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풍경] 하얀 김 모락모락… 뜨끈하게 담가 볼까, 온천수 물놀이할까

최흥수 2024. 2. 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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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좋은 아산 3개의 온천
수도권전철 온양온천역 광장 한쪽에 위치한 족욕체험장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아주 추운 날에는 노천 족욕장은 운영하지 않고, 바로 옆 바람막이 시설이 된 정자에서 족욕을 즐길 수 있다.

수도권전철 1호선 온양온천역. 1번 출구로 나와 넓은 광장을 지나면 우측 한 귀퉁이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온양온천 족욕체험장이다. 찬바람을 막을 수 있는 육각지붕 정자 안에 따뜻한 온천수가 흐른다. 바로 옆 지붕 없는 노천 족욕장에서 관리인이 아침부터 부지런히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족욕장 안내판에는 분명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동절기에 휴장한다고 적혀 있는데 웬일일까? 관리인 전병수씨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겨울에 뜨거운 김을 폴폴 내뿜는 모습이 온양온천의 명성을 알리는 데 더 효과가 있을 거라 여겨 한겨울 청소와 운영을 자처했다고 한다.


전통의 온천 휴양지, 온양온천

그는 거북이 등껍질이 육각형이라 육각지붕이 덮인 족욕장을 ‘거북탕’이라 부른다. 자신은 관리하는 별주부다. 노천 족욕장은 100보 정도의 길이여서 ‘백보만세탕’, 온천수가 솟구치는 대형 돌 구슬은 ‘동백보주’, 그 주변은 ‘동백섬’이라 이름 붙였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뜻에서다.

그의 정성 덕분일까? 공식 운영 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거북탕엔 이미 10여 명의 주민들이 들어와 느긋하게 발을 담그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손주 자랑에서부터 어느 목욕탕이 시설이 좋은지, 가격은 얼마인지, 몇 시부터 문을 여는지 등의 정보가 오간다. 정말 100가지 의견이 오가는 동네 사랑방이다. 전철 시간을 기다리며 잠시 쉬어가는 여행객도 적지 않다. 이곳 족욕장은 평일 약 250명, 온양민속오일장날(4·9일)과 주말에는 750명가량이 이용한다.

온양온천역 족욕체험장에서 주민과 관광객이 뜨끈한 온천수에 발을 담근 채 휴식하고 있다.
온양온천역 족욕체험장에서 주민들이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있다. 아주 추운 날에는 노천 족욕장은 운영하지 않고, 바로 옆 바람막이 시설이 된 정자에서 족욕을 즐길 수 있다.
수도권전철 온양온천역 광장 한쪽에 위치한 족욕체험장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아주 추운 날에는 노천 족욕장은 운영하지 않고, 바로 옆 바람막이 시설이 된 정자에서 족욕을 즐길 수 있다.

매일 족욕을 하면 따로 온천욕을 할 필요가 없겠다는 물음에 족욕탕 이용객은 “뭔 소리야. 족욕은 족욕이고 목욕은 목욕이지”라고 입을 모은다. 알고 보니 아산시에서 65세 이상 주민에게 1년에 20장의 입욕권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아산시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온양온천의 온천탕만 해도 16개다. 골라 가는 재미까지 있으니 물에 관한 한 복 받은 도시다. 혹시라도 좋지 않은 지적이 나올세라 한 주민은 “시설이 오래돼도 다 깨끗해”라며 미리 입막음이다.

온양온천은 문헌기록상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백제와 통일신라시대까지 치면 역사가 1,300여 년에 이르고, 고려시대에 온수군(溫水郡)이라 불렸던 것으로 보아 실제 온천으로 역할을 한 기간은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종이 1433년 정월에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행차한 것을 비롯해 세조,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이 휴양이나 병 치료를 위해 온양온천에 머물고 돌아갔다. 현종, 숙종 때는 온양에서 과거를 보고 인재를 발굴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온양행궁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온양관광호텔 굴뚝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온양관광호텔 뜰의 신정비. 세조가 온천 옆 냉천을 발견한 것을 기념해 세운 비석이다.

