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만든 6가지 정황… 시스템은 껍데기만 남았더라

신다은 기자 2024. 2. 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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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참사 진상조사위 수천 쪽 자료 분석에서 추려낸 6가지 사실
제방 유실 낌새 알지 못한 지자체, 컨트롤타워 역할 모르는 수장들
‘오송참사 시민진상조사위원회’가 2024년 1월31일 충북도청에서 진상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시꺼먼 지하차도로 버스가 들어간다. 다른 차량도 줄줄이 꼬리를 문다. 공중에서 쏟아진 강물 6만t이 차도를 덮친다. 14명의 삶이 그대로 잠겼다. 2023년 7월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참사 6개월이 흐른 2024년 1월31일, 민간 조사위원들로 구성된 ‘오송참사 시민진상조사위원회’가 충북도청에서 1차 보고회를 열어 참사의 구조적 배경을 짚었다. 사회적 참사를 조사한 경험이 있는 위원 12명이 위촉돼 행정감사 자료와 각 기관 보도자료, 국회 회의록 등 수천 쪽에 이르는 자료를 모으고 주민들을 만나 참사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참사 직후 제기된 다양한 주장을 검증하니 사실과 부합한 내용도 있었고, 핑계에 불과한 내용도 있었다. <한겨레21>이 확인된 사실과 추가 규명이 필요한 과제를 정리했다.

① ‘관할’ 이유 댔던 청주시, 묵방지하차도는 관리?

사고 현장인 ‘궁평2지하차도’는 청주 시내에 있는 도로다. 그러나 지방도가 아닌 국도여서 충북도가 관할한다. 참사 직후 청주시는 이 점을 방패 삼았다. 침수 직전까지 차량 통제가 안 된 까닭에 대해 “충북도가 관할하는 도로까지 관리할 여력은 없다”고 방어했다.

조사위는 ‘관할’ 논쟁은 핵심이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사고 당시 청주시가 궁평2지하차도의 침수 위험을 아예 놓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청주시는 또 다른 충북도 관할 도로인 ‘묵방지하차도’는 사고 전부터 이미 주의를 기울여 관리하고 있었다. 청주시는 2023년 79개 ‘여름철 재해우려지역’을 지정하면서 충북도 관할 도로인 묵방지하차도를 포함했다. 청주시 관할 도로가 아니라도 재해가 예상되는 지역은 관리했다는 뜻이다. 반면 사고 현장인 궁평2지하차도는 제외됐다. 조사를 맡은 손익찬 변호사는 “어떤 기준으로 재해우려지역이 지정되고 배제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청주시가 궁평2리 주민들의 대피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정황도 있다. 도로 교통통제는 충북도 몫이어도 주민 대피는 청주시 업무임이 명확한데, 제방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관련 안내가 없었다는 것이다. 손 변호사는 “궁평2지하차도가 충북도 관할이어서 청주시가 조치를 못했던 게 아니라 미호천교 임시제방 붕괴 징후 자체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② 기준 바뀐 게 언젠데… ‘위험 최하’ 매긴 충북도

충북도가 관리하는 지하차도는 오창·마송·궁평2·묵방 지하차도로 총 4개다. 이 중 궁평2지하차도는 유일하게 100m가 넘고 미호강과도 가장 가까워 관리 필요성이 더 컸다. 그런데 충북도가 궁평2지하차도에 매긴 위험도는 ‘3등급’(호우경보시 통제 필요)으로 위험도 최하등급이었다.

충북도가 낡은 기준을 적용한 게 문제였다. 위험도를 매기는 기준으로 과거 침수 횟수를 따지 다보니 2019년 개통된 궁평2지하차도의 위험등급이 낮게 평가됐다. 이미 정부가 부산 초량지하차도 침수 사고를 계기로 2022년 8월 ‘강·하천 등 저지대 위치 여부’를 평가 기준으로 보강했는데, 충북도는 1년이 지난 2023년 7월까지도 이를 적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행정안전부 공문이 ‘자연재난과’로 들어와 전달받지 못했다”(2023년 7월18일 MBC 보도)는 이유다.

