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치는 北 정확한 실상 파악부터…‘고려거란전쟁’ 통해 본 교훈 [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2. 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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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역사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포스터 [KBS 제공}
北에 대한 정보 파악 완벽히 해서

방어태세 만전, ‘안보 포퓰리즘’ 경계

현명한 지도자는 쉬워 보일 때도

비극적인 상황 변화 염두해둬야

요즘 TV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강감찬이 활약하는 3차 거란 침입(1018년)을 앞두고 있다. 2차 침입 때 거란 요나라 황제 성종에게 친조(親朝)를 약속하고 거란군을 철군시킨 고려 현종은 이후 아프다는 핑계로 친조 요구를 계속 거부한다. 이를 괘씸히 여긴 성종은 1차 침입 때 서희 담판으로 내준 지금의 평안도 ‘강동 6주’를 돌려주지 않으면 침략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를 막고자 요나라 수도 상경에 사신으로 찾아간 현종의 장인(김은부)은 현지에서 기막힌 정보를 얻는다. 거란이 서북 지역 반란들을 토벌하는데 정신이 팔려 고려를 침략할 경황이 없다는 것이다. 요가 고려 침략을 떠벌린 것은 공갈포였던 것이다. 김은부가 어렵게 이 소식을 고려 조정에 전하자 성종은 ‘침략 불가’를 확신하고 북쪽 국경 강화에 매진하게 된다. 몇년 뒤 거란의 3차 공격을 귀주대첩으로 막아낸 것은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그에 따른 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우리를 향해 전쟁 운운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불멸의 주적’인 한국과는 통일도 포기하고 전쟁을 준비하겠다며 이달 들어 연일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고 있다.

이에 한미 전문가들은 한반도 전쟁 발발부터 국지 도발 가능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달 11일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 공동 기고에서 “지금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매우 극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김정은이 1950년 할아버지(김일성)처럼 전쟁을 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썼다. 반면 북한군이 쓸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있는 마당에 김정은의 겁박은 엄포용일 뿐이라는 진단도 있다. ‘고려거란전쟁’처럼 북한이 겉으로는 세게 얘기하지만 그들 사정을 들여다보면 실제 전쟁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정치외교 이슈에서 100% 예측 가능한 정답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북한 도발을 지켜보는 우리 국민은 예전보다 많은 예산과 수준 높은 기술장비를 갖고도 왜 정확한 예측을 못하는지 답답하다. 전쟁 개시 변수가 예전보다 많아져 분석이 힘들 수 있지만 정보 역량을 키우는데 막대한 비용을 쏟고 있음을 감안하면 다소 허망하다. 국정원 인적 정보 네트워크인 ‘휴민트’도 있고, 고도의 정찰위성으로 북한 동향을 샅샅히 감시할텐데 왜 좀더 명확한 답을 낼 수 없는가.

윤석열 대통령, 군 주요지휘관 회의 발언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1.31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z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전쟁을 위협하는 북한 정권을 겨냥해 비이성적이자 반민족적 집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주일 전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장병들에게 “김정은 정권이 전쟁을 일으키는 최악의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은 최단 시간 내 적 지도부를 제거하고 ‘정권 종말’을 고하는 선봉장이 돼야 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5일 논평에서 “(신 장관이) 최악의 망발까지 거리낌 없이 줴쳐댔다(떠들어댔다)”고 비난했다.

정부가 북한을 향해 내뱉는 거침없는 발언은 한두 번 들으면 속이 시원하다. 북한의 억지와 궤변에 우리 정부가 당당히 얘기하는 것을 꺼려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큰소리가 자주 반복되면 왜 시끄러운지 국민은 의심하게 되고 이러다 진짜 전쟁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 마련이다.

북한이 겉과 달리 전쟁을 일으키기 힘든 충분한 속사정이 있고, 우리가 그 점을 꿰고 있다면 지금처럼 강대강 국면은 당장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고려가 거란의 당면한 겁박을 무시하고서 향후 대비에 매진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 대신에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미가 초토화할 역량과 계획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정학 연구자인 로버트 카플란이 최근 저서에서 “현명한 정치가라면 언제든 비극적으로 바뀔지 모를 상황을 염두해둬야 한다”고 한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돈을 뿌리는 것만이 포퓰리즘이 아니다. 불안한 안보 현실을 감추느라 공수표를 날리는 것도 ‘안보 포퓰리즘’이다. 특히 윤 정부는 북한과의 물밑 접촉도 과거 정부만큼 활발하지 않은데다 중국·러시아와 소원한 관계로 인해 이들을 통해 북한을 제어할 수단도 부족하다.

이제 우리 정부는 진짜 북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찾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국민을 달래려 북한을 무시하는 발언만 계속하다간 김정은 페이스에 휘말려 원치 않은 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 북한의 정확한 실상에 근거한 충실한 대비가 먼저지, ‘사이다 발언’의 유효기간은 짧다. 카플란의 지적대로 전쟁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까지 염두해두고 조용히 국방 태세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북한에 큰소리 쳤다가 전쟁이 나고, 북한의 실력을 그때서야 확인하고 나서 “국민께 사과드린다”는 말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2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푸틴 대통령과 크렘린 의중을 면밀히 파악하지 않은 채 “전쟁은 없다”는 희망회로나 “없어야 한다”는 당위론에 빠져 일어났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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