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에 잇단 AI 침투 … 챗GPT 협업으로 수상
"책의 5%는 챗GPT 문장"
김수영문학상 수상자 박참새
생성형 AI 협업 'Defense' 발표
美 로스 굿윈·로빈 슬론 등
AI와 협력하는 작가들 늘어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올해 수상작은 2021년 문단에 나온 신예 작가 구단 리에의 소설 '도쿄도 동정탑(東京都 同情塔)'이었다. 일본 신초샤에서 출간된 이 책은 수상과 동시에 비판의 중심에 섰다. 바벨탑과 같은 신설 감옥이 도시 한복판에 생긴 도쿄를 배경으로 '범죄자에 대한 관용'을 주제로 삼은 소설이었는데, 작가가 소설 집필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1990년생인 저자 구단은 기자회견에서 "소설 '도쿄도 동정탑'의 약 5%는 챗GPT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AI가 기대한 대로 답변하지 않았을 때 주인공 대사에 내 감정을 반영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작가의 말은 전 세계에 외신으로 보도됐다. 비록 작품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인간 고유의 능력인 창작 분야에서 AI가 깊숙이 침투했음을 모두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시단에서도 AI가 화제다. 등단 10년 차 이하 혹은 미등단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유명 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올해 수상작도 생성형 AI와 무관치 않았다. 작년 12월 발표된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는 박참새 시인으로, 그의 시 50여 편은 민음사 시인선 319번 '정신머리'로 출간됐다. 이 시집을 펼치면 영어와 한국어가 교차 서술되는 방식의 독특한 시 'Defense'가 눈에 띄는데, 이는 박 시인과 챗GPT의 협업 작품이다.
'i wish i had me/as my own ally/as if i made myself with/unawakening morning/Full with the ultimate silent of nurturing trees, begging for a new day'로 시작하는 이 시는 '내가 나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동맹으로 가졌으면 좋겠다/ 마치 내가 스스로를 만든 것처럼/ 깨어나지 않는 아침에/ 나무들의 절대적인 침묵으로 가득 차 있어서/ 새로운 하루를 간청하고 있는'이란 한국어 문장과 교차된다. 박 시인이 영어로 시를 쓰고 챗GPT가 번역한 한국어 문장을 시집에 인용한 것이다. 문체와 문장의 배열, 단어의 선택이 시의 결을 민감하게 형성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AI의 단순한 번역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기계가 만든 언어가 실제 시에 수용됐기 때문이다.
시와 소설 분야에서 생성형 AI와 문학의 협업은 영미권에선 수년 전부터 가시화돼 왔다.
대표 작가는 미국 시인 로스 굿윈으로, 그의 대표작 '1 the Road'는 AI와 인간 작가의 협업을 위한 실험이었다. 2017년 그는 뉴욕에서 뉴올리언스까지 4일간 여행을 떠났다. 마이크와 차량 위치, 그리고 차량 안에서의 대화는 센서로 데이터화됐고 노트북에 연결된 AI는 입력된 소스를 기반으로 '편지화된 소설'을 만들어냈다.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작가로 일한 굿윈은 홈페이지에서 자신을 아예 '데이터 시인(date poet)'으로 명명할 정도다.
로빈 슬론이란 이름의 미국 작가는 소설 집필 과정에서 스토리텔링 구성 시 아예 AI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표작 소설 '사워 도(Sourdough·반죽이란 뜻)' 집필 과정에서 컴퓨터를 활용해 서사의 방향을 구성했다. 2018년 뉴욕타임스는 슬론을 다룬 기사에서 "AI는 이미 소설가를 돕기 시작했다"고 기술했다.
우리나라 종교계에서도 창작과 AI를 접목한 사례가 최근 처음 나왔다. 우리나라 불암사 주지 법일(法日)스님은 작년 말 출간한 시집 '날개 달린 번데기'에서 구글 AI 바드의 해설을 담았다.
'한 기 다관엔/ 천지의 밀의가 숨겨져 있고// 한 잔 차 속엔/ 그 뜻이 담겨 있네//채우고 비우길/ 몇 해나 보냈던가// 창문에 스며든 달빛만/ 빈 잔에 가득할 뿐이네'란 문구에 대해 구글 바드는 해설에서 "이 시는 공(空)의 개념을 아름답고 시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관은 우주를, 차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공을 이해하면 집착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습니다"고 썼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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