위험도 평가 방식도 허술했다. 충북도가 삼은 차량 통제 기준은 ‘물이 차량 바퀴의 50㎝까지 차는가’였다. 공무원들이 카메라를 통해 일일이 육안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시시각각 대응이 어려울뿐더러 오송 참사처럼 갑자기 물이 들이치는 사고에도 대비하기 어렵다.

폭우로 침수된 충북 청주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2023년 7월16일 소방 관계자들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

③ 이럴 거면 재난안전대책본부 왜 설치?

여러 기관이 효과적으로 재난에 대응하려면 ‘원팀’이 돼야 한다. 유관 부서와 기관들이 제각기 대응해선 안 되고, 재난 정보를 한데 모으고 종합해 판단하는 임시 의사결정기구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별로 만드는 ‘재난안전대책본부’(재대본)가 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재대본은 참사 때 제 기능을 못했다. 형식적으로 만들어놨지만 실제 재난 대응은 여전히 평소 담당 부서 위주로 알음알음 이뤄졌다. 예를 들어 금강유역환경청은 ‘미호강이 계획홍수위를 넘겼다’는 급박한 소식을 재대본이 아닌 흥덕구청 건설과에 임의로 전화해 알렸다. 그 소식을 전달받은 흥덕구청도 재대본이 아닌 청주시청 3개 부서(하천과·도로사업본부·안전정책과)에만 그 내용을 전파했다. 그 결과 청주시청 대중교통과가 참사 뒤에도 버스기사들에게 궁평2지하차도 우회를 안내하는 등 심각한 엇박자를 냈다.

재대본 구성 시기도 제각기 달랐다. 충북도는 사고 전날인 7월14일 오후 4시께 일찌감치 재대본을 구성하고 위험 단계도 가장 높은 ‘비상 3단계’를 발령했다. 반면 청주시는 약 10시간이 지난 이튿날 새벽 2시15분에야 재대본을 구성하고 비상 3단계를 발령했다. 재난 대응에 긴밀하게 협업해야 할 지자체끼리 위험 인식 차가 컸다고 볼 수 있다.

④ 시장과 도지사도 몰랐던 자기 역할

재대본부장인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도 재대본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먼저 충북도 재대본부장인 김영환 지사는 비상 3단계로 재대본이 꾸려진 7월14일 저녁 8시께 충북도를 떠나 서울로 향했다 . 지역 레저시설 관련 약속이었다고 한다. 재대본부장은 재난 상황을 빠르게 판단해 인력과 자원을 신속히 배치할 권한이 있다. 그런데 그 권한을 행정부지사에게 맡겨놓고 자리를 비운 것이다.

충청북도 대변인실은 김 지사가 밤 10시51분 충북도청으로 복귀해 6~7분가량 회의를 주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내용도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밤새 상황을 주시”(브리핑 자료)하라는 등 추상적 지시에 그쳤다. 이미 호우경보가 발령돼 ‘주시’가 아닌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범석 시장 도 재대본을 단순 회의 기구로 치부하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 시장은 2023년 9월 ‘왜 재대본 상황판단회의가 비상 2단계부터 실종됐냐’는 청주시의원의 지적에 “최일선 대응 기관은 순간순간 신속한 대응과 선제적 조치가 중요한 기관”이라며 “ 간부들이 잦은 상황판단회의를 하게 되면 오히려 대응에 차질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상황판단회의는 오히려 ‘재난 상황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대책본부장 등이 상황 판단을 하는 회의’(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관리규정)다. 동시다발로 들어오는 재난 위험 정보를 한데 모아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심각도를 판단한다. 이런 절차 없이 그때그때 임의로 대응하면 도리어 중요 정보를 누락하거나 오판할 위험이 커진다.

