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범죄자'된 플랫폼기업…"현실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최우영 기자 2024. 2. 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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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플랫폼법이 온다]①
[편집자주] 거대 플랫폼기업의 시장 독점을 방지해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플랫폼경쟁촉진법. IT를 넘어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이끌어 온 네카쿠배(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는 한목소리로 반대에 나섰다.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환영할 것 같은 IT 스타트업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시장 환경을 풍성하게 만든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안 추진 배경을 설명해도 이들이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유와 우려를 짚어본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왼쪽)와 정신아 카카오 대표 내정자가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플라자에서 열린 제5차 인공지능 최고위 전략대화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플랫폼 경쟁촉진법(플랫폼법) 공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점과 반칙행위를 막아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쉽게 만들겠다며 추진중인데, 시장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가뜩이나 많은 규제로 시름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법이라는 또 하나의 족쇄가 더해질 경우 경쟁력을 급격히 잃고 결국 해외 기업에게 안방을 내줄 것이라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이처럼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규제가 업계의 의견 수렴 없이 깜깜이로 추진되면서 정부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플랫폼법, 현실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7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 중 핵심은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 사전 지정이다. 매출과 점유율, 이용자수 등의 정량적 요건에 더해 공정위가 별도의 기준으로 판단할 정성적 요건까지 합쳐 지배적 사업자를 규정하게 된다. 이 때문에 네이버(NAVER), 카카오 등의 IT 플랫폼 기업을 포함해 e커머스의 쿠팡,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등 다수의 기업이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사전 지정에 대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 영화는 미래 사회에서 범죄가 일어나기 전 가능성을 예측해 범죄자를 미리 단죄하는 국가 시스템의 폐해를 다뤘다. 플랫폼법이 일부 기업을 사전 지정해 규제한다는 게 '범죄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범죄자를 규제하는 영화 속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플랫폼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들과 건전한 생태계를 가꾸며 동반성장해온 플랫폼기업들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기분"이라며 "시장을 개척하고 점유율을 높여왔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이 된다는 건 기업 성장동력의 근본을 뒤흔드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공정거래법, 온플법에 플랫폼법까지 중복·과다 규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뉴시스
정부는 2020년부터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플랫폼법까지 더해지면 과도한 규제로 기업활동과 플랫폼 관련 투자가 위축될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공정위가 플랫폼법으로 규제하려는 멀티호밍 금지(타 플랫폼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 등은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공정위는 현행법으로는 위법행위 조사와 시정조치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발생하기에, 이를 줄이기 위해 플랫폼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플랫폼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기 전 '독점이 예상되는 때'에 미리 개입해야 경쟁 질서를 회복하는 데 용이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 입법조사처도 플랫폼법이 중복 규제가 될 수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입법조사처는 지난 5일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규제 이슈에 대한 검토'를 통해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 하에서 시장지배력을 가진 플랫폼 사업자의 남용행위를 규율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라며 "현 시점에서 이 플랫폼법을 도입할 시급성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고, 합리적 이유도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소통 없는 깜깜이 추진, 규제 예측성 현저히 낮춰
공정거래위원회. /사진=뉴스1
플랫폼법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어떤 시장에나 규제가 있고, 규제가 명확해야 기업들이 이에 맞춰 경영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공정위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 이에 대한 해명자료만 수차례 내면서 정작 법안 초안도 보여주지 않는다"며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줘야 할 당국에서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미국 등 해외 사례를 보면 규제 법안 등을 만들 때 수년에 걸쳐 토론회도 하고 실증 조사를 거치면서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한다"며 "반면 공정위는 4월 국회 회기 중에 통과하도록 만든다고 타임라인만 정해놓고 아직까지 법안 내용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촌각을 다투며 졸속 추진할만큼 플랫폼법이 국가적으로 시급한 과제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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