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 3년…“군부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4. 2. 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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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인터뷰
아웅 묘 민 미얀마 민족통합정부 인권장관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의 아웅 묘 민 인권장관이 1월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 1일은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었다. 3년 전 2021년 2월 1일은 두달 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압승해 민주 정부 2기가 출범하는 새 의회 개원일이었다. 이날 새벽 쿠데타는 희망의 여명을 순식간에 암울한 절망으로 바꿔놓았다. 군부는 시민의 평화적 시위와 불복종 운동을 무자비한 유혈 진압으로 짓밟았다. 그러나 이미 한 차례 민주주의와 자유를 경험한 미얀마 국민은 꺾이지 않았다. 그해 4월 저항 운동의 구심인 민족통합정부(NUG)를 구성했다. 5월에는 시민방위군(PDF)을 창설하고 ‘봄의 혁명’ 완수를 위한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미얀마 쿠데타 3주년을 하루 앞둔 1월31일, 민족통합정부의 아웅 묘 민 인권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다음날 성공회대 아시아엔지오(NGO)정보센터와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고영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으로 마련한 국회 토론회 참석을 시작으로, 다음주까지 한국 정치권과 시민사회, 한국 체류 미얀마인들을 두루 만나 미얀마 민주화 혁명의 당위성과 과정을 설명하고 지속적 관심과 지원을 호소한다.

그는 1988년 양곤대 재학 중 8888 민주화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검거를 피해 국경지대의 무장투쟁조직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에 합류했다. 이후 버마인권교육연구소(현 이퀄리티미얀마)와 성소수자 (LGBT) 인권단체 ‘컬러스 레인보’를 설립해 인권 운동에 헌신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인권학을 공부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웅 묘 민 장관은 방한 첫날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3주년을 맞은 2월 1일, 타이 방콕의 유엔사무소 밖에서 미얀마 국기와 아웅산 수치 사진을 든 사람들이 군정 종식을 촉구하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전날 국가비상사태를 오는 7월 31일까지 6개월 연장했다. 방콕/AFP 연합뉴스

집속탄까지 사용하는 데모사이드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 집계를 보면,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거의 45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체포된 사람은 거의 2만6000명(누적)이다. 그 수치는 지금도 날마다 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국민을 상대로 반인도적 탄압을 저지르고 있다. 민간인을 살해하고 재산을 약탈하고 집을 불태우고 마을을 파괴한다. 사망자와 구금자 데이터는 시민을 상대로 한 전쟁범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 수치는 공식 집계보다 더 많을 것이다. 군부는 국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깥에 알려지지 않도록 인터넷을 차단하고 언론을 통제한다.”

―이전 정부들에도 인권부가 있었나?

“미얀마에서 정부에 인권부를 둔 것은 민족통합정부가 처음이다. 군부의 잔학상을 기록해 세계에 알리고, 합당한 처벌을 하고, 국민의 인권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이는 향후 수립될 미얀마 연방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과 제도에 인권 관련 규정들을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다.”

―인권은 광범위하고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다. 장관이 생각하는 인권을 간략히 정의한다면?​

“첫째, 모든 인간은 생존과 안녕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불편함을 겪지 않고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 두가지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명예를 지키는 기본이다.”

미얀마 쿠데타군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는 소수민족무장단체 중 하나인 아라칸군(AA)이 지난달 6일 북서부 친주에서 미얀마군 제308 경보병 대대를 점령했다. 미얀마 독립언론 ‘이라와디’ 제공

―현재 미얀마 국민의 인권은 어떤 상황인가?

“쿠데타 자체가 중대한 인권 유린이다. 군부는 평화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체포·고문·성폭행하고 살해했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는 전투기로 공습하고 집속탄까지 투하했다. 상상할 수 없는 데모사이드(democide·정부에 의한 시민 대량 학살)이자 전쟁범죄다.”

―미얀마 국민은 3년 가까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전황은?

“무장투쟁 조직은 크게 4가지다. 첫째, 시민방위군은 민족통합정부 국방부의 지휘 계통에 있는 공식 군대다. 시민군도 군인이므로 엄격한 교전규칙과 인권 보호 규범을 교육받는다. 둘째, 지역방위군(LDF)은 쿠데타 직후 각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소규모 부대들이다. 셋째, 소수민족무장단체(EAO)들은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하지만 민족통합정부와 협력한다. 넷째, 특정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저항하는 세력도 있다. 특히 작년 가을 ‘삼형제 동맹’(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타아웅민족해방군·아라칸군 3개 소수민족무장단체가 결성) 이 동북부에서 ‘10·27 작전’을 시작해 훌륭한 전과를 거두고 있다.”

