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는 화염 · 연기 보고도…소방관들은 뛰어 들어갔다 [취재파일]

배성재 기자 2024. 2. 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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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날짜·장소: 2024년 1월 31일 수요일, 경상북도 문경 육가공업체 공장
19:45 1차 폭발 / 화재 발생
19:47 신고 접수
19:48 화재 출동 지령
19:57 선착대 차량 10대 도착
20:00 내부 진입한 4인1조 구조대원들, 공장 뒤편 등장
20:10 2차 폭발 / 4인1조 구조대원들 내부 진입
20:24 3차 폭발 / 구조대원 2명 고립 확인
20:25 문경소방서, 대응 1단계 발령
20:27 4차 폭발
20:49 경북소방본부, 대응 2단계 발령
 

화염 보고도 진입 결정한 4인 1조

2024년 1월 31일 저녁 7시 45분, 경상북도 문경 한 육가공업체 공장 3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공장 뒤편 전경을 바라보고 있는 CCTV에는 당시 모습이 생생히 담겼습니다. 공장 3층에서 빛이 번쩍하며 폭발이 일어나고, 주변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폭발이 있었지만, 초기 화재는 3층에만 머물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1층과 2층은 아직 잠잠합니다.


10여 분 뒤 소방차 등이 도착해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잠시 뒤인 밤 8시 정각, 공장 뒤편에 소방관 4명이 일렬로 나란히 등장합니다. 순직한 김수광, 박수훈 소방관을 비롯한 4인 1조 구조대원들입니다. 공장 주변 관계자의 인도에 따라 공장 앞으로 돌아나가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공장 앞으로 돌아나간 소방관들은 출입문 앞, 공장 앞마당에 나와 있던 공장 관계자들 5명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때 관계자들은 구조대원들에게 "이제 공장 안에 아무도 없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공장 안에서 직원 1명이 더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결국 구조대원 4명은 "직접 올라가서 인명을 찾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3층으로 향합니다. 이때 시간은 밤 8시 10분 정도로 추정됩니다.

CCTV 영상을 보면, 밤 8시 10분까진 크게 번지지 않던 불이 번쩍하는 폭발과 함께 몇 초 만에 급격히 번지기 시작합니다. 2층 창문에서도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시간상 대원들은 불이 커진 것을 보고도 3층으로 진입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대원도 이들이 "불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빠르게 수색하자"며 공장에 진입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내부 상황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진입한 대원 중 2명이 고립된 것으로 확인된 시간은 밤 8시 24분. 14분 동안 구조대원들은 공장 1층을 가로질러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가 구석구석을 탐색했습니다. 불이 점점 더 커지자 철수를 결정했지만, 김수광, 박수훈 소방관은 끝내 화염 속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화염 키운 샌드위치 패널과 식용유

이번 불은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삼켰습니다. 건물을 지탱하고 있던 철근까지 녹여버릴 정도로 화력도 강했습니다. 화재 초기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3층 바닥층은 결국 1층까지 주저앉았습니다. 이는 두 소방관이 빠져나오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습니다.

주변 목격자들은 이날 화재 현장에 커다란 폭발음이 4번 울렸다고 입을 모읍니다. 화재 발생 때인 7시 45분에 한 번, 4인1조가 공장 진입을 시도하던 8시 11분쯤 한 번, 그리고 김수광, 박수훈 소방관이 고립된 24분쯤 한 번. 마지막으로 8시 27분쯤 가장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은 공장을 집어삼켰습니다.

빠른 연소와 수차례 걸친 폭발. 이는 이번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꼽히는 샌드위치 패널식용유의 특징과 일치합니다.


해당 공장은 2020년 5월 허가를 받은 철골 구조 건물입니다. 벽면과 내부 벽 등을 샌드위치 패널로 마감했습니다. CCTV 영상에도 불이 난 건물 3층에서 아래쪽으로 불붙은 샌드위치 패널 조각들이 계속 떨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 불이 나고 여기저기 불이 옮겨붙으며, 공장은 화재 발생 30여 분 만에 전체가 불길에 휩싸입니다. 불이 빨리 옮겨붙고 빨리 타버리는 샌드위치 패널의 특성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샌드위치 패널은 철판 2장 사이에 스티로폼 같은 단열재를 채운 건축 자재입니다. 싼값에 보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화재에 취약해 수차례 지적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2020년 12월 국토부가 샌드위치 패널 품질 인정제를 도입했지만, 2020년 5월 만들어진 이 공장에 소급 적용되진 않았습니다.

식용유는 화재 중 폭발의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식용유는 380도가 넘으면 자연적으로 불이 붙고, 소화기나 물을 쓰면 불꽃이 더 커집니다. 내부 CCTV를 확인한 경찰은 "양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최초 발화한 튀김기 옆에 업소용 식용유가 상당수 놓여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3층에는 식용유가 수천 킬로그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재 발생부터 서서히 달궈진 식용유들이 이윽고 고열에 터지거나 흘러내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는 소방당국이 진화를 위해 물을 뿌렸을 때 화염과 연기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진입 만류했다면, 라이트라인 사용했다면

고인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던 몇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공장 대표와 직원들이 왜 공장 안에 누가 있는지 몰랐는지 등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공장 관계자들은 구조대원들과 만났을 당시 "저녁 6시에 3층 전 직원이 퇴근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명이 더 나오자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구조대원 4명은 내부 진입을 결정했습니다. 공장 측이 정확한 내부 인원을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없었을 인명 사고였던 겁니다.

연기 속에서도 소방관의 피난을 유도해주는 장비인 '라이트라인'을 챙겨 올라갔다면, 결과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김수광, 박수훈 소방관은 처음 올라왔던 계단 입구까지 다 왔지만, 마지막 순간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구조대원들이 현장까지는 라이트라인을 챙겨가긴 했습니다. 하지만 검색을 시작하던 당시엔 시야가 나쁘지 않았던 탓에 사용하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리적으로 바닥이 무너졌다면 어찌할 방도가 없었겠지만, 혹시나 화염에 퇴로가 가려졌던 거라면, 라이트라인을 보며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번 사고가 구조 현장에 라이트라인의 중요성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안전을

2월 3일, 경북도청에서 두 소방관을 위한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다음 생에는 희생하며 사는 인생보단 너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너의 행복,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고 더욱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김수광 소방장 친구의 말에 영결식장은 울음바다로 변했습니다. 평소 휴일 근무를 꺼리지 않았던 김수광 소방장은 2019년 크리스마스엔 소셜미디어를 통해 근무 사실을 알리며 "누군가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나의 크리스마스를 반납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재 현장으로 출동할 모든 소방관들의 오늘이 안전하길 기도합니다. 치솟는 화염에도 혹시 있을 인명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김수광, 박수훈 소방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배성재 기자 ship@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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