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 맡긴 1억, 빚 갚는 데 다 썼더라…파산부터 가족 해체까지

김지은 기자 2024. 2. 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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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파산] ③ 빚은 어떻게 가족을 뿔뿔이 흩트려놨나
아내와 이혼하고 파산 신청을 한 임수동(가명)씨가 지난해 11월21일 한겨레와 인터뷰하며 채무 상담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임호영(가명·36)은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것도 지금은 분노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다. 한때는 병상에 누워 섬망에 시달리는 아버지 앞에서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한시간 동안 욕설을 했다. 어머니와 고성을 지르며 싸운 적도 있다. 그때 어머니가 임호영을 향해 흉기를 들었을 정도로 분위기는 심각했다.

모든 갈등은 부모의 빚에서 비롯했다. 임호영은 20대 초반 군에 입대했다가 부사관까지 일한 6년 동안의 월급과 퇴직금, 퇴직 이후 직장 생활에서 번 돈까지 모두 부모에게 맡겼다. 부모의 요구로 대출받은 돈까지 맡긴 금액은 1억여원 정도나 됐다. 그런데 부모가 이 돈을 대출 이자를 갚는 데 모두 썼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가업으로 오랫동안 운영해오던 떡집이 망하면서 부모는 임호영이 군에 있던 시절에도 임호영의 신용카드 여러 개로 이자를 갚았다고 했다. 심지어 여동생 명의로도 대출을 받았다. “전역하고도 3년이 지나서야 제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 뒤에도 생산직으로 주야간 일하면서 번 돈까지 모두 드렸는데…. 솔직히 그냥 다 죽었으면 하는 심정이었어요.”

빚은 가족을 뿔뿔이 해체한다. 채권자들이 연대책임을 묻고 채무 상환을 독촉하면서 가족을 법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흩어놓는다. 빚 독촉에 쫓긴 가족이 다른 구성원의 돈을 빨아가듯 가져가면서 불화가 생겨 관계가 끊어지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붕괴한 뒤 국가의 지원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법적으로 가구를 분리하며 해체되는 가족도 있다.

한겨레가 파산 신청자 1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추이가 확인된다. 파산 신청자의 45.3%(58명)가 현재 ‘이혼’ 상태이거나 ‘별거’ 상태라고 답했다. ‘기혼’ 상태라고 답한 이는 34.4%(44명)였다.

서울회생법원의 ‘2022년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에서도 ‘부양가족(동거가족)이 없는’ 채무자가 66.4%나 됐고,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가 2020년 생활 실태를 조사한 파산 신청자 1108명 가운데 50%가 ‘1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센터는 이를 두고 “파산 신청자 상당수가 가족의 경제적·심리적 지지 없이 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는 악성부채 등의 문제로 가족해체를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파산 신청자 절반, 이혼하거나 별거

임호영이 처음부터 가족과 소원했던 건 아니었다. 부모가 처음 어려움을 호소할 때만 해도 “가족인데 뭔가 급한 게 있으니까 나한테까지 와서 말하는 거겠지라는 생각이 강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고, 불행과 실패, 자신에게 몰려오는 채권추심 압박 등이 이어지면서 분노가 점점 커졌다.

우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는 불행이 찾아왔다. 병원비가 매달 수백만원씩 나왔지만, 임호영이 부양의무자로 등록되어 있는 탓에 아버지는 의료급여 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이런 와중에도 임호영은 2019년 돈을 끌어모아 한식집을 열었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빚도 갚기 위해서였다. 초반에는 장사가 꽤 됐지만, 두어달 뒤 코로나19가 닥쳤고 1년 만에 장사를 접는 실패를 겪게 됐다.

그동안에도 채권 추심은 계속됐다. 한 저축은행에서는 아버지가 빌린 돈의 지연이자를 갚으라며 임호영에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아버지 전화기 아니냐”고 능청스레 묻기도 했다. 채무자의 가족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는 행위가 금지돼 있는 채권추심법을 어기며 아들에게 추심 전화를 해놓고선 법 위반이 아닌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제가 군에 있을 때부터 썼던 전화기예요. 그래서 ‘이자 갚으라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건 저희가 말할 순 없고요’라고 하더라고요. 약 올리는 거죠.”

임호영은 이런 일들을 겪으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 옥상에 올라가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밟혀 다시 돌아섰다. 이후 여자친구의 권유로 2021년 여름께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됐다. 2022년 7월 법원의 개인회생 개시 결정을 받았고, 지금은 한 회사에서 일하며 3년을 기한으로 매달 72만6534원씩 부채를 갚고 있다.

