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매각 협상 무산 왜?…지분매각금지 조항 견해차 못 좁혀

김경욱 기자 2024. 2. 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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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매각에 시간 걸릴 듯
에이치엠엠(HMM)의 컨테이너선인 블레싱호. HMM제공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에이치엠엠(HMM·옛 현대상선) 매각 협상이 6일 최종 결렬된 배경으로는 ‘인수 뒤 5년간 지분매각 금지’ 등을 담은 주주 간 계약을 둘러싼 채권단(KDB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과 우선협상대상자(하림그룹)의 이견이 꼽힌다. 에이치엠엠의 현금성 자산이 인수기업의 곳간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채권단 입장과 투자금 회수가 절실한 우선협상대상자의 요구가 맞붙은 결과다. 에이치엠엠 인수전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재매각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하림그룹은 7일 오전 입장문을 내어 “이날 매도인(채권단) 쪽으로부터 협상 결렬을 공식 통보받았다”며 “최종적으로 거래협상이 무산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앞서 이날 새벽 보도자료를 내어 “우선협상대상자와 7주에 걸친 협상 기간 동안 상호 신뢰하에 성실히 협상에 임했으나, 일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고 전했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는 지난해 12월18일 팬오션(하림)·제이케이엘(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고 같은 달 20일부터 협상을 이어왔다. 이들은 애초 지난 1월23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해 협상 기한을 6일까지 2주 연장한 바 있다.

매각 쪽과 인수 쪽이 첨예하게 맞선 부분은 주주 간 계약서에 담긴 ‘지분 매각 금지’ 조항이다. 산은과 공사는 협상 과정에서 하림 쪽에 ‘인수 뒤 5년간 지분 매각 금지’ ‘3년간 연간 배당금 최대 5천억원 제한’ 등을 요구했다. 인수기업이 과도한 배당으로 투자금 회수에 나서거나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해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다.

하림은 이 가운데 5년 동안 주주 변동이 없어야 한다는 ‘지분 매각 금지’ 조항에서 사모펀드 운용사인 제이케이엘파트너스를 예외로 해달라고 채권단 쪽에 요구해왔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유지분을 처분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로서는 이런 조건이 불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하림은 제이케이엘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이뤄 이번 인수전에 참여했다.

산은과 공사는 이런 하림 쪽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14조원에 이르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에이치엠엠이 자칫 하림의 ‘곳간’으로 전락해 국내 해운업계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5년간 지분 매각 금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게 채권단과 해운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판단이었다.

이에 하림은 제이케이엘의 지분 매각 제한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여달라고 최종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채권단이 이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하림 내부에서는 채권단 요구를 대체로 수용한 만큼, 채권단도 요구사항 중 하나 정도는 수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협상 과정에서 채권단 요구를 들어 ‘1조6800억원 규모인 에이치엠엠의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을 3년 동안 미뤄달라’ ‘주주 간 계약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 달라’는 기존 요구를 모두 철회했지만, 채권단은 어느 것 하나 양보하지 않았다는 것이 하림 쪽 분위기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번 매각 협상 무산을 놓고, ‘신속매각’을 원했던 산은의 금융논리가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산업적 중요성을 강조한 공사와 해수부의 산업논리에 밀렸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사와 해수부는 이번 매각 협상 과정에서 에이치엠엠이 국내 유일한 국적 선사로서 해운 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특수성을 강조하며 매각 뒤 일정 부분 경영 감시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이번 협상 결렬은 신속 매각·최고가 매각이라는 산은의 금융논리가 에이치엠엠의 산업적 중요도에 무게를 둔 해운 산업의 산업논리를 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매각 작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에이치엠엠은 산은 등 채권단 관리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해운업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채권단이 단기간에 재매각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에이치엠엠은 2016년 유동성 위기로 산은 등 채권단 관리를 받아오다 7년 만에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하림 관계자는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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