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컬] 90세에 불수사도북 "성공 가능성 0%…그래도 도전"

서현우 2024. 2. 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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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에 백두대간 일시종주 이상목씨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 편집자 주

1937년생 이상목씨는 2016년 80세에 백두대간을 일시종주했다. 지금은 90세에 불수사도북을 24시간 내 완주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90세가 됐을 때 24시간 내로 불수사도북을 완주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상목씨는 매우 특이한 산꾼이다. 그는 처음 등산을 시작했었던 2003년부터 목표가 뚜렷했다. 첫 목표는 걸어서 지구 한 바퀴 둘레만큼의 거리를 오로지 산행만으로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산행에 산행을 더해 목표를 달성한 후엔 두 번째로 90세가 됐을 때 24시간 내 불수사도북을 완주하겠다는 꿈을 세웠다.

불수사도북은 서울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이어 걷는 40km 내외의 장거리 길이다. 준족들은 12시간 즈음 걸려 주파하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20시간 안팎 소요된다. 그것도 물론 체력이 일반인에 비해 뛰어나고, 꾸준한 산행을 통해 준비된 사람만이 완주 가능하다.

1937년생인 그는 곧 90세가 된다. 젊은 층도 어려운 불수사도북을 90대에 완주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의학적으로 가능하긴 할까. 게다가 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나이법이 바뀌었다. 기존에 '한국 나이'로 따졌던 그는 "최근에 바뀐 나이법을 적용해 1년 뒤에 도전할지, 원래 하던 셈법대로 할지 느닷없는 고민 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단 1년이지만 노년의 입장에선 그 1년이 어마어마한 차이를 불러올 수도 있는 시간이다.

"언제가 됐든, 하실 수 있을 것 같으세요?"

그의 얼굴이 확 굳었다. 그리고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내뱉었다.

"현재로선 가능성 0%입니다."

그는 대체 스스로도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도전에 왜 임하려는 것일까.

인터뷰 당일에도 남한산성 산행을 다녀 온 이상목씨.

첫 산행 목표, 4개월 중 100일 이상 등산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난 이상목씨는 본인의 원적을 아산으로 꼽았다.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숨어 살았던 충남 아산군 송악면 외암리다. 실제로 오래 살았던 건 서울 강남 말죽거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이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서울 언주초등학교를 다녔다.

"부모님 두 분이 다 학교 선생님이셨어요. 그래서 전근 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어요.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하남, 부곡온천 등이 떠오르네요."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온 뒤에 여러 일에 손을 댔다. 먼저 운동기구를 판매했다. 10년 정도 강남 일대에서 장사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그런데 계속 이 일이 잘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친구 한 명이 부동산업을 제의했다. 그 친구는 "이 선생은 손님이 오면 인사만 하라"고 했다. 이씨는 "그 친구가 기술이나 정보력은 있는데 동네 주민들과 면이 없었던 탓에 동업을 제의한 것"이라며 "나는 동네 사람들과 오래 알고 지낸 탓에 쉽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는 부동산 호황기였어요. 그래서 저는 '이거 사면 무조건 오른다'고만 말하면 됐고, 실제로 그 말이 전부 들어맞았어요. 그러니 사업이 한 10년 동안 정말 잘 나갔죠."

사업으로 바쁜 중년을 보낸 그에게 어느덧 황혼기가 찾아왔다. 자신의 인생과 신체를 되돌아보니 관리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172cm의 키에 당당한 체격이었는데 늘 술만 먹고 누워서 살다시피 하니까 몸무게가 84kg까지 불어 있었다.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은 것이 등산이다. 무턱대고 바로 산에 가면 사고가 날 것 같아 먼저 어느 정도 정상 체중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무려 1년 6개월이나 걸렸다.

80세 백두대간 일시종주 당시 한계령을 앞두고 김윤세 인산가 회장(맨 오른쪽)과 피이팅을 외치고 있는 이상목씨(왼쪽 두 번째).

"제 성격이 원래 좀 그래요. 막연하게 등산을 몇 번 해보자가 아니라 4개월 중 100일을 남한산성을 오르자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어요. 이 프로젝트를 성공해 내면 성취감도 들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죠.

