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위 둥둥 뜬 쌀포대 시신…친구 생파 후 실종, 범인은 11년째 미궁

신초롱 기자 2024. 2. 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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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필리핀 이주 서범석씨, 30년 지기 생파 후 실종→사망[사건속 오늘]
2013년 1월 한국인 서범석씨가 필리핀 세부의 한 바닷가에서 쌀포대에 쌓인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지상낙원. 이곳에서의 미래는 눈부신 태양처럼 밝고 투명한 바다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2011년 8월 직장 문제로 지친 마음을 달래려고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마음의 안식과 여유를 느끼고 세부에 정착해 살기로 한 서범석씨(2013년 사망 당시 43세) 역시 그랬다.

필리핀에서 여행사 사업을 하고 있던 중학교 동창들에게 일을 배워 이듬해에는 세부지사 공동 소장까지 맡아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그랬던 그가 2013년 1월 4일, 여행사 공동소장이자 중학교 동창 A씨의 생일 파티 겸 저녁 식사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 발견 당시 시신에선 '후두부 총상'…식사 후 2시간 내 사망 추정

2013년 2월 가족들은 급히 세부로 향해 실종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인 2월 5일,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시신 안치소였다. 방부 처리된 상태로 보관 중이었다는 시신의 지문을 확인한 결과 서씨의 지문과 일치했다.

가족들은 시신이 한 달 전인 1월 7일 바다에 떠있는 상태로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시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각종 비닐봉지와 자루로 둘러싸여 신체부위가 포장돼 있었다. 시신에 매달린 흰색 자루에는 여러 개의 돌덩이가 들어 있었다. 손은 등 뒤에서 테이프로 묶여 있었다.

부검 결과 사인은 후두부 총상이었다. 총상 외에 다른 상흔은 없었다. 사망 추정 시간은 마지막 식사 후인 1월 4일 저녁 식사 2시간 이내였다.

◇ 30년 지기 친구 겸 공동소장 A씨 "식사 후 먼저 자리 떠"

서씨와 공동소장으로 함께 일한 30년 지기 친구 A씨는 실종 당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서씨는 A씨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직원들과 생일 파티를 했다. 오후 7시쯤 사무실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의 한 식당으로 이동해 저녁 식사를 했다. A씨는 당시 서씨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문자를 주고 받은 것으로 기억했다.

오후 8시30분쯤 2차 장소로 옮기려고 하자 서씨는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고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됐다.

서범석씨 시신 발견 당시 모습.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 실종 6일째, 서씨 차량 발견…현장엔 의문의 남성도

실종 6일째 되는 날 그의 차량이 난데없이 사무실 근처에 나타났다. 범인이 가져다 놓은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 차량은 여행사 사무실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세차를 한 듯 깨끗한 상태였다.

당시 여행사 직원은 차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고 내부를 살펴보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직원들도 잘 알고 있는 현지인 남성 C씨였다.

◇ 사망 2개월 전 중고차 구입…현지인 판매자와 갈등

서씨는 실종 2개월 전 30만 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약 600만원에 중고차를 C씨에게 구입했다. 하지만 C씨가 판매 금액을 일시금으로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경찰 조사에서 C씨는 휴대전화를 자발적으로 제출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경찰이 통신기록은 물론 그날의 알리바이를 조사했지만 수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 마지막 통신 기록은 실종 전날 오후 9시2분…A씨 증언 불일치

현지 경찰은 서씨의 통신 기록을 조사하다 의아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실종 당일 서씨의 통신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서씨 휴대전화에 남은 마지막 통화 기록은 3일 오후 9시2분이었다.

A씨는 현지에서 실시된 참고인 조사에서 서씨가 저녁 식사 도중 휴대전화로 문자를 하고 전화를 걸고 받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통신 기록은 A씨의 주장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서씨의 여자 친구는 서씨의 연락을 받는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여자 친구는 평소처럼 서씨의 집에서 그가 퇴근하길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고, 전화를 걸었을 땐 전원이 꺼져 있던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 지인들, 서씨와 A씨간 갈등…실종 후 열흘 만에 신고 '의문'

서씨의 한 지인은 서씨가 직장이나 교민사회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A씨와는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세부지사로 발령받은 뒤 서씨는 A씨의 횡령 사실을 알게 됐고 내역을 회사 대표한테 보고하면서 A씨는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소장 권한도 잃게 됐다.

2013년 1월 4일 필리핀 세부의 여행사에서 공동소장으로 함께 일하던 친구의 생일 파티 후 사라진 서범석씨.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경찰은 서씨와 A씨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는 주변인의 증언에 따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의심 가는 정황은 있었지만 유의미한 증거는 없었다고 한다.

의아했던 건 서씨가 실종된 후 열흘이 지난 1월 14일에 실종신고를 했다는 점이다.

A씨는 평소 서씨가 머리를 식힌다며 연락을 끊고 사라지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마지막 저녁 식사 이후에도 항구, 백화점, 음식점에서 목격됐다는 이야기가 이어졌기에 출근하지 않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 뒤 목격담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실종신고를 했다고 한다.

◇전문가들, 살해 배후 가능성 존재 시사

서씨는 182㎝, 100㎏ 건장한 체격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유기하는 과정에 공범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서씨를 살해한 이도 원한 관계에 있는 자가 직접 나선 게 아니라 살인을 실행한 사람과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이 따로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현지에서 치러진 서씨의 장례식장에는 평소 A씨가 잘 알던 폭력 조직원 일부가 참석했다. 장례식장 사진에서 이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A씨는 조직원들이 서씨의 장례식에 찾아온 이유는 본인과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폭력조직원과의 관계를 특별히 부정하진 않았지만 서씨의 사망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씨가 현금을 많이 소지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중고차 판매자 C씨를 의심하는가 하면 여자 관계가 복잡했다며 서씨 주변 여자들을 의심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당시 필리핀에서도 국가적 관심사였다. 하지만 기술적인 한계와 언어 장벽에 부딪혀 수사는 쉽지 않았다. 2018년에는 국내 수사관이 한국에 있던 관련 인물들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지만 한계에 부딪히며 수사가 멈춘 상황이다.

서씨가 떠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하루도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은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는 그날의 진실을 찾길 바라고 있다.

r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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