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프로는 아니고 ‘집밥러’입니다만 [퇴근 후 부엌- 준비편(조미료①)]

2024. 2. 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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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가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직접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 술 떠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끼에 1만원이 훌쩍 넘는 물가에 집밥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으신 분들이 많겠죠. 막상 레시피를 훑어보다 보면 기본으로 갖춰야 할 조미료가 너무 많아 의지가 꺾입니다. 자취생에게 다시마, 건멸치가 웬 말입니까. 배보다 배꼽이 클 것 같은 예감입니다. 그래도 몇 가지만 갖춰놓으면 본전을 뽑을 수 있습니다. 4가지 기본맛(짠맛, 단맛, 신맛, 쓴맛) 중 짠맛·단맛·신맛, 마지막으로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의 기본 원리만 알면 됩니다. 집밥에 도전하기에 앞서 맛내기의 지름길인 조미료들을 소개합니다.

소금 어떤 거 살까? 기억해, 맛(M)소(S)금(G)
[유튜브 ‘백종원의 요리 비책’]

짠맛을 내는 소금은 단맛을 돋보이게 하고 쓴맛은 잠재웁니다. ‘맛의 대비 효과’로 단맛과 감칠맛을 끌어내주죠. 꽃소금, 천일염, 구운 소금 등 마트에서 소금이 너무 많아 무엇을 고를지 모르겠다면 일단 맛소금부터 사면 됩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맛을 뽑아내려면 이만한 소금이 없습니다. 맛소금은 소금과 글루탐산나트륨(MSG)을 배합해 짠맛에 감칠맛까지 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파스타 면을 삶을 때, 무침 요리를 할 때, 국에 간을 할 때 고루고루 쓰입니다. 입자도 고와 음식에 더 빨리 골고루 퍼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이어터는 ‘알룰로스’ 없으면 못 삽니다
설탕 대체감미료 중 하나인 알룰로스. 신주희 기자

맛 내기에 단맛이 빠질 수 없습니다. 꿀, 올리고당 등 비롯해 자일로스 등 종류도 많습니다. 가장 기본 재료는 설탕이 꼽힙니다. 하지만 제일 작은 400g짜리 설탕을 사놓아도 전부 다 쓰기도 어렵습니다. 요리에 설탕 한 스푼 들어갈 때마다 양심의 가책도 커집니다. 다행히 요새는 설탕을 대신한 대체 감미료도 시중에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알룰로스를 추천합니다. 설탕과 가장 유사한 맛을 낼 뿐 아니라 칼로리도 일반 설탕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시럽 대신 요거트에 뿌려먹는 등 활용도도 좋습니다. 시중에서는 투명한 시럽 형태와 가루 형태의 둘 다 판매하고 있습니다. 단, 가격이 사악합니다. 알룰로스는 설탕 가격보다 3~4배 비쌉니다.

그런데 설탕과 똑같이 단맛을 내는데 어떻게 칼로리가 0일 수 있을까요? 이유를 제조사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알룰로스는 과당과 똑같은 화학식을 가졌지만 3번 위치의 탄소가 변형된 형태를 띤다고 합니다. 대다수 물질의 형태는 좌우 대칭을 이루는데, 비대칭 구조인 알룰로스는 과당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사가 이뤄집니다. 대사 과정이 달라지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특징으로 알룰로스는 소장에서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오줌으로 배출된다고 합니다.

고기에 뿌리는 향수, ‘후추’
동료가 캄보디아 여행에서 사다준 캄폿 통후추(왼쪽)와 간후추(오른쪽). 캄폿 통후추는 현지에서도 6000~7000원으로 고급 후추에 속한다고 합니다. 풍미가 워낙 뛰어나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반환할 때 캄폿 지역만 반환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신주희 기자

자취생 신분에 그때그때 신선한 재료로만 요리하는 건 사치입니다. 냉동실에 자투리로 남은 고기를 쓰거나 맛이 가기 직전 재료들로 요리해야 할 때가 다반사입니다. 이럴 때 유용한 조미료가 후추입니다. 후추는 물질을 성질을 바꾸는 게 아닌 고기의 잡내를 가려 뇌가 착각하게끔 합니다. 땀 냄새를 향수로 가리는 원리와 같은 셈이죠.