일단 산행을 시작하면 남은 4개월은 꼼짝없이 이걸 계속 해야 되는 거니까 몸이나 결심이 못 버티는 게 걱정됐어요. 거하게 작심해 놓고 3일 만에 무너지면 창피하잖아요. 그래서 살도 한 73kg까지 빼고 마음도 다잡고 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죠. 그렇게 2003년 12월 23일 산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4개월 중 100일, 그러니까 120일 중 20일을 빼놓고 계속 등산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1~2개월은 입이 계속 부르틀 정도로 고단했다. 너무 힘들어서 안 될 것 같았는데 2개월을 넘기니 무언가 고비를 딱 뛰어넘은 듯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몸이 등산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이 정도면 걸어서 하늘까지도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제 '걸어서 하늘까지' 갈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같은 이름의 책도 내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처음엔 좋다고 했으나 3일 뒤 절대로 안 된다고 돌아섰다. 하늘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영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지구 한 바퀴 거리를 걷는 것으로 바꿨어요. 지구는 타원형이라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좀 다르지만 저는 4만 120km를 책정했습니다. 이게 제 1차 목표였어요."

백두대간 종주 중 설악구간에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다.

초 단위, 10m 단위로 산행기 기록

120일 중 100일을 남한산성을 오르겠다는 범상치 않은 목표를 세운 것에서부터 엿보이듯 그는 범상치 않게 자기 자신을 몰아붙였다. 평소에는 남한산성에서 훈련하듯 산행하고 다른 산악회들과 어울려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올랐다.

"남한산성에선 저만의 속도 훈련을 했어요. 옛 공수부대 터 옆 다리를 건너면서 시계를 보고 출발을 하고, 남한산성 서문에 왼손을 딱 짚는 순간까지 기록을 늘 측정해요. 최고로 몸이 좋을 땐 23~24분 내외로 소요됐죠. 한 번은 21분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시계를 잘못 봤거나 하는 사고가 있었을 것 같아요. 너무 빨라서 제 자신이 납득하기 어려운 기록이지요."

그렇게 매일 남한산성을 뛰고 오르자 늘 같은 시간에 산을 오르면서 자주 마주치던 한 사람이 "젊은이 너무 무리해서 뛰지 마시오"라고 걱정을 해줄 정도였다. 이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나보다 나이가 더 어렸었다"면서 웃으며 "아무튼 어린 사람에게까지 그런 말을 듣자 더 빨리, 잘, 많이 산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더 붙었다"고 했다.

신이 났다. 2004년 1년 중 352일을 산에서 보냈다. 그리고 2005년에는 333일, 2006년에는 338일, 2007년에는 288일을 산행했다. 거리는 각각 1,862km, 1,975.49km, 2,626.15km, 2,638.4km다.

화대종주 중 지리산 천왕봉 정상.

여기까지 읽었을 때 어느 정도 등산을 한 사람이라면 바로 두 가지 생각이 들 터다. 먼저 정말 터무니없는 횟수와 거리란 것이며, 이어서 두 번째 실제로 걷긴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수 있다. 산행을 0.01km 단위까지 기록한 것이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산지컬, 아니 산지컬이 아니라 등산 관련 취재를 하면서 가장 곤욕인 점이 이런 기록에 관한 것이다. 본인이 했다고 말하는데 물증이 없으면 믿기 어렵다. 기록을 했어도 불확실한 경우도 더러 있다. 사실 남에게 이처럼 모종의 검증 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산행하는 사람은 드물기에 참 어려운 문제다.

이런 면에서 이씨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모든 산행을 측정하고, 수기로 기록한다. 물론 산으로 걸어서 지구 한 바퀴란 개인적인 목표를 세운 탓에 기록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씨는 한 발 더 나갔다. 산행 시간은 전부 초단위로. 거리도 10m 단위까지 적는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냐고 묻자 "어쩔 수 없다. 습관이고 성격이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다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선 말하고 싶어요. 기록을 남겨놓지 않으면 실제에 관한 기억은 어느덧 지워지고 엉뚱하게 생겨난 기억을 말하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죠.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는데 이게 정말 재밌어요. 밤새는 줄 모르고 합니다. 끊을 수 없네요."

"언제까지 기록하실 생각이신데요?"

"죽을 때까지요."

백두대간 종주 중 설악산 대청봉.

