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루에서 '털썩' 그 뒤 3583일…'기적의 사나이', 마지막 기적은 없었다[뉴스속오늘]

이은 기자 2024. 2.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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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동점 홈런은 기적이었다"

야구선수 임수혁은 '기적의 사나이'로 기억됐다.

1999년 10월 20일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9회말 만들어낸 극적인 동점 홈런 때문이다.

/사진=1999년 10월 20일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7차전 9회 말 임수혁이 2점 동점 홈런을 치는 모습./사진=MBC LIFE '히스토리 후' 방송 화면


대학 2학년 때부터 줄곧 국가대표 포수를 맡았던 임수혁은 롯데 자이언츠의 공격형 포수였다. 임수혁은 처음 주전 포수로 나선 1995년 15홈런을 기록하며 그해 입단한 마해영과 33개의 홈런을 합작해 '마림포'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결정타가 있는 '거포' 임수혁은 당시 3-5로 롯데가 지고 있던 9회말, 기대를 받으며 대타로 타석에 올랐다. 임수혁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순간 홈런을 직감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그는 2점 홈런을 치면서 동점을 만들어냈다.

연장전 혈투 끝에 롯데는 6대 5로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9회말 임수혁의 동점타를 발판으로 이뤄낸 기적이었다.

그러나 '기적의 사나이'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임수혁이 2000년 4월 18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갑자기 쓰러진 모습. /사진=MBC LIFE '히스토리 후' 방송 화면


2000년 4월 18일. 임수혁은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한 다음 타자 안타로 2루로 진루한 뒤 갑자기 쓰러졌다.

1루에 있던 동료 선수가 깜짝 놀라 달려왔고, 팀 트레이너도 더그아웃에서 뛰어나왔지만 임수혁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임수혁은 뒤늦게 경기장으로 들어온 들것에 실려 덕아웃으로 옮겨진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원인은 부정맥으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였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던 임수혁은 병원으로 이송된 후 맥박과 호흡을 되찾았지만 심장 부정맥에 의한 발작 증세로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기약 없는 임수혁 투병에…동료·팬들 온정 쏟아져
경기 도중 사고로 투병을 시작한 임수혁에겐 동료들과 팬들의 온정이 쏟아졌다.

사고 두 달 만인 2000년 6월 2일엔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임수혁 돕기 행사'를 열어 잠실 야구장을 찾은 팬 1인당 500원을 적립해 임수혁 치료비로 전달했다. 그해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는 승리 팀 감독 상금, 홈런 레이스 상금, 승리 팀 수당 등을 모아 임수혁의 치료비로 전달하기도 했다.

사고 1년 후인 2001년 4월 18일. 롯데는 이 날을 '임수혁의 날'으로 정하고, 이날 수익금 전액을 치료비로 보탰다. 특히 이날 경기에선 임수혁의 아들 세현 군이 시구를 해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길어지는 투병으로 치료비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났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가족들은 2003년 4월 롯데와 LG를 상대로 8억원의 민사 조정 신청을 냈다. 선수 보호 책임이 있는 롯데와 당시 경기의 홈팀이었던 LG가 심폐소생술 등 응급 구호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를 배상해 달라는 차원이었다.

그해 7월 서울지법 동부지원은 두 구단에 총 4억2600만원을 배상금으로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LG는 이에 이의를 제기했고, 2004년 임수혁 가족이 롯데 2억1000만원, LG 1억1000만원의 보상안을 수용하면서 조정이 마무리 됐다.

돌아오지 못한 2루 주자…3583일 투병 끝 사망
/사진=MBC LIFE '히스토리 후' 방송 화면

그라운드에 쓰러진지 3853일 되던 2010년 2월 7일. 임수혁은 병세가 악화돼 끝내 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임수혁이 떠나는 마지막 길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직접 관을 운구하며 함께했다.

임수혁의 안타까운 사고는 우리나라 스포츠 경기장 응급 조치 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임수혁의 사고 이후 경기장에는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지닌 응급구조사가 배치됐고, 심장제세동기, 산소호흡기 등이 구비된 구급차가 항상 대기하게 됐다.

특히 2011년 당시 제주 유나이티드 FC에서 뛰던 축구선수 신영록은 경기 중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쓰러졌으나 빠른 초동 대처로 목숨을 건졌다. 신영록은 쓰러진 직후 구단 의료진에게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구급차로 7분 만에 병원으로 옮겨져 50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임수혁 사고 이후 달라진 응급 처치 시스템 덕분이었다.

이은 기자 iame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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