chardonnay)’가 그 주인공입니다.

샴페인만의 전통 양조법을 그대로 따랐더라도 상파뉴 지역에서 만들지 않았다면 ‘크레망(Cremant)’이라 불립니다. 제조법도 다르고, 상파뉴에서 만든 것도 아니라면 ‘뱅 무소(Vin Mousseau)’라고 표현합니다.

그 밖에도 세계 각국에서는 다양한 유사품을 만들어냅니다. 스페인의 ‘까바(Cava)’, 이탈리아의 ‘스푸만테(Spumante)’, 독일의 ‘젝트(Sekt)’ 등 여러 품종이 있지만, 그중 샴페인의 맛과 향이 으뜸으로 꼽히는 편입니다. 나폴레옹의 ‘원픽’ 역시 샴페인이었습니다.

여러 브랜드 중 ‘모엣 샹동’을 즐겼던 나폴레옹은 “승리하면 샴페인을 마실 자격이 있고, 패배하면 필요해진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회사 앞 술집에서 들어 본 “월요일은 원래 술 마시는 날, 화요일은 화나서 마시는 날~” 노래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남아도는 포도, 끓여봤더니 그 맛이
프랑스 서남부 코냑(Cognag) 지방에서 난 포도로 브랜디를 만들면 그걸 ‘코냑’이라고 부릅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레드 와인도 만들고, 화이트 와인도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거품 나는 와인도 만들어보고. 하고 싶은 대로 다 만들어봐도 남아돌 정도의 포도가 있다고 하면 어떨까요? 시장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어떻게든 새 상품을 개발해야겠죠.

아마 프랑스에서도 그랬을 겁니다. 프랑스 서남부 ‘코냑(Cognac)’ 지방에서 포도를 증류해 상업화하기 시작한 게 ‘브랜디(Brandy)’의 기원이라고 전해집니다. 정확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17세기 후반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과거에는 포도를 증류한 술만 브랜디라고 표현했지만, 상업화를 계기로 포도 이외의 과일로도 곳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맛은 좋지만, 외관상 상품성이 떨어지는 사과로 브랜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브랜디 제조는 포도 등 과일을 으깨고 부숴 즙을 짜낸 뒤 2~3주간 자연 발효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껍질은 제거하는 게 원칙인데 향을 더하고자 그대로 둘 때도 있다고 합니다. 또 과일을 너무 잘게 으깨면 술이 탁해질 수도 있다고 하네요.

발효된 술은 두 차례에 걸쳐 증류합니다. 처음 증류한 원액을 한 차례 더 농축하는 개념인데요. 참 신기하게도 안동소주와 마찬가지로, 증류 후 처음 나오는 원액(초류)과 맨 마지막에 나오는 원액(후류)은 빼고 중간 부분으로 술을 만든다고 합니다.

코냑을 비롯한 브랜디는 대부분 포도로 만들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사과 등 그 외 과일로 만들기도 합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초류는 알코올 함유량이 많아 마셨을 때 숙취가 심할 수 있고, 후류는 또 향이 떨어져 상품가치가 없다는 데서인데요. 이 원액을 떡갈나무 등으로 만든 오크통에 담아 수년간 숙성하면 우리가 아는 브랜디로 탄생합니다.

앞서 코냑 지방을 언급했을 때 “들어 본 것 같은데” 하셨을 수도 있는데요. 바로 이 코냑 지방에서 만든 브랜디를 흔히 코냑이라고 부릅니다. 국내 대형마트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브랜드는 ‘카뮤’, ‘헤네시’, ‘레미 마르텡’ 등이 있습니다.

사실 브랜디는 양조장 입장에서 볼 때 아주 효자 상품입니다. 와인으로 빚어낼 만큼 훌륭한 포도가 아니어도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데다 판매단가가 높은 편이기 때문인데요. 제조·보관 기간이 긴 까닭에 와인산업이 불황일 때 브랜디를 많이 만들어두는 편이라고 합니다.

브랜디는 상업화 이후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다가 19세기 중반 진드기의 일종인 ‘필록세라’가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한 뒤 공급과 수요가 모두 급감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위스키가 큰 인기이지만, 왕좌는 본래 브랜디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잘 만들면 뭐하나, 이제 안 마시는데
샴페인과 브랜디는 물론, 주류 전반의 소비량이 급감해 프랑스가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이렇게 훌륭한 술을 많이 만드는 프랑스가 최근에는 한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사람들이 더는 예전처럼 술을 안 마신다는 점인데요. 국제와인기구(OIV) 추산으로는 프랑스의 1인당 평균 와인 소비량이 지난 2022년 기준 47ℓ에 그쳤다고 합니다.

2002년에만 해도 70ℓ에 달했던 소비량이 20년 새 33%가량 급감한 것이죠. 건강을 생각하면 절주·금주가 당연하다는 인식이 확산한 영향인데 이 때문에 주류업계 종사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을 판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8월 남아도는 와인 재고를 없애고, 또 그걸로 피해를 볼 포도 농가를 지원하는데 2억유로(약 2864억원)를 투입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인플레이션까지 겹친 상황이라 사치재로 여겨지는 와인 소비량이 쉽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문화적 현상이나 어떤 대상 등이 처음 시작한 나라를 ‘종주국(宗主國)’이라고 표현하죠. 샴페인과 브랜디는 물론, 와인 산업 전반의 종주국으로 여겨지는 프랑스로서는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꼭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느 날 김치를 안 먹고, 마늘을 안 먹기 시작한다면 그런 느낌일까요. 물론 마늘을 주기적으로 안 먹는다면 한국 사람은 곰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일본의 사케, 중국의 고량주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ㅇ세계의 명주와 칵테일백과사전, 칵테일백과사전편찬위원회, 민중서관, 2001

ㅇ술 잡학사전, 클레어 버더(Clare Burder), 문예출판사, 2018

ㅇ그랑 라루스 와인백과, 라루스 편집부, 시트롱마카롱, 2021

ㅇ매일유업 ‘바리스타룰스(Barista Rules)’ 공식 홈페이지

누가 따라주니 그저 마시기만 했던 술. 그 술을 보고 한 번쯤 ‘이건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했던 적 있으신가요? 매주 금요일, 우리네 일상 속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술 이야기를 전합니다. 술을 기록하는 사람, 기술자(記술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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