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최고의 ‘신랑감’이었는데...추락한 공무원 위상
낮은 연봉,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공무원 기피 현상 나타나
[비즈니스 포커스]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매년 전국의 25세 이상 39세 이하 미혼남녀 1000명(남성 500명,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미혼남녀의 결혼 인식 관련 조사·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0년까지 남녀가 원하는 배우자의 직업으로는 매년 공무원이 첫손에 꼽혔다.
이상적 남편 직업으로는 17년째, 아내 직업으로는 7년째 1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1년 조사 때부터 결과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상적 남편 직업은 여전히 공무원이었지만 이상적 아내 직업이 8년 만에 일반사무직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남녀 모두 공무원이 아닌 일반사무직을 최고의 배우자감으로 꼽았다.
‘공무원’의 인기가 최근 들어 빠르게 식고 있다. 일반 기업 대비 현저히 낮은 연봉과 경직된 조직문화 등이 부각되며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공무원 기피’ 현상이 뚜렷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렵게 공무원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내고 이직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직업 선택에 대한 젊은층의 인식이 급변한 것이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무원이 외면받게 된 배경으로 분석된다.
몇 년 전만 해도 ‘공시 열풍’ 거셌는데
듀오의 조사에서도 보이듯이 공무원은 한때 최고의 신랑·신붓감으로 꼽힐 만큼 많은 이들이 꿈에 그리는 직업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용의 안정성 때문이었다.
처우는 다소 낮아도 정년이 보장된다. 이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처럼 경영이 어려워져 직장이 문을 닫을 걱정도 월급을 받지 못할 걱정도 없다.
또 퇴직 후에는 연금까지 꼬박꼬박 들어와 편안한 노후를 즐기는 것도 가능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안정성’을 직업의 첫째 기준으로 삼았다”며 “절대로 망할 걱정이 없는 공무원이 대기업 취업보다도 훨씬 어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한때 공시 열풍이 거셌다. 2016년에는 한 변호사가 7급과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예전만큼 공무원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를 보여주는 수치도 있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공채시험에서 720명 선발에 2만9086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은 40.4대 1로 4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40대 경쟁률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수치지만 과거에 비교하면 경쟁률이 급감했다.
지난 1월 18~22일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선발시험 원서를 접수한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선발예정인원은 4749명인데 10만3597명이 지원해 21.8대 1로 집계됐다. 32년(1992년 19.3대 1) 만에 가장 낮은 경쟁률이다.
출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5급 사무관 시험 인기도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2024년도 국가공무원 5급 공개경쟁채용과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 평균 경쟁률은 35.1대 1이었다. 2021년 43.3대 1을 기록한 뒤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지원자가 감소하는 반면 이탈자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8년 5761명이던 2030세대 공무원 퇴직자는 지난해 1만1067명으로 집계됐다. 5년 사이 두 배 퇴직 공무원이 늘었다. 얼마 전에는 국내 주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치의학전문대학원 최종 합격자 명단에 기획재정부의 저연차 사무관 4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직사회가 술렁이기도 했다.
이탈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여 더욱 문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 6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서 ‘나는 기회가 된다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는 문항에 ‘그렇다’라고 답한 중앙부처 및 광역자치단체 공무원은 45.2%로 집계됐다.
직전 실태조사에서 ‘이직 의사가 있다’고 답한 공무원은 33.5%였다. 불과 1년 사이 이직을 희만하는 공무원이 크게 늘었다.
공무원의 인기가 이처럼 급감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젊은층의 직업관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거엔 직업을 고르는 주된 요인으로 안정성을 추구했다면 최근에는 ‘수입’을 가장 중요시하는 흐름이 생겨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계청이 13~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사회조사 결과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35.7%가 직업을 고를 때 수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안정성을 꼽은 응답자는 16%였다.
직업 매력도 크게 떨어져
공무원들이 받는 연봉은 일반 기업과 비교해 낮다. 정부에서 공개하는 ‘공무원보수의 민간임금접근율’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83.1%였다. 2000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실제로 올해 9급 공무원 초임 연봉은 3010만원(월평균 251만원)이다. 공무원 이탈자가 빠르게 늘자 정부가 전년 대비 6% 연봉 인상이라는 파격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 9급 공무원 초임 연봉은 2831만원(월평균 236만원)이었다.
마침내 9급 초임 연봉이 3000만원을 돌파했지만 여전히 민간 기업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신입 연봉이 5000만원을 훌쩍 넘는 대기업들과는 비교조차도 안 된다.
취준생들이 바라는 연봉 수준과도 괴리가 크다. 취업 정보 사이트 잡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신입직 취업을 준비하는 4년제 대학 졸업 구직자의 희망 연봉은 평균 3610만원으로 나타났다.
취준생들은 9급 공무원 초임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길 바라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김현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낮은 연봉을 받는 공무원은 수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취준생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과도한 업무와 경직된 조직문화도 공무원 인기 급감의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중앙부처의 경우 업무 폭탄이 쏟아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용노동부, 국세청 등의 경우 수많은 민원인을 상대해야 해 공무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현직 공무원은 “중앙부처의 경우 업무량이 어마어마하다”며 “정부 정책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낮은 월급을 받으며 초과근무를 하니 힘든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수직적인 조직문화뿐 아니라 무의미한 보고서 작성도 많다”고 토로했다.
워라밸, 저녁이 있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층에게 이런 공무원의 업무상 특징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박봉임에도 버틸 힘을 줬던 공무원에 대한 혜택마저 점차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특공 혜택이다. 2021년까지만 해도 이전기관 공무원들에게 아파트를 상대적으로 저가에 공급하는 특공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부처가 자리한 세종시의 집값이 치솟으면서 ‘공무원들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논란이 불거지며 폐지됐다. 공무원들의 낮은 연봉을 고려했을 때 특공을 못 받았거나 특공 폐지 이후 입직한 공무원들은 ‘내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졌다.
공무원 연금도 2016년부터 축소됐다. 공무원연금은 매년 공무원이 부담하는 기여금(월 급여의 9%)과 고용주인 정부가 내는 부담금(9%)으로 대부분 충당된다. 기여금은 지난 2016년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라 기존 7%에서 9%까지 올랐다. 지급률은 반대로 1.9%에서 1.7%로 0.2%포인트 낮아졌다.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도 연금액수는 줄어든 상황이다.
공무원 기피 현상이 계속 이어질 경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역시 뛰어난 인재 영입이 어려워진다. 자연히 국가 경쟁력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책과 공직사회의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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