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의 집, 경매 장사 피해주세요. 제발!”

정남구 기자 2024. 2. 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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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안상미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23년 4월17일 희생자 집 들머리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사회적 재난 현장에서 경매 장사하는 당신도 가해자’

지난 2월1일,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한아름아파트 입구에는 이런 글귀를 쓴 펼침막이 찢겨진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건물 벽에는 ‘퇴거 불가, 여기는 깡통 전세 사기 피해 아파트입니다’라고 인쇄된 종이가 압류 딱지처럼 붙어있고, 붉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쓴 호소문도 내걸려 있었다.

미추홀구 2800여세대 비슷한 피해, ‘사회적 재난’
특별법도 후순위채권자인 피해자 구제엔 무력
전세사기 피해 호소 1년반, 일부 경매만 미뤄져

“현재 경매가 진행중입니다. 매각되면 전재산을 잃고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경매꾼에게 말씀드립니다. 사건 해결 때까지 경매가 중지되도록, 입찰 의사가 있는 임차인은 낙찰받을 수 있도록 배려 부탁드립니다. 이런 재난 현장의 집까지 장사하지 말아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여기가 한 동에 52세대씩 2개동 104세대가 사는데, 그 중 한 세대를 뺀 103세대가 같은 전세사기 피해를 본 곳”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도 전세사기 피해를 본 이 아파트 세입자 가운데 한 명이다.

안상미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자신의 집에서 정남구 논설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를 주도한 이른바 ‘건축왕’ 남아무개씨에 대한 형사재판 1심 선고(2월7일)를 앞두고 만난 안 위원장은 “특별법이 제정되기는 했지만 이름만 특별법이지, 보증금 채권이 후순위인 이들에겐 피해구제에 거의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언제 세입자로 입주했나요?

“2020년 2월에 들어왔습니다. 앞서 이 집에 살던 세입자가 보증금 7천만원에 살던 집이죠. 부천 살고 있었는데, 부동산 직거래 앱에 물건이 올라와서 봤어요. 전에 살던 분이 안전하다고 하더군요. 계약하러 중개업소에 갔더니 8천만원 이상으로 해야한다고 했어요. 임대인과 제 앞에서 통화하면서 조정해 7200만원에 타결했습니다. 근저당 설정액과 보증금을 합치면 시세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인근 2800여 세대가 사실상 한 사람 것이라 시세 조종은 얼마든지 가능했겠더라구요.”

―임대차 계약을 연장했겠군요.

“2년 지나고 2022년 2월에 했습니다. 보증금을 3천만원이나 올려달라고 했는데, 협상을 해 7560만원에 재계약했습니다.”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건 언제 알게 됐습니까?

“경매가 접수됐다는 걸 2022년 7월 초에 알게 됐어요. 법무사가 보낸 서류가 우편함에 꽂혀 있더군요. 그런데, 똑같은 우편물이 열집 넘게 꽂혀 있었어요. 아파트 세입자 소통방에 알렸죠. 그리고 중개업소에 전화를 했어요. 경매 서류가 날아왔다고 했더니 모르고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더라구요. 알아보고 연락준다고 하더니, ‘집 주인이 사방팔방 뛰고 있다, 다 해결될 거니까 걱정말라, 경매가 이뤄져도 보증금은 찾아갈 수 있으니 난리칠 필요 없다, 기다리면 다 해결된다’, 그러더군요.”

―문제는 집에 근저당을 설정해놓은 선순위채권자가 있어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낙찰금을 선순위 채권자가 다 가져가고 세입자는 보증금을 한 푼도 못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전세계약할 때,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는 건 알고 한 거죠?

“네, 근저당이 1억4천여만원 정도 설정돼 있었어요. 건축할 때, 2015년에 설정된 거죠. 왜 걱정을 안했겠어요. 그런데 먼저 살던 사람이 문제없이 살다 나갔고, 중개업소에서 ‘건축사업자를 잘 안다. 임대인도 잘 아는데 다 부자고 집을 여러채 갖고 있어서 1억원도 안되는 보증금 돌려주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 근저당 설정액도 채권 최고액일 뿐 이미 원금 상당히 많이 변제했다. 전세보증금 돌려주고, 이제 월세 전환해 수익 확보를 하려고 한다’, 그런 중개사 말을 믿고 계약했던 겁니다.”

―대거 경매가 넘어가고 나서야 조직적 사기였다는 걸 알게 된 거군요.