임호영의 부모는 협의 이혼을 했다. 임호영이 채무와 관련해 자문을 받고 진행한 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게 하고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서 가구 분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모르쇠 할 수 없었던 가족을 위한 법적 절차까지 마무리했지만, 그 사이에 벌어진 관계까지 복원되진 않았다. “처음에는 빚쟁이를 죽이고 싶다가 나중에는 가족들이 미워지죠. 가족이 돈 얘기 꺼냈을 때 아예 안 볼 생각을 하고 집을 나갔어야 했어요. 그게 제가 사는 길이었던 거죠.”

송진섭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장은 “(파산이나 개인회생까지) 가게 되면 오랜 기간 빚 때문에 핍박받으면서 가족 간의 관계가 악화해 있거나 가족에게 기대고 싶어도 못 기대고 도망을 간다거나 피하거나 이런 식이 되어서 가정이 해체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이혼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재결합을 해서 이혼하고도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종신고 낸 어머니에 “연락하고 싶지 않다”

정슬아(가명·34)는 어머니에게 계속 돈을 뜯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모녀 관계를 끊었다. 정슬아는 21살 때 어머니가 대부업체에 자신을 데리고 가서 2천여만원을 대출받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어머니는 “집이 힘드니까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빚은 ‘엄마가 알아서 갚아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명의로 된 통장들이 막히기 시작하면서 정슬아는 채무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통장이 지급정지 되어서 일하는 것도 힘들어졌어요. 대부업체에서 제 친구에게까지 전화해서 빚 독촉을 했을 때 정말 충격이 컸어요.”

정슬아는 이어지는 채권추심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면서도 생활비가 없다며 “미안하다”는 어머니의 말에 매달 아르바이트를 해서 50만원 정도씩 송금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둘라치면 어머니가 번번이 가져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정슬아도 더는 참지 못하게 됐다. 29살 때 전남의 고향집에서 나와 서울로 이주했다. 2주 뒤에 어머니의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이 찾아왔는데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정슬아는 지난해 초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 기간을 최대로 늘려 매달 14만원씩 채무를 갚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구내식당에서 일하며 적금도 붓고 있다. “개인회생 신청을 위해 금융상담을 받으러 다니면서 ‘우선 네가 살아야 가족을 도와줄 수 있다. 지금은 힘들어도 끊어내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는 조언을 들은 게 기억에 남아요. 지금 당장 저 자신을 챙길 여유도 없는데 엄마를 도우려다보니 가족이 다 힘들어진 것 아닐까요.”

국가 지원받기 위해 선택한 협의이혼

윤호남(가명·64)은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법적으로 가구를 분리하는 이혼을 진행하면서 결국에는 가족과 헤어지게 된 경우다. 윤호남의 둘째 딸(31)은 중증의 지체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법인택시 기사로 일하면서 딸을 병원에 태우고 다니고 재활원에 출퇴근시키다보니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사납금이 끊임없이 밀렸다. 처음에는 3천만원 전셋집을 2천만원으로 옮기면서 남는 돈을 생활비 등으로 썼는데, 결국에는 1천만원의 은행 빚을 지게 됐다. 이후 신용카드 4개로 돌려막으면서 이 빚을 갚다보니 부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갔다.

상황이 악화하자 아내는 윤호남에게 “함께 살면 당신의 수입으로 인해 필요한 지원을 못 받아서 힘드니 협의이혼을 하자”고 제안했다. 부부는 결국 이혼 절차를 밟았다. 윤호남은 이후 “애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집에서도 나왔다.

여인숙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다가 2015년 택시 운전 중 교통사고가 나면서 벌이가 완전히 끊겼다.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했던 적도 있다. 윤호남은 지난해 파산 신청을 했고, 곧 면책 결정을 받았다. “애들을 찾아가면 힘들어하니까 안 찾아가기로 아내와 약속했어요. 저는 여태껏 그 약속을 지켰지요. 지금은 가족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건설사 임원이었던 임수동(가명·56)도 10년 전 오너 리스크에 휘말린 회사에 부도가 나면서 회사의 부채를 떠안아 수억원의 빚을 졌다.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임수동은 고시원에 홀로 살고 있다. 임수동은 지난해 4월 파산을 신청했고, 6개월 만에 면책 결정을 받았다.

“빚은 가족의 공동 과제가 아니다”

이렇게 빚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생기지만,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등을 상담하는 전문가들은 “빚은 가족의 공동 과제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김연진 은평금융복지상담센터장은 “가족 가운데 한명이 빚의 늪에 빠지면 온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공동체라는 미명 아래 서로의 명의로 대출해 빚을 돌려막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며 “보통은 빚을 돌려막을 수 있을 때는 빚으로 인식하기 어렵고 한계가 와야 빚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온 가족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놓이게 된 뒤”라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이어 “한번의 연체를 막기 위해 가족이 빚을 지게 하지 말고, 부모나 형제라고 해도 냉정하게 대처해서 채무조정제도나 채무 상담을 권하면 좋겠다”며 “빚은 가족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과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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