미호강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2023년 7월16일 119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주검을 수습해 물 밖으로 인양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실제 청주시는 아침 6시34분 ‘미호강물이 계획홍수위에 다다랐다’는 금강홍수통제소의 연락을 받고도 별다른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 연락이 약 2시간 전쯤(새벽 4시10분) 들어온 ‘홍수경보 발령’ 연락과 “유사한 내용이어서” 그랬다고 이범석 시장은 설명했다.(2023년 9월7일 청주시의회 답변) 그러나 두 메시지는 강도가 다르다. 홍수경보는 계획홍수위의 70%만큼 찼다는 뜻이지만, 계획홍수위 도달은 이미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조사자는 “가장 중요한 정보의 전파와 해석이 자의적으로 진행돼 위험을 더 가중했고 위험신호를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⑤ 위험 신고하니 “구청에 전화해보라”는 119

“미호천 교량 공사하는 쪽 허물어지면 오송 일대가 다 물난리 날 거 같은데요.”(시민)

“구청이나 이런 데 연락해보시겠어요?”(119종합상황실)

사고 전날 오후 5시21분께 119종합상황실로 접수된 미호강 범람 우려 신고 내용이다. 침수를 우려하는 시민에게 119종합상황실은 ‘구청으로 연락하라’고 답한다. “아쉽게(도) 전국에 우기가 심하게 와서 예방 차원으로 거기 갈 만한 인력이 없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재난 대응에 필요한 인력은 권한 있는 자가 승인하면 언제든 증원될 수 있다. 119종합상황실이 충북도나 청주시 등 유관기관에 연락하고 지원을 요청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조사자는 “인력이 부족하면 소방이 적극적으로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해야 할 사안인데 오히려 신고자에게 관련 기관의 협조를 구하는 책임을 떠안겨 결국 아무런 대응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극적 대처는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미호천교 공사 현장 감리단장이 사고 당일 아침 7시4분부터 112 신고를 두 차례나 접수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112종합상황실은 궁평2지하차도로 출동한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는지 확인도 않고 신고 접수 10여 분 만에 ‘도착종결’ 처리했다.

경찰이 없는 자리는 시민이 채웠다. 사고 직전인 8시30분께 궁평2지하차도에 진입하던 한 운전자는 위험을 알아차리고 차를 뒤로 빼면서 다른 차량을 향해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몇몇 차량이 그 덕분에 목숨을 구했지만 이미 차도에 들어선 차량은 그럴 수 없었다. 조사를 맡은 이성구 변호사는 “사인(개인)이 아닌 경찰의 통제였다면 747 버스와 후행 차량이 더 신속하게 지하차도에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⑥ 고작 ‘13㎝’ 모자라 홍수 못 막았다

참사 원인으로 지목된 임시제방에 대해서도 조사위는 ‘허용돼선 안 되는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미호천교 공사를 맡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이 공사에 방해된다며 기존 제방을 헐었다가 장마 직전 다시 쌓았는데, 그 높이가 기존 제방(32.65m)보다 3m가량 낮은 29 .74m였다. 사고 당일 미호강 최대 수위(29.87m)보다 약 13㎝ 낮아, 홍수를 막을 수 없었다.

사고 직후 행복청은 공사에 필요한 절차였으며 임시제방도 비교적 높이 쌓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임시제방이란 개념 자체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공사 주체가 임의로 제방을 철거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백경오 한경국립대 교수는 “건물 리모델링할 때 기둥 헐어놓고 임시기둥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냐. 제방도 홍수를 막는 필수 인프라기 때문에 애초 헐어서는 안 됐다”고 말했다. 그는 허가를 내준 당국의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사 주체가 임의로 제방을 헐고 쌓는 일은 관행처럼 반복됐다. 조사위가 2021년 10월~2023년 7월 미호천교 위성사진을 확인한 결과, 2021년 10월 이전부터 제방이 철거된 상태였다. 앞서​ 행복청은 ‘2021년 11월 제방을 철거했다’고 언론에 밝혔는데, 실제는 그 전에 철거됐을 거란 뜻이다. 행복청은 2022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공사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3월께 최종 보고 낼 듯

오송 참사는 한국 사회가 전혀 예상 못한 참사가 아니다. 2020년 부산 초량에서도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조사위는 “가까운 시기에 유사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는데 제대로 대비가 되지 못한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재발 방지 대책과 피해자 권리 회복에 관한 사안을 추가로 담아 3월 중 최종 보고회를 열 계획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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