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산친구] 박성태 선생과 친구들

신준범 2024. 2. 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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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쌓는 심정으로, 생전에 1대간·7정맥·6기맥· 100지맥까지 모두 밟으련다.
신산경표 박성태 선생과 최남준, 김태영, 정병훈씨
북한산 수리봉 자락에 선 산친구들. 왼쪽부터 최남준, 정병훈, 박성태, 김태영씨다.

우리나라 산줄기 종주로 따지면 박성태 선생과 그의 산친구들이 최고다. 박성태 선생은 산경표의 산줄기를 발로 답사해 산자분수령을 정확하게 적용한 <신산경표(新山經表)>를 책으로 만들었다.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기는 것처럼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우리 산의 숙제를 푼 이가 박 선생이다. 우리나라 산줄기를 정리한 이를 여암 신경준-고산자 김정호로 잇고, 다시 발굴한 이를 이우형-조석필로 잇는다면 마지막 자리에서 현대적으로 완성한 이가 박성태다. 잊혀진 산줄기이자 개념이었던 백두대간의 부활에 공헌한 것이다.

아직도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산맥론이 한국 지리학을 점령하고 있다. 덕분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한자투성이의 족보처럼 관심 밖에 있는 산경표지만 세월이 지나 재평가받을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는 지리교과서에 이름을 남길 만한 인물이다. 올해 대한산악연맹은 이런 박 선생에게 산악문화상을 수여했다.

이들은 지맥을 함께 타는 사이다. 지맥을 탄다는 것은 등산 베테랑을 넘어 골수 산꾼임을 뜻한다. 우리 산줄기를 종주하는 사람들의 종주 순서가 백두대간(683km)을 타고, 다음 7개 정맥(신산경표 기준, 정맥당 100~500여km), 다음 6개 기맥(기맥당 107~158km)을 다 타고 나서 찾는 것이 지맥이다. 신산경표 기준 100km가 넘는 지맥은 남한에 10개가 있으며 보다 짧은 지맥이 90개, 총 100개가 있다. 이들은 지맥을 60% 이상 종주한 상태다. 매달 구간 종주를 하는 이들이 대간 완주에만 3년이 넘게 걸리는 걸 감안하면 산줄기 전문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개인당 1만km가 넘는 거리의 산줄기를 산행했다.

편안하게 산을 타는 연륜의 산꾼들. 이들은 대간과 정맥, 기맥을 완주했으며 100개 지맥 중 60% 이상을 탔다.

장거리 종주산행 전문가들인 이들을 만난 건 백두대간-한북정맥-도봉지맥의 지능선에 솟은 북한산 불광동 들머리다. 닳은 배낭과 익숙해 보이는 등산복 차림의 노장들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맞는다. 최남준(69), 박성태(68), 김태영(66), 정병훈(66)씨다.

최남준, 김태영씨는 취재를 위해 특별히 부산에서 올라왔다. 얕은 비가 오지만 개의치 않고 산으로 든다. 도시에서는 뭔가 어색해 보이던 이들도 산에 들자 편안한 표정과 말로 바뀌었다.

산친구들이 함께 산을 탄 건 7년 정도 되었다. 이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오랜 친구라 보긴 어렵다. 그러나 산을 같이 탄 걸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맥 산행할 때는 4~6일을 함께 산을 탄다. 24시간 같이 자고 먹고 걷고 하니 그 친밀도가 여느 7년 사귄 친구와 다르다.

이들을 산친구로 역어준 건 표지기다. 표지기를 쓰레기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처럼 기맥이나 지맥 줄기를 종주하는 이들에게 표지기는 망망대해의 등대다. 기맥이나 지맥 정도 되면 등산로가 없고 덤불과 낭떠러지 같은 예측할 수 없는 거친 산덩치들이 끝없이 뻗어 있어 독도에 능한 베테랑도 자칫하면 길을 잃기 쉽다.

이때 표지기는 갈 길을 알려주는 등대요, 생명과 같은 귀한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같은 선답자의 이정표를 몇 년씩 보노라면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도 생기고 고마운 마음도 든다. 간혹 이정표에 휴대폰 번호를 써 두기도 하는데 이는 길을 잃었을 때 연락하라는 꾼들끼리의 암묵적 호의다.

북한산 불광동 입구에서 갈 길을 살피는 산친구들. 지맥 산행은 길이 없는 곳을 뚫고 가는 경우가 많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 산꾼이 이들이다.

표지기 덕분에 맺은 인연

표지기는 산꾼의 내공을 짐작케 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험하고 외진 지맥에서 홀로 길잡이 노릇을 하는 표지기라면 그만큼 리본 주인의 산행능력이 뛰어난 것이고, 표지기가 얼마나 낡았느냐에 따라 산행 경력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재적소의 위치에서 표지기가 제 역할을 하느냐는 것이다.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표지기는 스스로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망신의 도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7년 전이지만 다들 자신의 고유한 표지기가 있었기에 그 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고 의식하게 되는 것과 같다. 먼저 연락을 한 건 정병훈씨다.

