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부활 이끄는 콘크리트 지지세력, 복음주의 교회의 파워는 [노석조의 외설]

워싱턴 D.C./노석조 기자·조지타운 방문연구원 2024. 2. 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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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 ’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 분석
미 복음주의 교회 등에 업은 트럼프
하지만 ‘경제’가 판세 결정타 될듯
미국 버지니아 패어팩스 한 가게. /노석조 기자

지난달 25일 워싱턴 D.C.에 도착했습니다. 내년 1월까지 1년간 조지타운대의 에드먼드 월시 외교학교에서 아시아 연구 프로그램(ASP) 방문연구원(visiting scholar)으로 지내기 위해섭니다.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카운티 비엔나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도착 이튿날 미국땅에서 ‘발’이 되어줄 차를 샀습니다. 비엔나 인근 한 사무실에서 차 보험 사인을 하고 나오는데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을 간판으로 단 상점이 보였습니다. 각종 배너와 깃발 등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미 공화당 출신 첫 대통령인 링컨에 관심이 많기에 들어가보았습니다.

문을 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링컨 선전물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와 관련된 게 더 많았습니다. 그리스 정교회 벽화를 연상시키듯 천장에 트럼프의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있었습니다. 워싱턴 D.C와 버지니아주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민주당 출신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트럼프 얼굴을 먼저 볼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패어팩스 한 상점의 천장에 트럼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노석조 기자

이 가게 주인은 백인 할아버지였습니다. 트럼프 사진을 왜 이렇게 많이 걸어놓았는지 물었습니다. 어르신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인물이 트럼프”라고 했습니다. 군 출신이라는 할아버지는 미국의 위상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데 걱정이셨습니다. 강한 미국을 원했습니다. 트럼프가 실제 이런 바람을 실현할 인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가게에 니키 헤일리 등 다른 공화당 대선 후보의 사진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가게 문을 닫고 나오면서 트럼프는 왜 인기가 유별날까 궁금했습니다. 그는 2020년 11월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입니다 지난 220년간 존 애덤스, 벤저민 해리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허버트 후버, 지미 카터, 조지 H.W.부시, 그리고 트럼프까지 10명의 대통령이 재임에 실패했지만, 트럼프처럼 재임 실패 후 재출마에 나서 유력 후보가 된 것은 그로버 클리블랜드(1837~1908)에 이어 미 역사상 두번째 입니다.

각종 수사와 소송으로 정치적 생명이 다 끝난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그는 어떻게 다시 유력한 대선 후보로 4년만에 ‘부활’할 수 있었던 걸가요?

트럼프가 대세야, 트럼프가 또 되지 않겠어? 라는 말은 많습니다만 정작 그의 부활 비결(?)에 대한 분석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미번역 외서를 해제하는 한국 유일의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 셀러인 ‘더 킹덤, 더 파워, 앤 더 글로리(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그의 나라와 권세, 그리고 영광)’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월스트리트저널, 애틀란타 등에 정치 기사를 써온 언론인 팀 알버타의 신작입니다.

알버타 기자의 신간

알버타는 책에서 트럼프가 재선 실패의 나락에 떨어졌는데도 바이든 재임 기간 내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다 다시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저력은 ‘미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에 있다고 짚었습니다. 알버타는 미 복음주의 교회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내부자로서 미 복음주의 기독교의 일부가 극렬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책을 집필했습니다. 결코 전부가 아닙니다. 일부입니다.

알버타의 책, 그리고 여러 정치 서적·기사·논문을 보면, 미국에서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 수십년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니 교회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러 교단으로 이뤄져 있고, 각 교단마다 성격이 다릅니다. 정치와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 아내 멜라니아. /AP 연합뉴스

복음주의 교회는 대체로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종종 후보의 도덕적 가치와 정책 입장을 기준으로 투표하며, 이러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활동을 전개합니다. 특히 낙태, 동성 결혼, 종교의 자유 등의 이슈에 관심이 많습니다.

알버타는 이와 관련, 어쩌면 가장 부도덕한 인생 궤적을 가진 트럼프를 교인들이 지지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꼬집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도 자신의 이러한 도덕점 약점을 잘 알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더욱 복음주의 교인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이슈에 대해 그 누구보다 선명한 지지 발언을 합니다. 반대 진영의 모진 비난과 비판에도 그걸 내가 지키겠다고, 당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적임자는 나라고 강조합니다. 적당히 하지 않고 배수의 진을 친 듯 결연하게 맹렬하게 주장합니다.

이런 모습은 일종의 투사처럼 비춰집니다. 심정적으로 끌립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책 실현을 해줄 ‘정치적 대리인’으로서 트럼프는 아주 유용합니다.

트럼프는 흔들리지 않은 콘크리트 지지세력을 갖고 있기에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패하고 갖은 죄목으로 형사·민사 소송을 당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빚진 트럼프는 더욱 몸과 마음을 다해 ‘재선만 되면’ 더 열심히 당신들을 위해 일할 것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경선이 진행 중인데 이변이 없는한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추세입니다. 미국에선 트럼프 테마주가 급등의 급등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은 미국 사회와 대중 문화에 대해서도 큰 영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육,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반영하려 노력하며, 종종 이러한 분야에서의 활동을 통해 더 넓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이스라엘 및 유대인 권력 집단과도 밀접합니다. 트럼프는 2017~2021년 재임기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숙원 사업이었던 ‘예루살렘 수도’ 사업을 실행에 옮긴 ‘역사적’ 인물입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당시 유엔은 예루살렘에 대해 어느 나라의 수도도 아니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서로 자기네 수도라고 주장하고 서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예를 한 것이지요.