―쿠데타 군부는 막강한 화력뿐 아니라 수십년 동안 구축한 경제적 기반, 촘촘한 감시망, 권력 집행의 노하우가 있다. 그 때문에 민주화 투쟁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70년 동안 모든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시민혁명군에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평가해온 전문가들은 이제 자신들이 잘못 판단했다는 걸 고백할 때가 됐다. 쿠데타군은 이미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삼형제 동맹이 장악한 영토가 갈수록 넓어지고, 쿠데타군에서는 장교부터 병사까지 많은 군인이 탈영해 저항군에 합류하고 있다. 쿠데타군은 지금까지 이렇게 큰 패배를 당한 적이 없는 만큼 더 거칠고 반인도적 폭력을 저지를 우려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심리적으로도 이기고 있다. 이런 성과는 3년 동안의 저항에 지쳐가는 시민들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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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권부와 성소수자 장관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다. 그런데 소수민족들은 최대 민족인 버마족(전체 인구의 68%)이 자원과 기회를 독점하면서 자신들을 소외시켜왔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른 갈등이 뿌리 깊은데?

“미얀마의 역사와 정치적 경험을 봤을 때 민족 갈등이 있었던 건 맞다. 하지만 지금은 힘을 합쳐 군부독재와 싸우고 있다. 민족통합정부는 버마족 중심의 민주주의민족동맹 소속 정치인뿐 아니라 소수민족 대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바로 오늘(1월31일) 오전에 민족통합정부와 소수민족무장단체들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민주주의·국가통합·민족자결 원칙에 따른 연방 민주연합(국가)의 설립과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단결 투쟁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이번 성명은 민족통합정부와 소수민족 간에 신뢰가 생겼고 공동의 이해관계가 깊어졌다는 뜻이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3주년을 맞은 2월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추모 집회장에 미안먀 군부의 폭력에 숨진 희생자들의 사진이 놓여 있다. AP 연합뉴스

―민족통합정부는 잘 작동하는가?

“대통령과 총리, 각 부처 장관 등 내각 구성원들은 보안상 미얀마 안팎에 흩어져 있지만, 온라인 채널을 통해 정례 내각회의를 하고 수시로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의 과제는 인권유린·군부통치 종식, 군부가 패퇴한 점령지의 치안과 법·질서 다지기,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과도정부(T-NUG) 구성과 연방민주주의 헌법 제정, 그 헌법에 따른 총선과 정부 수립까지다.”

―당신은 8888 항쟁이 군부 쿠데타로 실패한 이후 무장투쟁 학생조직에 합류했다가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8888항쟁 당시 나는 대학 마지막 학년이었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에서 외교와 홍보를 맡았다. ‘돈(Dawn·여명)’이라는 뉴스레터의 편집장도 했다. 그때 미얀마 인권 실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그런데, 미얀마 국민 대다수가 자신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고, 내가 당장 뭐든 도와줄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팠다.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부당하게 빼앗긴 인권을 되돌려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신은 미얀마 사상 최초의 성소수자 장관으로도 주목받는다.

“민족통합정부가 나를 인권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나의 성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인권 향상에 대한 나의 노력과 전문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민족통합정부가 얼마나 진보적인지를 보여준다. 미얀마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해선 부정적 편견이 컸다. 그들 대다수의 직업은 예술가나 무속인 두가지로 제한됐고, 마땅한 역할모델이 없어서 스스로 위축됐다. 그러나 민족통합정부가 나를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성소수자들이 ‘나도 큰 꿈을 꿀 수 있구나’라는 인식의 변화가 시작됐다.”

―미얀마 국민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미얀마에서도 케이팝과 한국문화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미얀마와 비슷해서 공감이 크다. 한국도 오랫동안 군부 독재와 싸워서 민주주의를 이뤄냈고 경제 발전도 성공했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초기부터 한국의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이 미얀마 민주 진영에 인도적 지원과 많은 도움을 주는 것에 감사하다. 한국 정부가 한국에 체류하는 미얀마 국민들을 비자 문제가 있더라도 (본국으로) 송환하지 않고 인도적 체류를 허용하는 것에도 감사하다. 한국 기업들도 미얀마 군부가 운영하는 기업들과 사업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군부의 경제력이 권력 유지와 인권 침해에 쓰이기 때문이다.”

―모든 무력충돌은 인도적 위기를 낳게 마련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과 달리 미얀마 상황은 ‘국내 정치’ 문제다. 국제사회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도와야 할 이유는?

“미얀마 혁명은 범죄 집단으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찾는 일이다.미얀마 상황이 더는 국내 문제가 아니다. 미얀마는 아시아 지역의 평화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 난민 사태와 인신매매 등 국경을 넘는 범죄는 주변국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 미얀마는 국제사회가 정의를 실현하는 책임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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