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할 권리: 빅테크의 '이권 카르텔' 깨부수기 [PADO]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2024. 2.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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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가 화제입니다. 자기가 구입한 제품을 수리하는 게 왜 보호받아야 할 '권리'까지 된 건지 의아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전자기기(특히 휴대폰)와 자동차가 점점 더 수리하기 어려워지면서 큰 이슈가 됐습니다. 기기의 첨단화, 전자화가 진행되면서 옛날 기기와는 달리 뜯어보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 측면도 있지만 기업들이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해 독립적으로 수리하기를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작지 않습니다. 일례로 아이폰 배터리 수명이 다해서 교체를 할 경우 사설 수리업체를 통하면 공식 서비스 이용 시 드는 비용의 절반으로 교체가 가능합니다. 애플은 '서비스' 부문에서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사설 수리업체들을 겁박하고 자신들이 지정한 부품을 쓰지 않으면 경고 메시지가 뜨게 만드는 식으로 '공식' 서비스 이용을 유도해 많은 질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공식' 서비스센터에만 진단 장비나 부품을 공급하고 차주들에게 많은 비용을 청구하는 행위도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왔죠. '공식' 서비스 시장은 사실상 독과점이라 그 서비스의 질도 형편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에도 여러 작품이 소개된 SF 작가이자 보다 자유로운 저작권 운동에 오랫동안 헌신한 활동가인 코리 닥터로우는 여기 소개하는 노에마 매거진 2023년 12월 기고문에서 사실상 독점을 누리고 있는 '빅테크'의 횡포에서 해방되기 위한 전략을 논의합니다. 당초 발명자·원작자의 이익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자 만들어졌던 법적 장치(저작권법, 특허법 등)가 이제는 독점기업의 현상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게 논의의 핵심입니다. 닥터로우의 제안이 다소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창작·발명에 대한 보상의 보장과 공정한 경쟁 촉진 사이의 균형점에 대해 숙고해 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Dan Cristian Paduret

2020년 매사추세츠주 유권자의 75%가 자동차 수리권 주민 투표 발의 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제조사가 자동차 진단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차주 및 독립 정비업체와 공유하도록 해 공식 정비 업체 뿐만 아니라 어떤 정비업체든 해당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반드시 제조사가 지정하는 업체에 가져가야 한다는 제약이 없어진다.

매사추세츠 주민들은 꽤나 단호하게 자신들이 직접 정비업체를 선택하기를 원한다고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민들은 2012년에도 비슷한 수리권 발의 안에 훨씬 더 많은 찬성 표를 던진 바 있다.

문제는 그 수리권 법안이 2023년 8월에야 발효되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보유한 현금이 너무 많아서(대부분 차주들로부터 수리비를 후려쳐서 모은 돈이다.) 법정에서 법안에 이의를 제기할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 유권자들이 자동차 수리권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한 이후 10년 동안 매사추세츠 자동차 수리권의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독립 정비업체가 진단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차량의 비율이 점점 더 늘었다. 자동차 수리권 법안은 아직 완전히 시행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이며 제조사는 수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위해 자동차의 일부 기능을 비활성화하고 있다.

이 공격의 첫 번째 희생자는 정비사였다. 수리를 위해 차량을 가져온 차주들은 동네의 독립 정비업체가 차량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할 방법이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독립 정비사들은 가게 문을 닫고 업계를 떠나거나, 노동력에 대한 구매자 시장이 형성돼 있고 가격과 조건을 정할 수 있는 딜러사에서 일하게 됐다.

두 번째 희생자는 차주였다. 독립 정비사가 공식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차량의 목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네 단골 정비소를 찾아가면 수리를 해줄 가능성은 있지만, 리프트에 차를 올려놓고는 수리를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딜러사 서비스센터로 가야 할 확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세 번째 피해자는 채권자와 투자자였다. 정비사들은 은행 대출을 갚거나 사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돈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정비사들은 체제를 거스르려고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차주들은 딜러사의 독점 구역을 회피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은행과 투자자들은 절대로 대형 자동차 제조사를 거스르는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잠시 나와 함께 다른 현실을 상상해 보자. MIT의 똑똑한 학생들이 자동차 진단 코드를 역설계하여 7달러의 재료비로 기기를 설계하고 광저우나 선전의 공장에 의뢰해 컨테이너 두 대 분량의 기기를 생산해 미국으로 배송했다고 상상해 보자. 이 작은 기기를 전국의 모든 정비업체에 개당 100달러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 마진이라면 관심 있는 투자자가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이에 따르는 부가 사업--비순정품 부품 유통, 보증 및 기타 고수익 서비스--은 자동차 제조사의 사업을 뒤흔들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위협만으로도 자동차 제조사가 정신을 차리고 예측 가능한 진단 도구를 제공하도록 설득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윤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적어도 제조사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계속)

PADO 웹사이트(https://www.pado.kr)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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