이에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거의 모든 나라 대사관은 예루살렘에 있지 않고 텔아비브나 헤르츨리아에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국제법 위반 논란에도 2018년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습니다.

역대 대통령은 말로는 이스라엘과 유대인 측에 동질감을 표하지만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은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국제적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불 안 가리는, 나쁘게 말하면 철면피, 좋게 말하면 뚝심있고 용기 있는 모습을 트럼프는 실제 보였습니다.

이러한 짜릿한 기적의 체험을 맛본 복음주의 기독교인 그리고 미국 안팎의 유대인들이 트럼프의 부활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재기할 수 있는 배경에는 물론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공화당 내 별다른 경쟁자가 없다는 점 등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 정치의 한 축인 복음주의 기독교가 없었다면 트럼프가 지금처럼 공고한 지지세를 가지고 출사표를 던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알버타는 주장합니다.

1981년 7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세금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책을 읽다가 미 복음주의 교회가 지지해 대통령이 된 인물이 트럼프 말고 또 누군지 궁금했습니다. 조사해봤더니 3명이 더 있었습니다.

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재임 1977~1981), 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1981~1989), 43대 조지 W.부시(2001~2009)입니다.

지미 카터는 이례적으로 민주당 출신으로 복음주의 교회의 지지를 받았는데요, 그가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점이 그들의 마음을 샀습니다. 하지만 정작 재임을 하면서는 낙태, 동성애, 1979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사건 등을 놓고 복음주의 측과 충돌했습니다. 결국 카터는 이들의 지지를 잃어버렸고,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카터의 재선을 막으며 집권한 건 카터에 실망한 복음주의 측의 기호를 찰떡같이 맞춘 공화당 레이건이었습니다. 복음주의 교인들은 미합중국은 축복받은 하나님의 나라, 강력하고 선택받은 나라답기를 원합니다. 카터는 재임 기간 이란 인질 구출 작전에 실패하는 등 제 몫을 못한다, 부실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

반면 레이건은 강한 반공 정책, 그리고 가족 중심적 정책 추진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부시는 9·11테러 이후 이라크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본거지였던 아프가니스탄의 통치 세력 탈레반을 쳤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 정치의 파워 그룹인 미 복음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아온 트럼프는 왜 재선에 실패했던 걸까요?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레이건이나 조지 W.부시처럼 트럼프도 바이든을 누르고 재선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정치부 기자 마이클 벤더가 쓴 ‘사실 이 선거는 우리가 이긴거야(Frankly, We Did Win This Election)’에서는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봤습니다. 코로나 대응 실패, 그리고 코로나 시기 경제난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기 트럼프 행정부는 마스크 착용과 백신 공급 등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높은 사망률에 좌절해야했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물가가 요동치고 경제가 어려워져 전통적인 지지층 사이에서도 이탈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아들 부시와 달리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 조지 H.W.부시도 재선 캠페인 기간 경제적 불황에 시달렸습니다. 경쟁자 빌 클린턴은 이를 놓치지 않고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문구를 내걸며 부시에게 치명타를 날렸죠.

복음주의의 세속적 정치적 열망과 응집력도 ‘경제’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은가 봅니다. 경제는 딱 떨어지는 숫자로 그 정부의 능력을 평가합니다.

피부로 와닿는 일상 속에서 그 정부가 유능한지 무능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포를 하든, 남미 국경을 가로막든 난민을 받아들이든, 동성애 정책을 어떻게 펴든, 경제가 어떻느냐가 선거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입니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미 대선뿐 아니라 한국 총선 등 많은 선거가 치러지는데요. 팬데믹 이후의 선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팬데믹 기간 대부분의 나라가 돈을 풀었고, 이에 물가가 치솟는 부작용이 났습니다. 미국이 지금 금리를 고집스럽게 올리며 고금리 행진을 이어가는 것도 과열된 시장을 식히기 위해서입니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11차례 금리를 올렸습니다.

바이든은 지금 좌불안석입니다. 고금리 기조가 이대로 가면 유권자의 가계 부담도 계속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재임기간 유권자들의 지갑 사정이 시원찮으면 당연히 정권 교체론이 커질 수밖에 없겠지요. 트럼프에게 유리합니다.

반면, 연준이 일찌감치 금리를 낮추면 가계 대출 부담도 줄어들고, 유권자들은 한숨 돌리게 됩니다. 바이든은 이걸 원하고요. 본의 아니게 연준이 선거의 풍향을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게 돌릴지를 결정할 수 있는 키를 쥐게 된 것입니다. 연준은 정치적 고려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다고 하지만, 의도치 않게 어느 한쪽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닐 것입니다.

아직 미국에 온지 열흘을 갓 넘겼지만, 미국의 고물가,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은 식당에선 비쌀지 모르지만, 마트에서 식료품은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을 한국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듯합니다. 어제 트레이더스 조에 갔었는데요, 토마토 하나에 1달러가 넘었습니다. 아무리 중학생 주먹만한 토마토라고 해도 하나에 1달러를 넘는 건 여간 낯선 게 아닙니다.

고금리로 미국 부동산 거래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요즘 미국인들 일상이 팍팍하다는 것입니다. 연준은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에게 유리한 금리 정책을 펼까요?

사실 저는 미 대선보다도 미국에서 사는 한국인 월급쟁이로서 금리가 하루라도 빨리 떨어져 환율이 1300대에서 1200원 이하로 좀 진정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뉴스레터 외설 구독자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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