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의 터줏대감…‘장난기 가득’ 아기 수달 꽤 암팡지네
수생 생태계 1인자…새끼들 자맥질하며 ‘재롱’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수질 환경 지표종
지난 1월28일 달천으로 조류 관찰에 나섰다가 뜻밖에 ‘반가운 동물’을 만났다.
달천은 남한강 수계의 최남부에 있는 지류로 길이는 약 116㎞에 이른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계곡과 청주 근방에서 발원하여 보은군 북쪽, 괴산읍 동부를 지나 충주시 서부에서 남한강의 본류와 합류한다.
이날은 달천 지류를 따라 내려오면서 계곡을 살펴보았다. 달천의 겨울은 물소리가 들릴 뿐 한적하기만 하다. 가끔 바위에 앉은 검은등할미새가 까불대고 물이 고인 곳엔 비오리가 한가로이 노닌다.
‘희귀동물’ 수달을 한낮에 만나다니…
그런데 얼음이 녹지 않은 가장자리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인다. 여울 없이 물이 고여 물고기들이 쉬기에 최적의 위치다. 쌍안경으로 확인하니 수달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세히 살펴봤다. 가족으로 보이는 세 마리의 수달이 물질을 하고 있었다.
하천의 최상위 포식자인 수달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희귀동물로 낮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야행성인 수달을 대낮에 관찰하다니 흔하지 않은 일이다.
자세히 보니, 수달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작은 먹이는 어미가 물 위에서 바로 먹고, 큰 물고기는 사냥해 새끼에게 가져다준다. 비늘이 없는 물고기를 즐기는 수달은 이곳에서 고급 어종인 쏘가리만 사냥한다. 비늘이 거친 물고기보다 미끌거리는 쏘가리가 식감이 좋을 것이다.
사냥한 먹이는 게걸스럽게 뜯어먹는다. 새끼들도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속과 물 밖으로 들락거린다. 어린 새끼는 제법 민첩하게 사냥 솜씨를 뽐내보려 하지만 어미만큼 노련하지는 못하다. 먹이를 먹고 나서 새끼들은 가족애를 다지는 놀이를 즐긴다. 해맑게 노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고 앙증맞다. 어미에게 다가가서 재롱도 부린다. 어미도 새끼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해 보인다.
수달 가족이 이번엔 상류 쪽으로 향한다. 빠르게 움직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도로를 따라 계곡을 살펴보며 모습을 찾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이지 않더니, 수달을 처음 만났던 곳에서 1.5㎞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다시 발견했다.
수달은 내 쪽을 흘끗 쳐다보더니 아랑곳하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달천의 터줏대감인가. 어미 수달은 노련하다. 이곳의 환경을 훤히 꿰고 있는 듯했다. 당황하거나 경계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당당하다. 사람을 피하려는 기색도 없이 오로지 사냥에만 열중한다. 새끼들도 자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는 영특함이 돋보이고, 먹이를 먹을 때 이빨을 드러내는 표정은 암팡지고 귀엽다.
잘 보고, 잘 듣고, 잘 맡는 ‘암팡진 동물’
수달은 일정한 장소에서 배설하고, 생활 터전을 크게 이동하지 않는다. 사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으니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이다. 수달들은 우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물속으로 잠수하더니 이곳저곳에서 ‘뿅’하고 나타나 재롱을 부린다. 다른 야생동물보다는 성질이 온순한 것 같다.
수달은 족제비 무리 중 물에 적응한 동물이다. 유선형 몸 전체에 짧은 털이 빽빽하게 나 있고 가는 몸, 짧은 다리에 꼬리가 매우 길다. 납작하고 둥근 머리, 개와 비슷한 둥근 코와 작은 귓바퀴를 가졌으며 둥근 눈은 작은 편이고 망막도 있다. 입 주변에는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안테나 노릇을 하는 흰 수염이 뻣뻣하게 많이 나 있다. 먹이를 먹을 때의 송곳니는 무척 날카로워 보인다.
물에서 나올 때는 머리를 물 밖으로 살짝 내밀고 시각, 후각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이리저리 살핀다. 바깥 털과 속 털로 이루어진 이중 털이 잠수 시 방수 효과와 체온 유지에 우수한 기능을 한다. 물속에서 나와서도 몸을 털면 물기가 바로 떨어진다. 얼음 위에서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데, 걸어 다닐 때는 발가락 전부가 땅에 닿기 때문에 동작이 느리다. 방향을 잡거나, 몸을 세울 때는 뒷발을 사용한다.
수영할 때는 머리의 윗부분과 몸 뒤쪽 일부분을 물 밖으로 내놓는다. 물갈퀴가 있는 앞발은 헤엄칠 때 배에 붙이는데, 앞발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인지 헤엄치는 모습이 마치 뱀장어와 비슷하다. 뒷다리에도 물갈퀴가 있어 물을 휘젓는 역할을 한다. 굵고 긴 꼬리는 물속에서 헤엄칠 때 물을 휘젓는 역할을 하고 유연한 몸은 물의 저항을 줄여준다.
야행성인 수달은 낮에는 보금자리에서 쉰다. 야행성이지만 낮에 활동하기도 한다. 발톱이 약한 탓에 땅을 파서 보금자리를 만들지 못한다. 주로 갈대로 만든 둥지나 바위틈, 굴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런 휴식처의 입구는 대부분 물 쪽을 향해 있고 땅 위로 공기구멍이 나 있다. 갑자기 위험 상태에 놓이면 물속으로 잠복한다. 외부감각이 잘 발달한 예민한 동물로, 시각이 발달하여 밤낮으로 잘 보며 작은 소리도 잘 듣고 후각으로 물고기의 존재와 천적의 습격 등을 감지한다.
수생 환경의 ‘지표종’…강·하천 지켜야 수달도 산다
늦은 겨울이나 이른 봄에 짝짓기를 하며 4~5월에 출산한다. 임신기간은 63∼70일이고 새끼는 평균 2마리 정도 낳는다. 암컷은 새끼를 낳은 후 50일이 지나야 비로소 물속으로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는다.
새끼들은 6~8개월간 어미 수달과 같이 지낸다. 몸길이 63∼75㎝, 꼬리길이 41∼55㎝, 어른 수달의 몸무게는 5.8∼10㎏이다. 보통 단독생활을 하며 하루에 750~1500g의 먹이를 필요로 한다. 먹이는 주로 어류이고, 비늘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선호한다. 쏘가리, 메기, 가물치, 미꾸리 등을 잡아먹는다. 개구리, 게도 잘 먹는다.
유럽·북아프리카·아시아에 널리 분포한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볼 수 있었으나 모피 사용으로 남획되고 하천이 훼손되면서 그 수가 줄었다.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0호에,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수달은 지역 수생 환경의 건강성을 가늠하게 하는 지표종이다. 수생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수달은 생태계의 질서와 먹이사슬을 균형 있게 조절해 준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계곡의 작은 바위와 모래톱이더라도 수달에겐 정해둔 보금자리고, 배변 터 일 수 있다. 인간이 하천에 무심코 하는 행동이,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피해를 입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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