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볼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이주현 기자 2024. 2. 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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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의 마음책방]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한국어판 표지로 쓰인 피터 브뤼헬의 ‘눈 속의 사냥꾼’(1565년작).
삐삐언니의 마음책방은?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새로 알게 된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지식 총량이 늘어나는 건 잘 모르겠지만 이해력이 좋아지는 건 분명합니다. 나를 위로하고 타인을 격려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요. 좀더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은 삐삐언니가 책을 통해 마음 근육을 키우는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영화고 소설이고, 마음을 너무 졸이게 만드는 줄거리는 잘 못 견디는 성격이에요. 정의를 위해 스스로 험난한 길을 선택한 주인공이 세상의 냉대와 몰이해로 산산이 부서지는 이야기는 끙~ 하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갈등 회피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홍한별 옮김·다산책방)은 참으로 다행스럽게, 격랑 직전, 적절한 타이밍에 마무리됩니다. 물론, 제가 ‘순한 결말’ 때문에 이 책에 빠져든 건 아닙니다만.

소설의 배경은 경제위기로 한창 몸살을 앓던 1985년 아일랜드입니다. 목재상을 하는 주인공 펄롱은 야무지고 현실적인 아내, 나무랄데 없는 다섯딸과 살아가는 건실한 가장입니다.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타이어가 닳도록” 트럭으로 땔감 배달을 하다가 캄캄한 밤에 귀가하는 빠듯한 삶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자칫 한 눈 팔다간 실업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까 위태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세상인데, 펄롱은 온기가 궁한 집 앞에 슬그머니 장작을 놓아주고, 딱한 아이들에게 선뜻 잔돈을 쥐어주는 사람입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을 잡는” 삶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라고 도리질치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습니다.

타인과 자기 모두에게 성실하고자 노력하는 펄롱에게 어느날 혹독한 시험이 찾아옵니다. 아일랜드 곳곳에선 18세기부터 20세기말(1996년에야 완전폐쇄!)까지 이른바 ‘타락한 여성’들을 몰아넣고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막달레나 세탁소’가 운영되었습니다. 가톨릭 수녀들이 운영하는 교화시설. ‘아일랜드판 형제복지원’이라고 하면 적절하겠네요. 문제는 펄롱이 수녀원에 땔감 배달을 하러 갔다가, 막달레나 세탁소의 끔찍한 실태를 보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갓난아기를 빼앗기고 밤새 추운 석탄광에 갇혀 있던 어린 미혼모, 세라를 만나게 된 거죠.

역시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마흔이 다 돼도록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펄롱. 세라의 처지가 남일 같지 않죠. 하지만 그를 구하는 일은 막달레나 세탁소의 악덕을 폭로하는 일이 될 테고, 그것은 일상의 권력을 틀어쥔 가톨릭과 척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는 딸들 역시 불이익을 피할 수 없어요. 괜한 짓으로 단란한 가정을 깨뜨렸다는 아내의 원망은 또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고난은 강직한 사람의 몫입니다.

클레어 키건. ⓒPhilippe Matsas

그럼에도 펄롱은 수녀원의 광문을 열고 세라와 함께 집으로 향합니다. 그의 가슴은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으로 가득차 올라요. 그리고 소설은 펄롱과 세라가 집으로 들어가기 전, 갈등이 현실화되기 직전에 멈춥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가는 펄롱의 가슴 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마지막 문장까지 한줄한줄 숨죽여 읽어내려가던 저는 내심 안도했지만, 펄롱과 그 가족 앞에 놓인 고생길을 상상했어요. 그러다보니 몇년 전 신문에서 읽은 한 내부 고발자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2005년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에게 가해진 고문과 가혹행위를 폭로한 미군 이언 피시백(1979~2021)이었습니다.(한국일보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불의의 명령에 명예로 맞선 ‘꼿꼿한 화살’’)

이언 피시백은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육사 교훈인 ‘임무, 명예, 조국의 가치’를 생명처럼 여겼던 ‘참군인’이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병됐다가 그곳에서 벌어진 무차별적 폭력에 동조하기를 거부했고 이를 외부에 알려 ‘구금자 처우법’ 제정을 이끌어냅니다. 26살의 원칙주의자. 사람들은 그를 ‘꼿꼿한 화살’이라고 불렀어요.

관타나모 수용소의 반인권 실태를 폭로한 미군 이언 피시백. 미 펜실베이나대학 도덕및법치센터(CERL) 누리집

하지만 올바름의 대가는 고립과 외로움이었습니다. 군 예편 전후부터 우울증 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고, 주위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다가 피해망상으로 번졌습니다. 적절한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결국 42살 나이로 초라한 요양원에서 외로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법철학자 낸시 셔먼은 몇달 뒤 그를 이렇게 추모했어요. “그는 도덕적 올바름으로 상처를 입었다.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그를 고립시키고 그를 엘리트 클럽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꼿꼿한 화살은 그렇게 부러졌습니다.

다시 펄롱에게로 돌아올게요. 이웃 대부분이 수녀들과 한통속인 동네에서 수녀원에 반기를 둔 펄롱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자신의 선의가 배반당하는 아픔을 겪지 않고, 영혼의 마디가 부러지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요. 걱정하던 나는 클레어 키건이 소설에 심어둔 반짝이는 희망의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펄롱의 삶에 깃든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미혼모 어머니와 자신을 품어주고 사랑을 전해준 사람들. 철자법 시험을 잘 본 어린 펄롱을 자랑스러워하던 눈빛, 구두끈을 묶어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손길…. 펄롱은 오갈 데 없던 가련한 모자(母子)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준 ‘미시즈 윌슨’을 떠올립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아주 가끔씩,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는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있어요. 일어나 손 번쩍 들어야 할 때, 그리고 불가피하게 나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오기도 해요. 꺾이지 않을까, 부서지지 않을까 두려울 겁니다. 특히 ‘업 앤 다운’이 심한 나는 뭔가 ‘대단한 정의’를 행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감행하고 나면 내면의 동요와 불안정이 격렬해져요.

하지만 내게 만약 그런 때가 온다면, 세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던 펄롱의 마음을 생각하겠어요. 나를 가르치고 격려한 어른들과 친구와 동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말과 행동을 넘어 나에게 전해진 각별한 순간들. 그 사소함이 쌓여 나를 단단히 붙잡아줄 것이라고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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