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슬기로운 설날…올해는 가족 간 화합의 장이길

한겨레 2024. 2. 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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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서울 청량리청과물시장의 모습. 연합뉴스

[왜냐면] 김철홍 |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우리 조상들이 부여·신라 시대부터 쇤 것으로 보이는 설은 ‘새해 시작’ 이상의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는 추석과 함께 연중 최대 명절이다. 엠제트(MZ)세대에겐 낯선 음력문화지만 1989년 정월 초하룻날(음력 1월1일)부터 ‘설날’을 정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결국 정부가 양력이 아닌 음력 설날을 민족 고유의 명절로 고수해 온 국민적 정서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참고로 그동안 명절로 불리던 신정(新正), 구정(舊正)은 일본이 만든 명칭으로 우리의 설날 명절의 다른 이름은 원단(元旦), 원일(元日), 정일(正日),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등 10여 개가 넘는다.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설 연휴 고향 가는 길은 전 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해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이다. 전통적인 농경민족으로서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한 뒤 떡국을 먹는 게 설날만의 독특한 풍습이다. 이는 조상님과 어른들께서 지난해를 잘 돌봐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음덕과 건강을 축원하는 미풍양속이다. 풍속으로 차례, 세배, 설빔, 시절 음식(떡국), 덕담,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많은 종류가 있다.

필자는 평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전통시장 구경을 좋아하기에 설 명절 준비 겸 집 근처의 전통시장을 찾았다. 장을 돌아다니면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하고 한창 가래떡을 뽑고 있는 한 방앗간에 다다르자, 2년 전 100살로 작고하신 엄마 따라 방앗간에 밤새 불린 쌀을 가져와 가래떡을 만들고 아주머니들이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이곳은 유난히 방앗간이 많아 그 고소한 내음이 발길을 잡아 마치 아로마테라피 향수로 힐링하듯 늘 기분이 좋다.

명절하면 온 가족이 모이고 맛난 명절 음식이 생각난다. 그러나 가족 간 화합의 장이어야 할 명절이 가사노동의 신체적 피로와 성 차별적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 등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게 지금 세태이다. 유독 여성만이 음식을 만드는 등 전통적 성 역할이 가장 큰 이유다. 이를 보다 못한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전을 부치느라 고생하지 말라는 내용과 음식의 가짓수는 9개까지면 된다는 이른바 ‘설 명절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내놓았다.

차례와 제사를 구분 못 하고 제례문화지침서 ‘주자가례’에 없는 ‘상다리 휘어지는 차례상’을 제사상처럼 차리고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리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느꼈던 그동안의 문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차례상 간소화로 제례 문화의 전통을 복원하고 명절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서로 떨어져 지냈던 가족이 모여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가 될 거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고생을 무릅쓰고 ‘민족 대이동’을 매년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설날에는 모처럼 가족들이 만난 만큼 나라 걱정하는 얘기로 분위기 깨지 말 것이며,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화투놀이 대신 아이들과 함께 집안이나 많은 야외 체험행사장에서 가능한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투호 등 민속놀이를 즐기며 가족 간 화합을 통해 청룡의 기운으로 더 높게 비상하길 소망한다.

대신 필자가 나라 걱정하며 한마디 한다. “대체 왜 그 자리에 있는가?” 고려말, 조선초 격변기 유명한 관리이자 문인인 정도전의 삼봉집(三峰集) 답전부(答田父)에 실린 늙은 농부의 말이다. 정도전이 전라도 나주 회진으로 유배 갔을 때, 그에게 뼈아픈 말로 세상을 풍자하던 농부의 말을 곱씹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 농부가 바라는 세상은 그저 상식이 통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인정받는 지극히 평범한 사회였는데….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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