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열고 나오니 슬로프가 펼쳐졌다 雪國에서 만난 스키어들의 성지

유종헌 기자 2024. 2.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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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스키·온천·음식 ‘종합선물’
홋카이도 서쪽 니세코 여행
무와 니세코 리조트는 그랜드 히라후 스키장과 곧바로 연결된다. 투숙객들이 스키 장비를 메고 슬로프로 나가고 있다. /무와 니세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바람과 몸을 따스히 데워주는 온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슬로프와 마음까지 훗훗하게 데워주는 온천. 인구 5000명의 작은 마을이 상반된 두 매력을 모두 품었다니 한마디로⋯ 이기적이었다.

일본 홋카이도 서쪽 마을 니세코. 오랜 시간 이곳은 오직 겨울 눈에 기대 살아가는 땅이었다. 열도 최북단, 북위 42도의 니세코에는 연간 1500cm가량 눈이 내린다. 해발 1308m의 안누푸리산 경사에 쌓인 척설(尺雪)은 산비탈을 천혜의 스키 슬로프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스키 외에는 별다른 관광 요소를 갖추지 못한 탓에 오랜 기간 이곳은 스키 마니아들에게만 이름을 알렸다.

최근 니세코는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종합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스키어들이 묵던 낡은 펜션 주위로 다국적 자본이 투자한 럭셔리 리조트와 호텔이 들어섰다. 미쉐린 별을 단 식당들이 이곳에 분점을 내기 시작했고, 온천·래프팅·낚시 등 다양한 여가 활동이 자리 잡았다. 물론 스키장의 설질도 여전히 세계 정상급이다.

니세코 지역에서 가장 최근에 문을 연 리조트 ‘무와(MUWA) 니세코’를 찾았다. 눈발이 날리는 1월 말이었다.

거침없이 활강하는 스키어 뒤로 ‘홋카이도의 후지산’으로 불리는 요테이산이 보인다. /니세코유나이티드

◇雪國 니세코로 가는 길

신치토세 공항에서 니세코로 이어지는 좁은 산길은 설국을 향해 난 긴 터널이었다. 공항을 벗어날 즈음 시작된 진눈깨비는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키웠고 어느 순간부터 차선 경계가 흐릿해졌다. 경력 10년의 60대 운전기사는 가로등처럼 서 있는 화살표 모양 도로 표지판에 의지해 차를 몰았다. 산길 옆으로 1m가 넘는 눈이 쌓여 있었고 도로변 전나무 가지들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두 시간쯤 달렸을까. 봉우리에 하얀 눈을 뒤집어쓴 요테이산이 영험한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1898m,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는 이 산이 보이면 니세코에 거의 도착했다는 뜻이다.

무와 니세코는 요테이산에서 10km쯤 떨어진 안누푸리산 중심부에 있다. 안누푸리산에는 스키장이 모두 4곳 운영 중인데, 무와 니세코가 속한 그랜드 히라후 스키장 규모가 가장 크다.

‘럭셔리 웰니스 리조트’를 표방하는 리조트답게 곳곳이 고급스럽다. 영국 슬럼벌랜드, 일본 타임앤드스타일, 한국 이스턴에디션 등 각국의 가장 인기 있는 가구를 만날 수 있다. 객실이 113개이고 오너십 회원에게는 시즌별 우선 예약 혜택과 24시간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방에서 바로 스키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스키 인 스키 아웃’ 타입 객실. /무와 니세코

◇자연설이 만든 천연 스키장

리조트에서 빌린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그랜드 히라후로 향했다. 스키장과 붙어 있는 ‘스키인 스키 아웃(Ski-in Ski-out)’ 구조는 스키어들에게 최고 복지다. 리조트가 슬로프와 바로 연결돼 이동 없이 곧장 스키를 탈 수 있다.

이곳 스키어는 어림잡아 70% 이상이 서양인이었다. 호주, 유럽, 미국 등 국적도 다양했다. 이들이 동아시아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오게 만든 매력? 천혜의 자연이 만들어낸 ‘파우더 스노(Powder Snow·분설)’다. 니세코의 눈은 수분이 많지 않아 가루처럼 가볍고 부드럽다. 스키어들은 이런 파우더 스노를 최고로 친다고 한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으면서 푹신해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

이곳엔 제설기도 없다. 모든 코스가 자연설이라는 뜻이다. 스키장 관계자는 “적설량이 워낙 많아 인공 눈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했다. 11월 초부터 4월 말까지, 1년의 절반가량 스키장이 개장한다.

리프트를 세 번 타고 오른 산 정상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앙상한 나무의 가지와 뿌리마다 하얀 결정이 쌓였다. 5km가 넘는 슬로프에 처음 스키를 내딛자 숫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가장 깨끗한 속살을 내어줬다. 스키어들이 눈 위를 빠른 속도로 활강하며 카빙(Carving) 실력을 뽐냈다.

그랜드 히라후에는 모두 22코스가 있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펜스가 없어 자신만 있다면 코스를 이탈해 자연 슬로프에 도전해도 된다. 실제로 많은 스키어가 나무 사이를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그들이 부러웠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그 정도 실력과 용기가 없었다.

