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줄기’ 음대 입시비리 수사…음악계 관행 근절 가능할까? [취재메타]

2024. 2.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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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숙대·경희대 이어 수사 일파만파에도
음악계 “몇명 처벌해서는 절대 근절 안 돼”
입시철 제자에 억단위 악기 넘기고 뒷돈 관행도
폐쇄적 분위기…내부고발 어려워
전문가 “교수 직위해제 등 대학도 적극 근절 나서야”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그 선생은 A대학교 그 교수랑 하잖아, 저 선생한테 가면 그 대학은 무조건이래……. 음악하는 아이들이 이런 말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음대 졸업생 학부모 B씨)

음대 입시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는 현직 교수가 입시생들을 대상으로 불법 레슨을 하고, ‘브로커’를 통해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된다는 ‘음대 입시비리’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경찰은 서울대 등 대학들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나서며 수사를 진전시키고 있다. 정부도 ‘사교육 이권 카르텔’ 척결에 팔걷고 나선 만큼 엄정한 수사를 주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음악계 반응은 냉소적이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면서도 이미 깊이 뿌리내린 관행을 근절할 수 있단 기대는 높지 않다. 겸직 의무를 어긴 현직 교수의 불법 레슨, 입시곡 사전 유출 등 불법 행위부터, 교수의 제자 줄세우기와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음악계’에서 내부고발이 어려운 폐쇄적 분위기 등을 전부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에서다. 이에 대대적인 전수 조사나 교수직 박탈과 같은 특단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확대 중인 警 음대비리 수사…압수수색도 수차례

2일 경찰과 교육계에 따르면 음대 입시비리 사건은 최근 서울대·숙명여대·경희대 외 다른 대학들로 일파만파 퍼져 나가는 형국이다. 경찰은 기 언급된 대학 외 복수 대학들에 대해서도 입시 비리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지난해 말부터 음대 입시비리 수사에 속도를 냈다. 강제수사도 수차례 진행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과거 서울대 음대 입시 과정에서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 3명이 자신들이 과외하던 학생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등의 방식으로 부정 입학시킨 것으로 보고 이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해당 교수들은 강원대와 가천대, 울산대 음대 성악과 소속 현직 교수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이들 교수 3명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레슨 관련 수업 일지 등을 확보해 정황을 살펴보고 있다.

또 경찰은 당시 학과장이었던 서울대 음대 교수도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이 교수가 외부 심사위원들을 선정하는 데 개입, 부정입학에 관여(업무방해)했다고 보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서울대 입학본부와 음대 사무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헤럴드DB]

앞서 숙명여대에 대한 수사도 이뤄져 왔다. 경기도 소재 대학 교수로 일하던 성악가가 음대 지망생들을 상대로 과외를 하면서 숙명여대 실기시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혐의다. 지난 10월에는 숙명여대 입학처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뤄졌다. 경찰은 숙명여대와 서울대 두 대학의 입시비리에 동일한 브로커가 연루된 정황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와 별개로 최근에는 경희대 음대 기악과 소속 교수가 입시생들을 대상으로 불법 개인과외를 하고 대학 실기시험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알려져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수사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경희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어졌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대 관련 수사에 대해서 “철저히 수사해 조만간 결론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뿌리깊은 입시 유착관계, 근절 가능할까

개인레슨 등 입시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C씨는 “교수 불법 레슨은 모두가 눈 감아온 관행”이라며 “몇몇 사람만 수사해서는 절대 뿌리뽑힐 수 없다”고 말했다.

유명 사립대 교수의 제자들이 ‘새끼선생’으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을 끌어오고, 예중이나 예고에서도 입시 담당 교사가 브로커처럼 활동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입시를 앞두고서는 지원한 대학 교수에게 실력을 점검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30분~1시간에 수십만원 하는 고액 과외도 마다할 수 없다는 게 입시생들과 학부모들의 심정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실기시험 공정성을 위해 심사위원과 수험생 간 얼굴을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가림막) 시험을 진행하지만, 이 또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소리만 듣고도 연주자를 알아챌 수 있고, 또 박자나 음정 처리 등 연주자의 스타일로도 식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입시비리로 한정할 수 없는 어두운 관행도 만연하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를 사사하느냐(누구에게 가가르침을 받느냐)”는 것이 콩쿠르 등 대회부터 입시까지 엄청난 영향이 이어진다.

C씨는 “크고 작은 콩쿠르들이 있는데, 본인이 심사하는 대회에 제자를 출전시키고 시상하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만들어주는 일은 파다하다”면서 “모두 자신의 경력으로 쌓이는 것이기에 어떤 줄을 타는지가 음악가로서 성공하는 데 결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음대 교수가 참여하는 연주회 등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얼굴도장’을 찍는 입시생, 음대생, 업계 종사자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도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쓰던 악기 또는 제자의 악기를 ‘억 단위’로 넘기면서 우회적으로 뒷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한다.

폐쇄적인 분위기도 입시비리가 근절되기 어려운 이유다. B씨는 “괜히 눈밖에 나면 불이익을 당하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음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굴해도 버티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음대 입시 구조에 전반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시민단체 ‘반민심 사교육 카르텔 척결 특별조사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수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경찰수사 등을 통한 형사적 처벌 외에도, 대학들이 스스로 해당 교수들에 대한 직위해제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본인의 직위가 박탈되는 것”이라며 “그 지위로 입시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부터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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