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상상… 따스한 인연… 오스카, 누구를 보고 웃을까

이정우 기자 2024. 2. 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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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보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들
가여운 것들
‘프랑켄슈타인’ 비틀기 버전
에마 스톤, 전라 연기도 불사
바튼 아카데미
고집불통 교사와 반항아 학생
함께 성탄 보내며 마음 열어
패스트 라이브즈
뉴욕서 재회한 유년시절 단짝
코리안 아메리칸의 경험 담아

내달 10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저 멀리 미국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장이지만, 태평양 건너 한국도 들썩인다. 칸·베를린·베니스 국제영화제에 비해 대중적인 작품이 많고, 국내 개봉작도 많아 우리에게 친숙한 편이다. 더구나 올해는 한국계 영화감독 셀린 송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각본상 후보에 올라 일찍부터 관심을 모은다. 이에 ‘패스트 라이브즈’를 비롯해 주요 부분 후보에 오른 작품들 중 아직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대표 작품을 골랐다.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본 기자의 일종의 ‘미리보기’ 가이드라인이다.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은 압도적이다. 아름답게 축조된 구조 안에서 시각적 강렬함을 주며 신의 섭리를 매혹적으로 부인한다. 신생아 수준의 지능을 가진 벨라(에마 스톤)가 집을 떠나 인류사를 압축해 경험한다는 줄거리부터 거대하다. 파스텔톤의 포르투갈 리스본과 황금색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의 매음굴에 이르며 벨라는 성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것을 깨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질문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고전 신화를 비틀어 기괴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란티모스 감독의 장기가 잘 발휘됐다. 기독교의 ‘천지창조’와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비틀기이자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마이 페어 레이디’로 영화화)의 뒤집기 버전이다.

영화는 유아부터 성인까지 벨라의 성장 드라마이자 로드무비라고 볼 수도 있다. 전라 연기를 불사한 에마 스톤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로 ‘플라워 킬링 문’의 릴리 글래드스톤과 2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란티모스의 전작들에 비해 유머가 많이 늘었지만, 불편한 느낌은 여전하다.

‘바튼 아카데미’유니버설픽쳐스 제공

◇바튼 아카데미

미국 뉴잉글랜드주의 한 사립 고등학교 기숙사. 있는 집 자식들이 한데 모인 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방학 때 갈 곳 없는 ‘외로운’ 학생과 교사, 영양사 아주머니가 기나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완고한 고집불통 교사 폴 허넘(폴 지어마티)과 머리는 좋지만 반항기 심한 학생 앵거스 털리(도미닉 세사)는 여러 에피소드를 거쳐 아버지와 아들 이상의 유대감을 맺고, 영양사 아주머니 메리 램(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등 주변 사람은 외톨이인 폴과 앵거스에게 따스한 정을 일깨운다. 영화는 따스하면서도 지적으로 이들이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그린다.

할리우드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인 폴 지어마티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에 이어 다시 한 번 인생 연기를 펼친다. 그는 얼굴 표정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우면서 자격지심 큰 외골수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따스한 남자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로 ‘오펜하이머’의 킬리언 머피와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조이 랜돌프는 여우조연상 후보 1순위이다.

가볍고 우스워 보였던 인물들이 서서히 스며들며 관객의 감정 깊숙이 자리를 남긴다. 영화 내내 미소 짓다가 끝날 때쯤 펑펑 울고 싶어지는 영화다.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패스트 라이브즈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은 미국적 사고에 동양적 개념인 ‘인연’을 효과적으로 불어 넣어 신선한 느낌의 영화를 만들었다. 앞서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미나리’나 미 크리틱스초이스 최우수 외국어시리즈 수상작 ‘파친코’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보였다면, 이 영화는 영미권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는 차이점을 가진다.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남녀가 20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 간 나영(그레타 리)은 초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해성(유태오)과 재회한다. 그녀의 곁엔 남편인 아서(존 마가로)가 있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 미래를 관통하는 ‘인연’에 대해 말한다.

송 감독은 영화 ‘넘버3’의 감독 송능한의 딸이다. 12세에 캐나다로 이민 간 후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했던 코리안-아메리칸 2세로,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각본상 후보에 올라 있다.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가 세계를 호령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한국계 감독이 데뷔작으로 오스카 작품상·각본상 트로피를 노리는 건 여전히 ‘사건’이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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