스키센터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쉬고 있던 스티븐(32)과 애나(27) 부부를 만났다. 이곳에 신혼여행을 왔다고 했다. 이들이 산다는 미국 오리건주는 올해 역대 최악급 한파와 폭설이 몰아친 곳. 애나는 “친구들은 ‘도대체 왜 스키를 타러 일본까지 가느냐’고 했지만, 세계 최고라는 니세코의 파우더 스노를 경험하고 싶었다”고 했다. 스티븐은 “미국 스키장은 리프트권이 1일 200~300달러에 가장 저렴한 모텔도 1박에 300달러가량 한다”면서 “여기서 묵는 숙소는 500달러인데 조건이 훨씬 좋다”고 했다. 그랜드 히라후의 리프트권은 1일 기준 7800엔으로 우리나라 평균 수준이다.

니세코의 파우더 스노에 빠져 롱스테이(장기 투숙)를 하거나 아예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한 스키 마니아도 많았다. 카페, 렌털숍, 리조트 어디에나 외국인 직원이 있었는데 대부분 스키 때문에 정착한 이들이다. 호주에서 왔다는 한 카페 직원은 “주간에 일을 하고 휴일이나 퇴근 뒤에 스키를 즐긴다”고 했다.

‘스키야키 히야마’에선 기모노를 입은 오카미상(안주인)이 차려주는 스키야키를 맛볼 수 있다. /무와 니세코
미쉐린 스타 셰프 다쿠보 다이스케가 운영하는 ‘히토 바이 다쿠보’의 스테이크./무아 니세코

◇요테이산 보며 온천 즐긴 뒤 미쉐린 식당 가볼까

긴장한 채 스키를 탔더니 곳곳이 쑤신다. 온천에 몸을 담글 시간이다.

활화산으로 둘러싸인 니세코는 곳곳에 풍부한 온천수가 흐른다. 상당수 리조트나 호텔은 원천에서 펌프로 끌어올린 지열수를 투숙객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대욕장에 공급한다.

좀 더 특별한 경험을 원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무와는 ‘인피니티 온천’을 운영한다. 요테이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리조트 8층에서 개별 노천탕을 즐기는 것이다.

유아미로 갈아입고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담갔다. 몸도 마음도 훗훗해졌다. 42도의 온천수는 영하 4도의 찬 공기와 만나 뿌연 김을 내뿜었다. 그 김이 요테이산의 눈 덮인 산봉우리와 만나는 걸 보면서 나른해졌다. 경직됐던 근육이 풀렸고, 몸과 물 사이 경계가 흐릿해졌다. 자기에 담긴 유자차 위로 종종 눈송이가 떨어졌다. 이따금 부는 산바람이 정신을 깨우지 않았다면 까무룩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인피니티 온천은 아이 포함 최다 4명까지 입장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차 중 하나와 간단한 디저트를 제공한다. 75분간 이용할 수 있다. 요금은 1만엔. 노천 온천이 달린 방을 선택하면 방에서도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온천욕을 끝내자 출출해졌다. 일본식 전골 스키야키를 맛볼 시간. 10년 연속 미쉐린 원 스타를 받은 도쿄 레스토랑 ‘스키야키 히야마’가 최근 이곳에 분점을 냈다. 장어를 곁들인 계란찜과 참다랑어 사시미로 전식을 해결하고 나면, 기모노를 입은 오카미상(안주인)이 손수 스키야키를 준비해 준다. 야마가타 지역의 흑모 와규는 입안에서 부드러웠고, 고베시 효고현에서 가져왔다는 계란은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사케 한 병을 금방 비웠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히토 바이 다쿠보’도 매력적인 식당이다. 미쉐린 스타 셰프 다쿠보 다이스케가 프로듀싱한 이 식당은 장작불에 구웠다는 스테이크가 진미다. ‘일본의 이탈리안 식당’답게 채끝살과 치즈, 야채 등은 홋카이도산 재료를 쓰면서도 보타르가(숭어의 생선 알을 말린 재료)는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서 가져왔다. 능숙한 직원들이 요리마다 적절한 와인을 추천한다.

요테이산의 절경을 바라보며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인피니티 온천’./무와 니세코

◇바에서 스키어들과 함께 건배를

‘스키 그 후’를 뜻하는 ‘아프레 스키(Après Ski)’는 스키어들에게 스키만큼이나 중요한 의식이다. 주로 스키를 탄 뒤 주변 바나 식당에서 음식과 술을 들며 긴장을 푸는 시간을 일컫지만 저녁에 즐기는 모든 여가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니세코의 밤은 낮만큼 뜨겁다. 레스토랑과 바는 물론 클럽까지 거리마다 다국적 손님으로 북적인다. 일본풍과 서양풍이 절반씩 뒤섞인 이국적 분위기의 거리에선 스키 점퍼를 그대로 입은 관광객들이 맥주를 홀짝이고 있다.

출출하면 홋카이도식 양고기 요리 ‘칭기즈칸’으로 허기를 달래보자. 불판에 각종 채소와 함께 양고기를 구워 내는데 맛이 일품이다. 가격도 1인분에 2000엔 수준으로 부담스럽지 않다.

교자, 닭꼬치, 라멘 같은 스트리트 푸드를 1000~2000엔가량에 즐길 수도 있다. 여기에 낭만을 더하고 싶다면 편의점 캔맥주를 눈에 파묻어 자연 냉장한 뒤 곁들여도 좋다.

세계 각지의 술과 음식을 파는 바 무수(Musu)에 앉아 럼과 샤르트뢰즈로 만든 칵테일을 들이켰다. 밤에도 지칠 줄 모르는 스키어들은 너도나도 작은 축제를 벌였다. 영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가 한데 섞여 작은 공간을 따스하게 메웠다. 나도 “건배!”를 외치며 그 위에 한국어를 얹었다. 니세코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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