지구 한 바퀴에 830km를 더 걸어

그렇게 쓴 산행 수기를 세로로 쌓으면 높이가 1m 80cm에 이른다. 빼곡한 산행을 거쳐 자신이 세운 목표인 걸어서 지구 한 바퀴를 달성했다. 2003년 12월 23일부터 2021년 3월 14일까지 집계한 기록이다. 현재까지 따지면 1,626회가 일반 산행, 즉 남한산성이 아닌 전국 산을 오른 기록이며 3,941회는 매일 운동 삼아 오른 산행이다. 쓰레기를 줍는 클린산행도 1,326회나 했다. 무게로 따지면 282.8kg의 쓰레기를 산에서 되가져왔다. 그는 북한산국립공원 시민봉사단으로도 활동했다.

"그런데 사실 2021년 3월 14일이 정확한 완주일이 아닙니다. 완주일은 총 3개가 있어요."

내막을 들어보니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꼼꼼하고 집요하다. 일단 이씨는 처음 계산한 값을 토대로 2020년 10월 27일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도착하면서 4만 120km를 완주하는 산행을 계획해 성공했다.

그런데 하산한 후 다시 검산한 결과 계산에 착오가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하면 2020년 10월 23일 서울 근교 바라산 정상에서 280m 전진한 건강 365계단 하단 5m 지점에서 4만 120km를 완주한 것이 된다.

일본 북알프스 105km 종주 중 나루사와 다케(2,641m) 정상에서 식사하고 있다.

이쯤 되니 찝찝해진다. 그래서 아예 확실하게 더 걸어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과거 GPS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산행 대장들이 대충 알려주거나 민관에서 각기 자신들의 도법으로 발간한 지도에 적힌 부정확한 산행거리를 받아 적었었기에 오차는 무조건 있었다. 그래서 이런 누락, 첨가, 착오를 감안해 총 거리의 2%를 약간 넘는 보험거리 830.63km를 추가해 총 4만 950.63km를 걸었다. 그 날이 곧 2021년 3월 14일이다.

"전국에서 250m가 넘는 고지는 전부 다녔다고 보시면 됩니다. 백두대간은 80세에 42일에 걸쳐 일시종주했고요. 불수사도북 왕복을 40시간 55분에 걸쳐서 한 적도 있고, 강남 16산 종주 100km를 31시간 55분 만에 한 적도 있죠. 참 이 강남 16산 종주를 강동남 16산 종주라고도 부르잖아요? 그거 제가 처음 쓴 용어예요. 코스가 강동을 충분히 지나는데 강남이라고만 하면 틀린 거잖아요? 물론 제가 강동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습니다. 하하. 하여튼 완주했을 때 환희가 정말 말로 표현 안 됐었죠. 그때가 2011년이니 70대 중반일 때군요."

경쟁심 털어내는 데 2년 걸려

그는 2003년 이후 자신의 산행 역사를 시기 별로 구분한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맹훈련기, 2006~2010년은 숙련기, 2011~2013년은 완숙기며 이후 2014년부터 쇠퇴기라고 봤다. 2021년 3월 이후는 재활기다. 몸이 늙어가는 것을 매일 체감하면서 1차 목표였던 걸어서 지구 한 바퀴를 완성한 후 2차 목표인 24시간 내 불수사도북 완주를 위해 몸을 되살린다는 의미다.

이씨는 처음 산행을 시작한 이후 모든 산행을 수기로 기록해 정리하고 있다.

"이 시기 구분은 체력을 기준으로 설정한 건가요?"

"아니오. 체력만으로 따지자면 2008년부터 완숙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마음이 준비가 안 됐기에 2년을 더 숙련기로 잡았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산행적으로 완숙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체력적으로도 뛰어나야 하지만 마음가짐도 온전해야 합니다. 특히 경쟁의식이 없어야 해요. 산행하다보면 꼭 앞장서서 걷고 싶은 경쟁의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걸 마음속에서 털어내야 됐는데 그 기간만 꼬박 2년이 걸렸어요."

"쭉 쇠퇴기다가 2021년부터 재활기라고 명명한 건 어떤 연유인가요?"