“네. 남아무개라는 부동산업자가 돈을 빌려 집을 짓고, 바지 임대인들에게 소유권을 넘기고, 중개업자 관리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전세보증금을 받아먹고, 때가 되자 빚을 안갚아 경매에 넘겨버린 전세사기였던 겁니다. 50∼60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어요. 우리 아파트는 2개동 104세대 가운데 한 세대만 본인 소유이고, 나머지는 홍아무개씨라는 바지 임대인 한 사람 소유로 돼 있어요. 전세 보증금이 계속 들어오고, 점차 올려받아야 유지되는 시스템이었던 거에요. 제가 재계약을 하던 무렵 보증금을 1억 넘게 주고 임차한 분도 계셔요. 그때 중개업소에서 그랬대요. ‘집이 2억∼3억원 짜리니까, 기존 보증금에 1억원쯤 더 빌려서 갖고 오면 근저당 갚고 경매 취하하고 전세보증보험까지 들어주겠다’, 그런 꼬임에는 사람들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2022년 하반기에 3∼4개 분양팀도 돌았어요. 집이 시세가 3억이라면서 ‘세입자에겐 조금 싸게 2억5천만원에 주겠다. 요즘 금리도 비싸니 계약서를 2억8천으로 쓰면 이자 지원 형식으로 3천을 돌려주겠다. 수천억 자산가가 건물을 통째로 사버릴 건데, 그 전에 기회를 주겠다’, 그런 식으로요. 하지만 제대로 된 시세를 아니까 거기에 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피해자 대책위원장은 어떻게 맡게 됐습니까?

“경매가 이뤄진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저는 벌어놓은 돈을 까먹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전세보증금은 마지막 보루였어요. 그게 없어지면 빈털터리가 되는 상황이잖아요.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닐 수 있었어요. 저희 아파트 문제가 알려지면서 전세사기를 당한 미추홀구의 다른 아파트에서 계속 연락이 오더라구요. 아파트별로 대표를 세워 만나다가 연합을 해야겠다, 해서 2022년 11월 초에 미추홀구 대책위를 만들었어요. 그때 국회에서 토론회가 처음 열렸죠. 미추홀구 대책위원장을 맡았는데, 지난해 7월 전국 대책위원장도 맡게 됐습니다.”

―주소지별로 경매 물건이 빨갛게 표시된 ‘법원 경매정보’ 지도가 최근 소셜미디어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에 경매가 가장 집중돼 있더군요.

“우리 아파트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알려진 뒤 연락해온 사람들과 얘기해 보니, 중개업소가 겹치더군요. 관리비를 보내는 계좌가 겹치기도 했는데, 계좌주 이름이 다른 아파트에선 건물주더라구요. 그래서 정보를 모아보니 아주 조직적으로 사기를 쳤다는 걸 알게 됐어요. 미추홀구 대책위에 접수된 전세사기 피해자가 2864세대인데, 전부 다 남아무개씨가 연루된 거에요.”

―미추홀구에서 이렇게 전세사기가 많이 벌어진 이유가 있을까요?

“대단지로 아파트가 개발되지 못하니까 한두 동만 있는 ‘나홀로 아파트’들을 많이 지었던 것 같아요. 2015~19년에 많이 들어섰는데, 애초 준공 허가를 내주면 안 되는 것이었어요. 화장실이 도면과 다르다거나, 문제 투성이거든요. 우리 아파트는 6층까진 오피스텔, 그 위론 주택이에요. 어떤 건물은 근린생활시설로 돼 있고, 불법 증축한 곳도 있고요. 그런데 구에서 세수를 확보하려고 무분별하게 허가를 내줬다고 해요. 그게 다 문제가 됐어요.”

―분양이 제대로 안되니까 전세로 방향을 틀었는데, 여차하면 집 짓느라 진 빚을 나 몰라라 하고 튀는 쪽으로 준비를 한 거군요. 미추홀구 피해자 가운데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지기를, 네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그 분들 말고도 전세사기 피해로 고통겪는 와중에 한 분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또 한 분은 저희 아파트에 사시던 분인데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가셨다가 요양병원에서 오래 못 버티고 돌아가셨어요. 전세사기를 당하고 삶의 의지를 내려놓으신 분 같았어요.”

―그동안 공론화도 이뤄지고, 국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지난해 6월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입구에 붙어있는 것을 보니, 해결된 게 별로 없나 봅니다. 안 위원장님 집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지난해 6월 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미추홀구에서 100세대 가량 매각이 완료됐어요. 경매가 다 끝나고 보증금 한 푼 못 돌려받고 나간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 비해 저는 다행이지요. 2023년 1월부터 경매가 진행됐는데, 3차 입찰을 앞두고 경매가 중단됐어요. 선순위 채권자가 캠코(자산관리공사)인 40∼50세대는 특별법 제정 전에 경매가 중단됐습니다. 지금은 특별법에 따라 5월 말까지 경매가 중단돼 있는데, 우리 아파트에서도 매각이 진행되는 집들이 나오네요.”