임금의 행차가 잦았으니 나들이 때 머물던 온양행궁도 있었다. 행궁 터로 추정되는 온양관광호텔 로비에는 온양행궁도가 걸려 있다. 뜰에는 세조가 충청 지역 민심을 살핀 후 속리산 복천사를 거쳐 한양으로 돌아가던 중 온천 옆에서 냉천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신정비(神井碑), 영조가 행차했을 때 함께 따라온 장헌세자(사도세자)가 무술을 연마하던 영괴대(靈槐臺) 비석이 남아 있다. 영괴대 앞에는 조선 후기 작품으로 보이는 온천리 석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온양온천은 44~60도의 고열 온천이다. 냉수는 천연 온천수를 냉각탑에서 식혀서 공급한다. 수질은 알칼리성으로 피부병, 부인병, 신경통, 위장병, 빈혈 등 각종 질병 완화와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근대식 온천탕은 일제강점기 때 본격화했다. 처음엔 온양온천주식회사가 독점 운영했고, 1927년 이후에는 경남철도주식회사가 경영하던 신정관과 일본인 소유의 탕정관 2개소가 운영됐다. 100년 가까이 된 신정관은 온양온천 제1호 원탕으로 지금도 저렴한 이용료(4,000원)로 향수를 자극하는 동네 목욕탕이다.

온양온천 제1호 원탕인 신정관 온천탕. 지금도 입욕료 4,000원에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온천공 개발에 성공해 운영 중인 신천탕 간판에 'since 1960'이라는 글귀가 함께 붙어 있다.
한국인 최초로 온천공 개발에 성공해 운영 중인 신천탕 입구에 온천탕의 역사를 알리는 홍보판이 세워져 있다.

1958년 이관형 신천개발 대표가 한국인 최초로 온천공 개발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지금은 38개 온천공에서 물을 끌어올려 각 온천탕에 공급하고 있다. 외벽에 ‘since 1960’ 간판을 자랑스럽게 내건 신천탕 입구에는 3대에 걸쳐 60년 넘게 영업하고 있는 이 온천탕의 역사를 알리는 홍보판이 손님을 맞고 있다. 온천탕은 대개 온양시장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 뜨끈한 온천수로 피로를 풀고 다양한 시장 먹거리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물놀이와 스파, 도고온천과 아산온천

온양온천이 전통 온천욕을 즐기는 곳이라면, 도고온천과 아산온천은 현대적 시설에서 물놀이와 스파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유황온천인 도고온천 역시 200여 년 전에 개발됐다고 자랑하지만 현대식 온천탕이 들어선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도고별장 스파피아 입구에 '박 대통령 별장'이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회갑연을 도고별장에서 치를 만큼 도고온천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도고별장 스파피아’는 그가 이용하던 별장 온천수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건물 입구에 ‘박 대통령 별장’이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다.

요즘은 ‘파라다이스스파 도고’가 도고온천과 동일시되고 있다. 전통 온천욕에 치유시설과 물놀이 프로그램까지 더해 국내 최초로 보양온천에 지정된 시설이다. 수치료를 겸하는 바데풀과 사계절 따뜻한 온천수에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온천대욕장에서 다양한 압력의 물줄기와 공기방울 등으로 신체 각 부분을 자극하며 물리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온천대욕장과 연결된 야외 유수풀과 파도풀은 한겨울에도 정상 운영한다. 찬 공기와 만난 수증기가 펄펄 피어오른다. 물놀이 중간에는 휴식 겸 한방테마탕을 즐길 수 있다. 사상체질에 맞춰 포도탕(태양인), 산수유탕(소양인), 오미자탕(태음인), 쑥탕(소음인) 등을 운영한다.

온천수를 이용하는 파라다이스스파 도고의 파도풀장에 따뜻한 김이 풀풀 날리고 있다.
파라다이스스파 도고 유수풀에서 이용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숙소로 ‘카라반 캠핑장’을 운영한다. 4인용 30대, 6인용 20대로 구성되며, 카라반에 묵으면 워터파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스파 도고는 내부 정비를 위해 3월 4일부터 4월 25일까지 휴장할 예정이다.