"내가 연락해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박성태 선생이 옛날에는 표지기에 전화번호를 적었거든요. 그걸 보고 연락해서 알다가 남해에서 처음 얼굴 보고 친해졌죠."

이렇듯 표지기를 보고 전화해서 아는 사이였다가 같이 산행한 걸 계기로 가까워져 본격적으로 산줄기를 함께 타기 시작했다. 이들은 철저히 나이 순서대로다. 산행 후 여관에 가면 나이 순서대로 샤워하고 잠자리도 나이 순서대로다. 한창 같이 종주할 때는 1년 중 180일을 24시간 붙어서 지냈다. 그래서 "형제나 다름없다"고 다들 스스럼없이 말한다. 산꾼들이 이렇게 의기투합하기가 쉬운 건 아니라고 한다.

이들의 명함과도 같은 표지기. 왼쪽은 최남준 옹의 '준ㆍ희' 표지기, 오른쪽은 남해가 고향인 정병훈씨의 표지기다.

"개떡 같은 고집으로 가득 찬 게 산쟁이들이에요. 산쟁이 고집이 없으면 지맥 같은 데는 뚫고 나가지를 못해요. 아주 옹고집이죠. 그래서 뭉칠 때 잘 뭉치고 깨질 때 잘 깨져요."

정병훈씨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늦게 산에 입문한 막내다. 몇 년 전 서울로 이사 왔지만 원래 경남 남해 토박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는 10년 됐지만 대간-정맥-기맥을 완주했을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을 6번 완주했으며 현재 7번째 산행을 하고 있다. 백두대간에 관해선 이들 중 가장 전문가인 셈이다. 그는 고향 남해의 남해지맥을 개척한 주인공이다. 길도 뚫고 지도도 만들었다.

<월간山>에 기사가 실리고 나서는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그는 수기로 '남해산악회 정병훈'이라 써서 표지기를 달았다. 지금은 수기로 하지 않는데 이는 최남준씨의 조언 때문이다. 최남준씨는 수기로 하면 잘 안 보인다며 표지기란 다른 사람이 잘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갈림길이 있으면 갈림길에 붙이지 말고 갈림길 지나서 달아야 산꾼들이 내가 길을 맞게 왔구나 하는 희열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지맥을 탈 정도면 모두 베테랑들인데 길을 떠먹여줄 필요는 없죠. 지금은 표지기가 너무 많아서 공해로 취급받지만 5년 전만 해도 기맥, 지맥 가면 길도 없고 표지기도 없었어요. 그래서 표지기 보면 사람보다 더 반가웠어요."

표지기에 전화번호를 써둔 경우에는 "시도 때도 없이 한밤중에 길을 잃었다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 전화가 온다"고 한다. 능선에 산소가 있는 곳도 많아 "산소에 이 리본이 뭔가요?"하고 묻는 전화도 온다. 그러면 거기가 대간-정맥-기맥으로 이어지는 좋은 데라고 설명해 주면 땅주인들은 그렇게 좋은 자리면 땅을 사라고 얘기한다.

산행을 마치고 막걸리로 뒷풀이를 한다. 알고 지낸지는 7년이지만 형제 같은 우애를 자랑하는 진짜 산친구들이다.

제주 올레 비박하며 일시종주해

최남준 선생은 우리 나이로 칠순으로 가장 고령이고 산행 경력도 가장 오래되었다. 부산 국제신문 '근교산' 산행 대장으로 1990년대 후반 많은 산을 부산 시민들에게 소개했다. 8년 전 십자인대를 다쳐 치료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지금은 다리가 좋지 않지만 예전에는 탱크 같은 강인한 산행 스타일로 유명했다고 한다. 산쟁이들 사이에서도 비박 전문가로 통하는 그는 50km가 넘는 산줄기를 혼자 비박하며 며칠을 걸어 완주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서도 80리터 배낭 메고 두 달 동안 나침반과 지형도 들고 포터 없이 다녔다. 요즘은 "몸이 안 좋아서 둘레길이나 다닌다"고 얘기하지만 지난주에도 제주 올레길을 80리터 배낭을 메고 비박을 해가며 일시종주로 돌았다. 제주도의 무수한 관광객들 사이를 혼자 큰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칠순의 고집스런 산쟁이가 최남준 선생이다.

