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 ‘규제개혁 중꺾마’ 절실하다[시평]

2024. 2. 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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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행정학
역대 정부의 개혁 번번이 실종
변혁적 리더십 환경 계속 악화
손익 배려 거래적 리더십 대안
대형마트 규제 대표적 헛발질
반도체 길 막은 화평법·화관법
곳곳 리스크 규제 폐해도 심각

아시안컵 몇 경기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꺾이지 않는 마음 ‘중꺾마’로 감동을 주었다. 컨디션이 나쁘거나 뭔가 이상하게 상황이 잘 풀리지 않아도 어쨌든 최선을 다해 꺾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개혁 정책이 그래야 하는데, 이게 너무 어렵다. 대다수의 전직 대통령은 한두 가지를 개혁하다가 좌절했다. 진심이 아니었거나, 관료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았거나, 환경이 바뀌었거나 등의 이유였다. 국민 모두 개혁을 원한다는데 매번 개혁이 실종되는 아이러니다. 이른바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ve leadership)의 비전과 카리스마를 발휘해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데 현대 정치 시스템상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거래적(transactive) 차원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틀이 있는데, 그것이 규제 개혁의 사고방식이다. 즉, 국민으로선 어떤 개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개혁으로 혜택을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자꾸 만들고 끈질기게 밀고 나가면 어느 순간 모든 개혁이 제대로 시작되고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안전·연금·교육·노동, 신산업과 구산업의 갈등 등의 분야에서 혁신이 가능해지며, 그 결과 국리민복이 구현된다. 이렇게 규제 개혁이야말로 정부 개혁의 중꺾마를 가능케 할 것이다.

세상은 온라인과 골목 유통으로 격변하는데 재래시장과 대형 유통점의 싸움으로 착각해 ‘대형마트 영업시간 및 의무휴업일 규제’가 헛발질을 하고 10여 년간 유통산업을 궤멸시켰다. 또한, 선진국보다 10여 배 강한 통제로 기존 화학산업은 물론 정밀화학산업과 반도체산업에도 대못을 박아놨던 것이 화평법·화관법이다. 분명해진 것은, 기업들의 가격 형성이나 영업과 계약 활동들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 정부가 추진해 왔던 디지털 플랫폼 규제도 그 강도가 너무 강하고 의도하는 바가 시장 왜곡적이며, 다양다기하고 격동적인 글로벌 산업 트렌드를 외면한다.

한편, 기존 규제의 업그레이드는 정부의 모든 정책을 대상으로 한다. 수도권 규제 완화, 비대면진료 확대, 의대 정원 확대 등 최근 대통령이 발표하는 시원시원한 정책이 이에 해당한다. 국민 모두의 자유 수준을 함께 높여 모두가 잘사는 방법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례로, 의대 정원 확대가 그렇게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라면, 차라리 기본으로 돌아가서 대학 정원을 대학이 자유롭게 자체적으로 정하도록 두면 된다. 뜻이 있는 대학이라면 의대를 더 설립하고 의대 정원을 확대할 것이다.

대부분의 개혁 정책을 규제 개혁의 틀 안에서 추진하면 유리해지는 다른 이유는 그 정치적 설득력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은, 사실 선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SOC의 파격적인 혜택을 받는 지역민들은 자기들이 당연한 떡을 받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게다가 SOC 사업은 서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인 몇 명과 지역 토건업자의 돈잔치에 불과하다. 국민의 피땀으로 조성된 재정을, 죽어가는 소외계층이나 소방관의 목숨을 구하는 데는 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규제 개혁의 품에서 다양한 개혁 정책이 시행되면 그 효과는 모든 국민이 누린다. 국민과 기업이 자유로운 가운데 거침없이 자율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밑천으로 돈을 구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정부와 국가는 성공한 것이다.

아직 규제 개혁이 미진한 부분도 너무 많다. 우선,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실패가 매우 아쉽다. 모든 기업인과 소상공인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가게 문을 닫게 한다. 또, 정부 모든 부처에 흩어져서 똬리를 틀고 있는 리스크 규제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폐해를 낳는다. 아직은 아무 위험이 없는데도 과학자나 기업들의 연구를 사전에 철저히 봉쇄하는 규제들이 생명공학이나 의학 등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2차전지나 수소·인공지능(AI)·반도체 등 모든 미래 먹거리의 길목마다 국가가 만든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기준이 없어서 원천적으로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니 이제 기준을 곧 만들 계획이란다.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국민을 지지하고 도우려는 태도가 정부의 기본이 돼야 한다. 중꺾마로 정부가 개혁하면 그 결과인 혁신은 국민이 알아서 일궈 낼 것이다.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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