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순 데 맘 붙이고 살면 살아져”[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단골 분식집이 있었다.
대학가에서도 오랜 명소 같은 분식집, 덮밥으로 유명했다.
"사연이 많은가 보네. 사는 게 참 그렇지. 그래도 어디라도 따순 데 맘 붙이고 살다 보면 살아진다." 덮밥처럼 덮어두면 동향 사람이라고 한 주걱 더 담아주었다.
돌아보니 '그래도 맘 붙이던 따순 데'가 내게도 있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늦은 밤, 분식집 문을 열면 밥 짓는 훈기가 나를 와락 안아 주었다. 이모님이랑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학창 시절 유학했던 곳이 이모님 고향인 걸 알았다. “전라도에서 유학했는데 본가는 강원도고요. 근데 가족들은 흩어져 살고…이래저래 복잡해요.” 이모님은 갓 지은 밥을 살살 퍼담으며 말했다. “사연이 많은가 보네. 사는 게 참 그렇지. 그래도 어디라도 따순 데 맘 붙이고 살다 보면 살아진다.” 덮밥처럼 덮어두면 동향 사람이라고 한 주걱 더 담아주었다.
설을 앞두고, 집엔 내려가느냐고 이모님이 묻기에 대답했다. “연휴도 짧고 바빠서요. 혼자 보내요.” 명목은 취업 준비였지만 안팎으로 사정이 여의찮았다. 그러자 이모님이 꽁꽁 묶어둔 봉지를 내밀었다. “나물 조금 무쳤어. 설에는 여기도 문 닫으니까. 추석보단 설이 더 마음이 쓰여. 겨울이라 춥잖아. 추운데 배고프면 서럽거든. 그저 맛있게 먹어. 복 많이 받고.” 양손 묵직하게 돌아가던 겨울밤. 그믐달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단칸방에 달랑 나 혼자였어도 설날에는 나물 비빔밥을 비벼 먹었다.
어느덧 십수 년이 지났다. 분식집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동네는 찾아갈 일이 없다. 이모님은 잘 지낼까. 고향에 돌아갔을까. 은혜는 어떻게 갚을까. 돌아보니 ‘그래도 맘 붙이던 따순 데’가 내게도 있었다. 복은 베푸는 거라고 이름도 모르는 이모님이 알려주었다. 마음 쓰는 데 인색하지 말자. 덮어두고서 베풀며 살아야지. 빙그레 웃는 그믐달을 올려다본다. 밥 짓는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 지금에야 속절없이 뭉클, 마음이 뜨거워진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원 꿔주기, 지역구 나눠먹기…여야, ‘꼼수 위성정당’ 속도전
- 尹 “청소년 자진신고에 영업정지…깡패·사기꾼이 설치는 나라”
- 조국 ‘입시비리·감찰무마’ 2심도 징역 2년
- 박민식 前장관 “대통령 대담, 간접적으로 죄송하다는 표현”[중립기어 라이브]
- 공공기관 사칭 스미싱 20배 폭증… 내 보이스피싱 ‘방어력’은?[인터랙티브]
- [단독]美 정찰기, 연일 서해상 출격…北 추가 도발 징후 포착한 듯
- 변을 보기 위해 변기에 15분 이상 앉아 있다.
- 대통령실, 의료계 집단행동 자제 요청…“업무개시명령, 면허취소도 검토”
- ‘테라·루나 권도형 측근’ 한창준 구속…法 “도주 우려”
- “30분마다 하기로 한 가스 측정, 단 한 번”…‘질식 사고’ 현대제철 문건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