부산 건건산악회 전 회장이며 현 고문인 그는 '준·희'라는 표지기로 산꾼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김태영씨는 부산 건건산악회 회장으로 최씨의 산악회 후배다. 그의 산에 대한 열정은 에베레스트를 오를 감이라고 이들은 얘기한다. 4년 전 부산등산학교를 수료하며 암벽등반을 시작한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난이도 5.11까지 등반한다. 스포츠클라이밍 전국대회에서 장년부 2위에 올랐을 정도로 실력이 좋다. 4년밖에 안 되었음에도 실력이 뛰어난 건 쉼 없는 노력 덕분이다. 지맥을 종주하는 동안 잠깐 쉴 때 그는 앉지 않고 나무나 바위에 매달려 근육을 단련한다. "등반을 쉬면 바위에 올라가질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등반 외에도 인라인과 스케이트를 수준급으로 잘 타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이들 세 명은 "박성태 선생은 지맥하는 사람들의 우상"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김 회장은 "박 선생이 신산경표 책을 내고 우리가 지맥을 타면서 길을 냈다"고 한다. 정병훈씨는 "신산경표가 나와서 사람들이 산에 많이 미쳤다"고 한다. 갈 수 있는 산줄기를 만들어줘서 덕분에 즐거워하는 산꾼들이 많다고 한다. 지맥을 탈 때는 춘천의 산꾼 김우항(64)씨와 함께 다섯 명이 산을 탄다. 가장 힘이 좋다는 정병훈씨가 선두에 선다. 그는 팀의 선두이자 주방장이자 총무다.

새벽 4시 기상, 오전 6시30분 산행을 시작해서 하루에 10시간씩 며칠을 산행한다. 구간을 나누고 진입과 탈출할 곳을 정하는 등 모든 계획은 박성태 선생이 잡는다. 최 고문과 박 선생의 걸음이 느린 편이지만 발빠른 김 회장과 정병훈씨가 맞춰간다. 정병훈씨는 명산도 아닌 지맥을 고생스럽게 타는 까닭을 말한다.

북한산 수리봉 전망바위에서 화통하게 웃음을 터뜨린 산친구들. 왼쪽부터 신산경표의 박성태 선생, 부산 건건산악회 최남준 고문, 남해산악회 정병훈 선생, 건건산악회 김태영 회장.

"우리가 미친 듯이 산행하는 건 노후를 즐기기 위한 것도 있지만 박 선생님의 신산경표를 존경하기 때문에, 신산경표대로 한번 밟아보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놀자고 가는 건 아닙니다. 탑을 쌓는 심정으로 가거든요. 생전에 완주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노장들이지만 능선을 두고 편한 길로 우회하는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팀의 가장 강성은 최남준 고문이다. '최 고집'의 명성답게 군부대나 목장이 나와도 우회 없이 돌파한다. 군 쪽에 발이 넓어 산행 전 미리 협의해 협조를 구한다고 한다. 그것도 안 되면 '노인계'를 쓴다.

"보통 미인계를 쓰는데 우리는 노인계를 씁니다. 군부대 초병 만나면 미리 모자를 다 벗고 흰머리 휘날리며 장병들한테 '우짜겠노, 우리 좀 가자'하면, '이리저리 해서 가시면 됩니다' 하고 길까지 알려줘요."

고집 센 산쟁이들이 한 팀이 된 건 "양보 덕분"이라고 한다. 박 선생은 "다들 개성이 강하지만 양보하니까 의기투합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최 고문은 무릎이 안 좋은데도 팀워크가 깨질까봐 산행이 잡히면 빠지지 않는다. 산행 후 밤에 잘 때면 통증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다음날 산에 간다. 그는 "지맥 하나 같이 가면 마음이 너무 편하다"고 한다. 이들은 "당일 산행만 하면 그런 정이 절대 생길 수 없다"고 한다.

"산행 끝나고 내려오면 여관방에서 샤워하고 다들 팬티 바람으로 밥을 먹어요. 이 나이에 어느 형제가 팬티 바람으로 같이 밥 먹고 잠을 잡니까. 우린 형제 사이 이상이에요."

정병훈씨는 10년 전 체중이 123kg이었다. 누가 산에 간다고 하면 "내려올건데 왜 올라가냐"며 혀를 찼던 사람이 지금은 85kg이 되었다. 그래서 "산은 내 생명의 은인"이라 말한다. 그는 박성태·최남준씨의 표지기를 보고 먼저 전화를 했고, 김우항씨의 표지기를 보고 수소문해 연락처를 알아내 인연을 맺게 했다.

"남해 망운산에 올라갔는데 준·희 시그널이 있어. 남면의 오지 산에 올라갔는데 거기도 같은 시그널이 있어. 참 대단한 젊은이들이네 해서 전화하니까 노인네 목소리야."

전화로 알고 지내던 이들이 처음 만난 건 2005년 4월이다. 최남준 고문의 제의로 화악산 산행을 한다. 이때가 첫 산행이었는데 의기투합해서 화악지맥, 명지지맥, 철마지맥 등을 탄다. 60km 이하의 짧은 지맥은 보통 월요일에 만나 금요일까지 달아서 산행해서 완주한다.

60을 넘긴 연세에 길도 없는 지맥을 가는 즐거운 악전고투의 산친구들이다. 박성태 선생은 스스로를 가리켜 "미친 사람들이 자기가 미친 줄도 모르고 가는 것"이라 한다. 불광동 북한산 자락의 너른 마당바위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빗방울이 굵어져 산을 내려간다. 형제애로 뭉친 산친구들과의 유쾌한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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