아산온천 역시 온천 휴양 테마파크 ‘아산스파비스’와 동의어다. 아산온천은 1991년 관광지로 지정된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 온천 단지다. 아산스파비스는 100% 천연 온천수를 사용하는 물놀이 시설과 수치료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온천탕을 비롯해 파도풀, 익사이팅리버, 아쿠아플레이 등의 시설을 갖췄다. 숙소로 온천수가 공급되는 8인용 3개동과 4인용 38개동의 숲속 글램핑 시설 아산스파포레를 운영한다. 스파비스 역시 정비를 위해 3월 한 달간 쉬고 4월에 다시 개장할 예정이다.

아산스파비스에서 이용객이 온천욕과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온실 꽃구경 갈까, 민속마을 산책할까

아산에는 온천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이 여럿 있다. 도고온천과 가까운 곳에 세계꽃식물원이 있다. 1994년 아산화훼영농조합법인 농장으로 출발해 지금은 대형 비닐하우스 온실에 3,000여 종의 원예 관상 식물을 재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식물원으로 성장했다. 튤립, 백합, 아이리스 등 구근류를 수입해 꽃을 생산하고 판매해 오다가 2004년부터 재배 온실을 개방해 식물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열대 정글에 들어선 듯 풀 내음, 꽃 내음이 물씬 풍긴다. 다소 묵직한 비누 향기 같은 느낌이다. 입구에 천장까지 솟은 보리수나무 세 그루가 반긴다. 태국에서 들여온 나무로 운송비만 1억 가까이 들었다고 한다.

도고온천에서 가까운 세계꽃식물원에 꽃을 피운 오렌지트럼펫이 주렁주렁 늘어져 있다.
세계꽃식물원은 다양한 열대식물을 보유하고 있어 정글에 들어온 느낌을 받는다.
세계꽃식물원 판매장에 프리지어가 화사하게 피어 있다.

화분과 알뿌리를 판매하는 매장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식물원에 들어선다. 천장에서 늘어진 오렌지트럼펫 덩굴에 주황색 꽃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식물원은 온실별로 초화정원, 테마정원, 에코정원, 향기정원, 연못정원, 독식물정원 등으로 구성된다. 커피와 바나나, 고무나무 등 흔히 보기 어려운 열대수종 사이에서 다양한 희귀 식물이 향기를 뿜고 있다. 이제 막 입춘이 지난 시기, 미리 꽃 나들이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2월과 4월 두 차례 화재가 발생해 일부 재배온실은 관람이 불가능하다. 입장료는 8,000원.

기와집과 초가가 어우러진 외암민속마을 전경.
외암민속마을은 낮은 돌담 사이로 호젓하게 거닐기 좋은 전통 마을이다.

온양온천역에서 약 7㎞ 거리에 외암민속마을이 있다. 약 500년 전 예안이씨 일가가 설화산 자락에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마을이다. 나지막한 돌담을 두른 기와집과 초가집에 6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주인의 관직이나 출신지를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다.

여기에 조선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등을 보존하고 있어 영화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촬영하기도 했다. 마을에는 외부 차량의 진입이 금지돼 호젓하게 옛 정취를 즐기며 거닐 수 있다. 마을 입장료는 2,000원이다.

신정호수공원은 온양온천에서 가까워 온천욕을 즐긴 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신정호수공원은 온양온천에서 가까워 온천욕을 즐긴 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아산 온천 여행 지도. 그래픽=송정근 기자

아산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신정호수공원은 식후 가볍게 산책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1926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호수 주변으로 산책로를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다. 장미터널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물속에 뿌리내린 버드나무와 갈대 군락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얼어붙은 호수 가장자리에는 연꽃대가 쓰러져 있는데, 주변에 얼음꽃이 반짝거린다.

아산=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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