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폴로 셔츠

안미은 프리랜서 기자 2024. 2. 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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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추억의 폴로 셔츠가 우리 곁에 돌아왔다. 

폴로 셔츠, 니트 베스트, 플리츠스커트, 백팩 등 1990년대 하이틴 패션을 대표하는 영화 ‘클루리스’ 속 장면.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추억이지만 요즘도 가끔은 그 시절의 단정한 교복 차림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미국 상류층 틴에이저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에서 유래한 프레피 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대표 작품인 1996년 개봉 영화 '클루리스’는 이러한 향수에 거센 불을 지핀다.

프레피를 상징하는 폴로 셔츠와 플리츠스커트에 느슨하게 묶은 색색의 니트 카디건, 무릎까지 당겨 신은 하얀 니삭스와 로퍼까지. 베벌리힐스 고등학교의 말괄량이 소녀를 연기한 알리시아 실버스톤의 패션은 한때 몰개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틴에이저 패션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며 당시 10대들 사이에서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켰다. 개봉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프레피 룩의 교과서라 회자될 정도로 귀중한 스타일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스포츠 업계에 불어닥친 폴로 열풍

Y2K가 저물고 1990년대 프레피 룩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프레피 룩 트렌드의 부활은 자연스레 폴로 셔츠(polo shirt)를 소환했다. 폴로 셔츠는 본래 승마와 하키를 합쳐놓은 영국 전통 구기종목인 폴로에서 유래한 옷의 유형이다. 단추 2~3개로 칼라를 고정하는 버튼다운 형태의 반팔 혹은 긴팔 셔츠를 칭하며, 주로 통기성 좋은 피케 면을 사용해 피케 셔츠(pique shirt)로도 불린다.

폴로 셔츠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 흥미롭다. 폴로 셔츠의 존재를 처음 알린 건 1818년 설립된 200여 년 전통의 미국 의류 회사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다. 19세기 말 창업주의 손자인 존 E. 브룩스가 우연히 영국에서 열린 폴로 경기를 구경하다가 선수들이 착용한 폴로 셔츠에서 착안한 상품을 출시한 것에서 시작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폴로용 셔츠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시킨 인물은 영국도 미국도 아닌 프랑스의 테니스 선수이자 의류 브랜드 라코스테의 설립자 장 르네 라코스트(Jean Lene Lacoste)라는 것. 디자인과 실용성 모두를 고려한 라코스트의 고급스러운 폴로 셔츠는 1950년대 경제 호황기와 맞물려 인기 최고조에 달했다. 뒤이어 또 다른 테니스 선수 프레드 페리(Fred Perry)가 폴로 셔츠를 전면으로 내세운 중저가 브랜드 프레드페리를 선보였다. 그는 스포츠웨어로만 통용되던 폴로 셔츠를 평상복으로 즐길 수 있도록 탈바꿈하며 대중화에 힘을 보탰다. 폴로 셔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폴로랄프로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늦게 폴로 셔츠 열풍에 동참한 브랜드다. 론칭 당시 브랜드명을 아예 폴로로 사용하는 대담함을 보이며 스포츠웨어의 거물로 자리 잡고 있던 라코스테와 폴로 단어 사용을 두고 길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결국 폴로(랄프로렌)의 승리로 끝이 나며 폴로는 특정 브랜드의 제품명이 아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반 명사로 명명됐다. 이후 폴로는 차별화를 위해 폴로랄프로렌으로 브랜드명을 바꿨고, 아메리칸 캐주얼의 상징적인 브랜드로 나아가며 패션계에 독보적인 위상을 드러냈다. 폴로 셔츠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명문 사립고등학교 학생들이 즐겨 입는 패션 아이템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전통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기성세대부터 부유한 상류층, 혈기 왕성한 10대까지 마침내 나이와 성별, 계층을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클래식 아이템의 전형이 됐다.