우선매수권 의미 있으려면, 경매 입찰 피해줘야
피해자 70%는 ‘최소 변제금’도 못받을 형편
특별법 개정해, 국가가 최소한 구제는 해줘야

―경매가 다시 진행되면 어떻게 되나요?

“보증금이 소액임차인에 해당한다면 근저당권 설정 시점의 최우선 변제금(2700만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불행중 다행으로 최우선 변제금은 받을 수 있어요. 지난번 재계약할 때 올려달라는 대로 올려줬다면 그것도 안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70%가 최우선 변제금도 받지 못합니다.”

―최우선 변제금은 특별법과는 상관없는 것이고, 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우선매입권을 주기로 했죠?

“네, 우선매입권을 한번 쓸 수 있다는데 현장에선 아직 불명확한 게 많아요. 우선 매수 신청을 했는데 법원 서류에 공시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우선매입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는데 해당 입찰에서 응찰자가 하나도 없을 때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명쾌히 설명해주는 공무원도 없어요.”

―우선매입권을 쓰면 피해를 줄일 수 있나요?

“낙찰가격이 정해지면 세입자가 먼저 살 수 있는데요. 전세사기 피해자 입장에선 경매에서 계속 유찰이 되고, 3차나 4차에서 낙찰가가 정해져야 그마나 손실을 줄일 여지가 생깁니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집은 입찰을 피해줘야 합니다. 요즘 중국인들이 매수를 많이 한다고 해요. 경매에 나서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어요. 오죽하면 경매 장사꾼에게 낙찰될 경우 집 안을 다 부숴버리겠다고 울부짖겠어요.”

2개동 104세대 가운데 한 세대를 제외하고 모든 세대가 전세사기 피해자인 인천 미추홀구 한아름 아파트 벽에 호소문이 붙어 있다. 정남구 기자

―특별법 제정 때 논의됐지만 빠졌던 내용이죠.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을 ‘선보상, 후회수’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야당 주도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네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명시된 최우선변제금 이상을 회수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고 들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저희같은 후순위 권리자들에게도 최소한 최우선 변제금만큼은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근저당권 설정 시기에는 보증금 액수가 낮아서 은행같은 선순위 채권자도 경매로 가면 최우선변제금은 못받을 걸 알고 있던 경우에요. 나중에 전세보증금이 올라서 최우선 변제금 대상에서 빠지니까 그 돈까지 선순위 채권자가 가져가는 건 너무 부당하지 않아요?”

―정부·여당은 절대 안된다, 사기 피해를 국가가 왜 보상해주느냐고 말합니다.

“오늘 인천시의회에서 조례안을 논의하는데, 시 고위간부가 ‘전세사기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계약해서 생긴 피해다’라고 얘기했다고 해요. 제가 언론 인터뷰를 하면 그런 말이 기사 댓글에 달려요. 그런데, 제가 피해자가 되고 보니 알겠더라구요. 이건 사전에 아무리 애썼어도 피할 수가 없었겠구나. 사기 피해자에게 책임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법을 완벽하게 모르기 때문에 공인중개사에게 수수료를 내고 계약을 하잖아요. 임대사업자 제도도 나라가 만든 것이니까 믿고 계약을 하는 것이잖아요. 부동산 등기부조차 공신력이 없어서 100% 믿을 수가 없는데, ‘너희가 몰라서 사기를 당했으니 다 책임져’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전세사기 피해자가 어디 한두명인가요? 요즘은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도 제도가 잘못됐다고 얘기들 많이 하세요.”

―부산지법 동부지원 박주영 부장판사가 지난 1월24일 180억원대 전세사기 주범에게 검찰 구형(징역 13년)보다 높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를 주도한 건축왕 남아무개씨에 대한 재판은 어찌 돼가고 있습니까?

“남씨를 비롯해 4명이 구속 기소돼 있는데, 1심 판결이 7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바지 임대인들 가운데 몇몇은 이미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남씨에게는 검사가 15년형을 구형했습니다. 그게 사기죄의 법정최고형이니까요. 전세사기범들은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적을 갖고 역할을 분담해 범죄를 반복해서 저질렀습니다. 범죄단체 조직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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