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증시 생존 조건]④ 생기 잃은 경제 역동성 살려야 자본시장도 큰다

강정아 기자 2024. 2. 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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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수출 중심에 작은 내수시장…유가·환율에 민감
韓 GDP 순위 2000년 12위서 2023년 13위로 제자리걸음
경제 정체와 맞물려 등장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지금도 여전
“산업별 선제적 개편 이뤄져야…원천기술 기반 산업 중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명목 GDP는 1조6733억달러다. 수치로만 보면 전 세계 13위에 해당하는 경제 대국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대국’과 다소 거리가 먼 모습이다. 우리나라 증시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기업은 짠물 배당에 익숙하고, 소액주주는 늘 찬밥 신세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벤치마킹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 받는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한국 경제는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다. 어려운 경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가 2013년 내놓은 일명 ‘개구리 한국 경제’ 보고서는 당시 국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맥킨지는 “한국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며 “다가오는 주변 환경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경제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맥킨지는 10년 후인 지난해 말 개구리 한국 경제 보고서 2탄을 냈다. ‘한국의 다음 S-커브(성장곡선)’란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맥킨지는 “10년 새 물 온도가 더 올라갔다”며 여전히 냄비 속에서 한가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개구리를 즉시 밖으로 꺼내야 한다고 다그쳤다.

2000년 12위였던 한국의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2023년 13위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우리 경제의 큰 틀을 대대적으로 다시 짜지 않고선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경고는 한국 자본시장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미래가 없는 경제를 믿고 뭉칫돈을 맡길 투자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경기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뉴스1

◇ 사라진 韓 경제 활력

한국 경제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 비중이 크다. 제조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스마일 커브(Smile Curve)로 산업별 가치사슬을 살펴보면 핵심 부품과 소재, 마케팅 서비스 등의 부가가치가 가장 높다. 반대로 부가가치가 가장 낮은 영역은 제조다.

또 우리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다. 국제유가와 환율 등 외생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경제란 의미다. 상대적으로 내수시장은 작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내수 활성화 결정요인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내수 비중은 주요 선진국 수준인 60%를 밑돌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산업 트렌드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지만, 한국은 뚜렷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 2005년의 수출 상위 10개 품목을 1985년과 비교하면 20년 새 6개 신규 품목이 새롭게 순위에 올랐다. 그런데 2022년을 2005년과 비교하면 9개 품목은 17년 전과 같고, 디스플레이 한 개 품목만 새로 등장했다. 그만큼 산업의 역동성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스타트업 시장도 빈약하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최근 5년(2019년~2023년)간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원)가 넘는 글로벌 유니콘 기업 수는 449개에서 1209개로 2.7배 증가했다. 반면 한국의 유니콘 기업 수는 같은 기간 10개에서 14개로 1.4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 세계에서 한국 유니콘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2.1%에서 지난해 0.8%로 쪼그라들었다.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근무하고 있다. /뉴스1

◇ 경제 생기 잃으니 증시도 저평가 심화

학계와 금융투자업계를 중심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란 표현이 나오기 시작한 시기도 한국 경제가 정체되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한국증권학회는 2006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단과 원인 분석’이란 연구에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 기업의 주가 현금흐름비율(PCR)이 외국보다 최대 3배가량 적었다고 발표했다. 한국 기업의 투자 가치가 그만큼 낮았다는 것이다.

상황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작년 5월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2012~2021년 사이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평균 1.2배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2.2배)와 선진국(2.2배)은 물론 신흥국(2.0배), 아시아태평양(1.7배)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자본연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미흡한 주주환원과 함께 저조한 수익성·성장성을 꼽았다.

목대균 KCGI자산운용 운용총괄대표(CIO)는 “경제 자체가 성장성이 둔화하고 외부 변수에도 취약한 구조인데, 주주환원율마저 낮다 보니 국내 증시도 장기간 박스권에 갇혀 있다”며 “투자자로선 투자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치니 장기 보유보다는 단기 매매 중심의 순환매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4일 정부는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했다. 시가총액이 보유 자산보다 적은 PBR 1배 미만 기업이 스스로 주가 부양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려는 정부 노력은 추가적인 상승을 이끌 중요한 촉매제”라며 12개월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2850으로 제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팹(공장)에서 한 연구원이 공정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산업 경쟁력 확보해야 자본시장도 성장”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제대로 해소하려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진정한 의미의 한국 증시 저평가 탈출이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맥킨지는 석유·제철·조선 등 구조적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의 선제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기업 계열사와 협력사 사이의 수직적 구조를 개혁해 수평적인 관계를 구축하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수월해지고, 이 과정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소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또 반도체, 배터리에 이어 에너지 전환, 바이오 등 원천기술에 기반을 둔 산업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은 필수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대외 리스크가 한국 경제 및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정부의 경제 부문 정책 대응 수준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에서 산업연구원은 “중장기적인 경제·산업 둔화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 강화와 국제 질서 재편에 대한 정부 대응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보다 높고, 상속세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정부가 세액 부담 완화 등으로 산업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궁극적으로 자본시장도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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