후추는 모양에 따라 가루 후추, 통후추로 구분되고 색에 따라 맛이 다양합니다. 크게는 고기와 잘 어울리는 흑후추와 부드러운 맛의 백후추로 나뉩니다. 통후추를 그때 그때 갈아 쓰면 가루 후추보다 풍미가 더 좋습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유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재료 썰]

재료 소개만 하고 넘어가면 아쉬우니 이에 대한 이야기 좀 풀어볼까 합니다. 오늘날 소금, 설탕, 후추는 흘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흔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큼 중요한 식재료였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부귀영화’의 상징이었던 이들의 활약상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식초와 함께 인류 최초의 조미료로 꼽히는 소금은 요리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분자 요리의 대가 페랑 아드리아(세계적인 스페인 식당 ‘엘 불리’의 셰프)는 소금을 “요리를 변화시키는 단 하나의 물질” 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중요한 물질이다 보니 소금은 언어와 종교, 심지어 예술에까지 녹아있습니다.

로마 네로 황제 시절 발행된 동전(왼쪽). 건강의 여신 '살루스'가 그러져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참조]

고대 로마 신화 속 건강의 여신인 '살루스(Salus)'라는 이름은 라틴어 'Sal(소금)'에서 기원했습니다. 고대에서부터 소금이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소금은 중세시대 신의와 약속을 상징했습니다. 귀중한 물질인 만큼 신의를 상징한다고 본 것이죠. 성경이나 성경의 일화를 그린 명화에서 ‘소금 메타포’가 종종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창세기에는 소돔에서 도망친 롯과 그의 아내가 천사의 약속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자 아내가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소금의 의미를 그림에 숨겨두었습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뒤집어진 소금통을 앞에 두고 얼굴을 찌푸리는 유다가 있습니다. 신의를 져버린 유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독자 여러분도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탈리아 화가 지아코모 라파엘리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자이크한 작품 [123rf]

소금은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1800년대까지도 프랑스에서는 임금과 귀족의 식탁에만 소금통을 놓을 수 있었고, 소금통 위쪽 자리에 앉을수록 높은 신분임을 드러냈습니다.영어로 ‘상석’을 의미하는 ‘Above the Salt(소금 위쪽에)’ 숙어도 여기서 유래됐습니다.


설탕도 곧 권력을 의미했습니다. 8세기 제당 기술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발전됐는데, 술탄이 설탕으로 모스크(이슬람 사원)을 만들어 제례가 끝난 뒤 설탕 조형물을 빈민들에게 부숴서 나눠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1세기말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에 전파된 유럽 귀족들의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귀족들은 파티의 마지막에 화려한 설탕 과자를 내오면서 부를 과시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명종 때 설탕이 처음 등장합니다. 이인로의 ‘파안집’에 처음 기록된 설탕은 중국 송나라에서 후추와 함께 들어왔고 귀한 약재로 쓰였습니다.

동래부사접왜사도[국립중앙박물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사절단 일행을 그린 작품.

후추도 과거 진주 한 알과 맞바꿀 정도로 귀한 향신료였습니다. 후추는 임진왜란과도 관련이 있는 식재료인데요, 야사에서는 후추 몇 알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을 결심했다고도 해요. 조선의 유학자 유성룡이 쓴 ‘징비록’을 보면, 1586년 일본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는 예조판서가 베푼 잔치 자리에서 술에 취한 척 값비쌌던 호초(후추의 옛말)를 흩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기생들과 악공들이 다투어 줍는 소란을 보고 통역에게 “너희 나라는 망할 것이다. 기강이 허물어졌으니 망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징비록에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사실을 보고 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군대를 일으켰다는 후문입니다.



〈참고문헌〉


식탁 위의 과학, 분자요리 (이시카와 신이치)


설탕으로 보는 세계사 (가와키타 미노루)


D-알룰로스의 생리 기능성과 응용 및 생물학적 생산기술(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징비록(유성룡)


[퇴근후 부엌] 다음 편에서는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 3대장과 함께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매주 토요일에 찾아갑니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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