"몸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요. 산행거리도 짧아지고, 연간 산행횟수도 계속 줄고 있죠. 지금은 꺼진 모닥불과 다름없습니다. 다만 그 모닥불에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불씨를 찾아 다시 불을 붙여보고 싶은 상태인 거죠."

이씨의 배낭은 모범적이다. 여분의 장비는 물론 응급상황을 대비한 장비가 빠짐 없이 다 있다. 무게는 4.5kg 정도다.

많은 산을 둘러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산을 묻자 "수기에 모든 산이 기억으로 보존돼 있다"고 답했다. 가장 좋아하는 산도 "꼽기 어렵지만 명산을 꼽자면 아무래도 지리산"이라고 했다. 또한 아기자기한 걸로 쳤을 땐 설악이 으뜸이란다. 특히 울산바위 쪽으로 올라가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면 그런 환희가 없단다.

"우리가 영화관에 가면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보고 나가죠. 그런데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올라서 겹겹이 끝이 없는 산의 그림자들을 보고, 바라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발로 걸어서 그 속으로 들어가죠. 그러니까 관람에 그치지 않고 연출까지 하는 겁니다.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산은 무엇인가요?"

"산은 자연이자 인간의 모태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산에 묻히잖아요. 죽어 산으로 돌아가니 우리는 산에서 나온 거죠. 근본적으로 사람이 가야 하는 곳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다른 공간보다 산이 더 좋아요. 산에서 건강도 찾고, 산행 기록을 20년간 쌓았죠. 이게 제 긍지입니다."

80세 백두대간 일시종주 당시에도 식량이 없는데 배낭 무게가 16kg에 육박했다.

성공률 0%지만 도전한다

이씨는 단독 산행을 즐겨 한다. 4,895번의 산행 중 3,579번이 단독 산행이었다. 그는 "하늘과 산이 맞닿은 선과 겨울에 뼈대만 남은 능선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넓어지게 된다"면서 "그것은 단독으로 가야 더 잘 느껴진다"고 했다.

"혼자 산에 다니는 건 자의 반 타의 반이긴 합니다. 먼저 제 또래에는 저만큼 산행할 수 있는 친구들이 없어요. 그래서 같이 다닐 일이 생겨도 대부분 띠동갑 친구들과 같이 가죠. 그리고 애초에 혼자 가는 게 더 좋아요. 그래야 생각할 시간이 많거든요. 동행이 생기면 서로 일상적인 생각을 털어놓기 바쁩니다. 그런 생각은 휘발성이 높아요. 뭔가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도 산에서 내려오면 다 까먹는 거죠. 하지만 혼자 가서 얻은 성찰은 하산한 후에도 계속 남습니다."

그래서 90세가 됐을 때 결행하는 불수사도북도 홀로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 같이 하면 그들과 보조를 맞추다가 내 페이스를 잃어버린다"고 했다. 상대방이 맞춰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애초에 남에게 맞추려는 성격이라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고 했다. 성공하면 얼마나 기쁠 것 같은지 묻자 1차 목표였던 지구 한 바퀴 완주 당시를 얘기했다.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쁨이었어요. 제가 흘린 노력과 땀방울이 얼마인데요. 제가 첫 2년 동안 남한산성에서 흘린 땀을 모아놓으면 목욕을 며칠간 할 수 있을 거예요. 엄청나게 쏟아냈습니다. 운동선수들에게 메달이 주어지듯, 완주가 제 메달입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이씨는 지금 보폭은 넓게, 발걸음은 빠르게, 기본 4시간씩 쉬지 않고 걸으면서 90세 불수사도북 종주를 준비하고 있다.

"선생님은 80세에 백두대간을 일시종주했잖아요. 일반인 기준으로 보자면 괴물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체력인데 왜 90세 불수사도북 성공률을 0%로 보시는 건가요?"

"제가 최전성기 때 체력을 100으로 본다면 2021년에는 35% 미만으로 떨어졌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더 떨어진 상태고요. 그러니 성공할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도전할 겁니다. 저는 정신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걸 넘어서야 합니다. 달리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네요. 어떻게든 해내야 할 것입니다. 장거리 산행은 원래 체력보다는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럴 때 초인적인 힘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올 겁니다."

그렇게 그는 지금으로선 도저히 성공할 길이 안 보인다면서도 길을 찾아 나설 참이다. 원래 산길은 잘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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