폴로 셔츠와 사랑에 빠진 스타들

셀럽부터 인플루언서까지 이미 많은 이가 각자의 방식으로 폴로 셔츠를 즐기는 법을 발 빠르게 소개하고 나섰다. 그중에서도 스포티한 무드의 스트라이프 폴로 셔츠는 특유의 젊고 에너지 넘치는 감각을 드러내기에 제격. 세계적인 모델이자 사업가인 헤일리 비버는 베이식한 디자인의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매치하고 블랙 선글라스와 로퍼로 마무리해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링의 정석을 보였다. 스트라이프 패턴 폴로 셔츠를 여성스럽게 소화하고 싶다면 원피스만 한 게 없다. 넉넉한 오버사이즈 핏의 폴로 셔츠를 원피스로 활용한 인플루언서 리즈 블루스테인과 모델 벨라 하디드의 팬츠리스 룩에서 힌트를 얻어보자. 프레피 감성의 흰 양말과 로퍼, 선글라스 등의 액세서리를 더하면 허전함을 덜 수 있다. 미니스커트로 여성미를 불어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트라이프 폴로 셔츠와 미니스커트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레이디라이크 룩을 연출한 아이브 장원영은 마치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을 보는 듯하다.

올봄에는 스트라이프에 대적하는 아가일 패턴에도 주목해야 한다. 규칙적인 선과 면이 만들어내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아가일 패턴은 폴로 셔츠의 세련미를 은근히 부각한다. 패션 블로거 캐롤라인 다우르처럼 코트와 재킷, 슬랙스를 톤온톤으로 매치하면 시크한 무드까지 챙길 수 있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클래식한 매력의 솔리드 컬러 폴로 셔츠의 활용도 놓칠 수 없다. 컬러에 따라 분위기는 천차만별. 패션 인플루언서 카미유 샤리에르는 폴로 셔츠, 플리츠스커트, 니삭스를 화이트 컬러로 통일해 우아하고 기품 있는 올드 머니 룩을 재현했다. 반면 모델 엘사 호스크는 톡 튀는 레드 컬러 폴로 셔츠를 선택해 쿨하고 힙한 무드를 선보였다. 라운지 웨어로의 활용도 또한 무궁무진하다. 부드러운 니트 소재의 파스텔 핑크 폴로 셔츠와 팬츠를 선택한 모델 지지 하디드와 네온 그린 컬러 폴로 셔츠에 니트 카디건과 쇼츠로 편안한 라운지 웨어를 연출한 레드벨벳 슬기가 대표적인 예다.

클래식과 럭셔리의 그 어딘가

이번 시즌 폴로 셔츠는 더욱 간결하고 클래식한 무드로 업데이트됐다. 미니멀한 실루엣과 디자인으로 스쿨 룩과 오피스 룩의 경계를 허물며 품격을 높인 것이 특징. 럭셔리 프레피 룩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우미우는 폴로 셔츠, 플레어 미니스커트, 블레이저 앙상블로 컬렉션 전반을 채웠다. 포인트는 로라이즈 실루엣으로 슬쩍 드러낸 스포츠 언더웨어. 덕분에 힙한 무드가 한 스쿱 더해졌다. 그런가 하면 로에베는 장식을 덜어낸 베이식한 폴로 셔츠와 미디스커트로 사립학교 자제다운 절제된 프레피 룩을 연출했다. 광택이 흐르는 고급스러운 슈트 재킷을 더해 럭셔리한 폴로 셔츠 스타일링을 선보인 지방시도 시선을 끌었다. 이 외에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스트라이프 패턴 폴로 셔츠에 시스루 스커트와 재킷으로 여성미를 강조한 드리스반노튼과 MSGM까지, 수많은 패션 하우스가 폴로 셔츠를 전면에 내세우며 2024년을 군림할 아이템임을 증명했다. 반가운 사실은 굳이 새롭게 쇼핑 카트를 채우지 않더라도 충분히 트렌드에 편승할 수 있다는 것. 학창 시절 이후 옷장 속에 고이 접어둔 폴로 셔츠와 미니스커트를 소장하고 있다면 말이다. 봄이 오길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 당장 미우미우 모델처럼 정갈한 블레이저나 코트를 차려입고 거리로 나가볼 일이다.

#폴로셔츠 #폴로셔츠스타일링 #프레피룩 #여성동아

기획 최은초롱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안미은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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