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영역] 호주전 D-1, '두발 단속' 잠재운 골잡이 조규성…병든 닭에서 벗어난 '극복의 역사'

이수진 기자 2024. 2. 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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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예능 출연이 왜? 조규성이 집중 포화를 맞은 이유는

"아쉬워요. 아쉬움이 더 커요. 죄송합니다, 더 분발하겠습니다."
-조규성 축구대표팀 선수(31일, 사우디전 직후 KFATV '인사이드 캠')

조규성 선수는 극장 골로 사나운 여론을 잠재우고도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시안컵 조별리그 3경기 출전에, 유효슈팅은 한 개. 부진이 길어지자 "예능 나올 시간에 실력을 길러라", "헤어 밴드 때문에 경기 집중을 못함. 머리 잘라라" 이런 비난이 쏟아졌죠. 늦게나마 나온 조규성 골에 팬들은 환호했는데, 선수는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골이) 왜 이렇게 늦게 나왔지"라고 말하며 아쉬워했죠. 조규성 선수는 왜 이렇게 많은 비난을 받았을까. 오늘 인물탐구영역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조규성 선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코리아 No. 9'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 조규성이 추격골에 이어 동점 헤더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리아 넘버 나인' 조규성 선수가 대중에 이름을 알린 건 지난 월드컵 때였습니다. 조별리그 가나전에서 교체 출전한 조규성 선수는 58분과 61분 연달아 헤더 골을 넣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가나에 3대2로 졌지만, 이 골 덕분에 우리가 득점 우선순위에 앞서서 16강 진출을 할 수 있었죠. 조규성 선수는 한국 선수 중 월드컵 무대에서 멀티 골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팬들이 조규성에 열광한 건 단지 눈에 띄는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뒤늦게 알려진 '조규성의 서사'가 마음을 움직였죠.

'병든 닭'의 몸부림


안양공고 시절 조규성 선수. 〈화면 출처=대한축구협회〉

조규성 선수가 축구를 시작한 건 열 살 때였습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비교적 늦은 나이였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축구 열풍이 불면서 선수 준비 시작 연령이 급격하게 낮아졌다는 게 중론입니다. 늦게 시작했어도 피지컬이 좋았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조규성 선수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졸업할 때만 해도 키가 170cm가 안 돼 주로 벤치를 지켰다고 합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넘어갈 때도 조규성 선수를 원하는 학교가 없었다고 하죠.

안양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눈에 띄지 않는 선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키가 작고 왜소해서 축구 선수로서 미래가 불투명했죠. 조규성 선수 자신도 어릴 적 별명이 '병든 닭' '병든 타조'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조규성 선수도 이 시기에 공무원이라는 플랜B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안양공고 축구부 이순우 감독에 따르면 조규성 선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경기 출전을 못 했다는데요. 경기에는 보통 3학년이 출전을 하고 뛰어난 선수의 경우에는 2학년이라도 출전을 하는데, 조규성 선수는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출전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3학년이 되면 11명 안에 들어서 경기에 나가야 하잖아요. 이(조규성) 선수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걱정은 했죠. 1학년 때 2학년 때 성실하지 않았다면 제가 불러서 먼저 (그만 두라고) 얘기했을 거예요."
-이순우 안양공고 축구부 감독 (2022년 JTBC 인터뷰)

그런데 축구 선수로서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키가 무려 20cm나 자랐던 거죠. 키 작은 벤치 선수에서 갑자기 '190cm에 육박하는 큰 키'라는 무기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무기는 저절로 얻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약점인 피지컬을 보완하기 위해 밥을 많이 먹었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새벽·저녁 운동을 했던 겁니다.

안양공고 시절 조규성 선수. 〈화면 출처=UTD PRESS〉


"잘 먹는다고 다 잘 크는 건 아니죠. 그런데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안 먹는 애들이 있어요, 입이 짧거나 자기 의지력이 부족한 애들. 얘(조규성)는 안 보일 때마다 놀랄 정도로 먹었던 것 같아요. 출근할 때 보면 혼자 공 들고 나오고 운동하는 모습을 목격을 했었죠. 개인적으로 찾아서 했던 거죠.…(중략)…체격이 작고 왜소하고 성장이 느린 아이들한테 (조규성은) 음식 섭취 마져도 노력을 했다고 선수들한테 가끔 얘기하는 편이죠."
-이순우 안양공고 축구부 감독 (2022년 JTBC 인터뷰)

조규성 선수에겐 '헤더 연습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죠. 헤더 감각이 없는 선수는 낙하지점을 찾아서 점프하는 걸 어려워하는데, 조규성 선수는 이걸 빨리 터득했다고 합니다. 타점을 잘 찾았죠. 그래서 이 감독은 "헤더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으니 꾸준히 하라"고 조언했다고 전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다


광주대 시절 공격수 조규성의 모습. 골대를 맞고 공이 흘러나왔지만 다시 공격을 시도해 기어이 골을 넣는다. 〈화면 출처=풋앤볼코리아〉

고등학교 2학년 때 FC 안양 유스팀에 선발됐지만, 곧바로 프로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진학했죠. 여기서 중요한 변화를 겪는데요. 광주대 이승원 감독의 지시에 따라 포지션을 바꾼 겁니다.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중앙으로, 그리고 최전방 공격수까지. 선수로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처음엔 경험이 없어서 득점 기회를 놓칠 때도 있었지만, 특유의 치열함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조규성은 프로의 세계에 나올 수 있었죠.

21살 안양 FC 시절 조규성 선수의 모습. 아직 증량을 하기 전. 〈화면 출처=스포츠니어스〉

2019년 안양 FC 데뷔 후 첫해에 경기당 0.54골을 기록합니다. 점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최고의 신인이다" "슈퍼 루키다" 등의 찬사를 받으며 U-22 대표팀에도 발탁됩니다. 그런데도 여기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김천 상무에 입단해 군 복무를 하면서 몸을 키워나가죠. 77kg에서 82kg이 되기까지, 소위 '벌크업'을 한 거죠.

2021년 김천 상무 시절 조규성 선수의 모습. 〈화면 출처=김천 상무〉

"3월에 입대하기 전에 한 달 동안 헬스하고 그렇게 하고 들어오니까 몸이 좀 커지지 않았나… 내가 힘을 길러야겠다, 상대에게 밀리지 않아야겠다"
-조규성 선수 (2021년 김천 상무 당시 인터뷰)

그리고 2022년 전북 현대에서 FA 우승, 결승전 MVP, 리그 득점왕을 이뤄냅니다. 월드컵에서는 멀티 골까지 기록하며 눈부신 한 해를 보냈죠. 일전에 조규성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도 아니고, 광주대라고 하면 무시당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걸 떨쳐내고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했는데요. 그만큼 간절하게 달린 시간이었습니다.

비난받는 '코리안 베컴'



"어쨌든 저는 축구 선수니까. 그런 거(외모) 말고 경기장에서 보여드려야 하는데. 조금 더 운동장에서 좋은 모습으로 보여드려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도 있었어요."
-조규성 선수 (2022년 JTBC 인터뷰)

하지만 끝없이 외모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미디어에서도 조규성 선수를 원했죠. 그때마다 조 선수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일관되게 말했지만,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20대 중반의 선수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으니 '중심을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죠. 조규성 선수가 레게 머리와 장발 등 여러 헤어스타일을 선보이자 '겉멋 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조규성 선수의 '성장의 서사'를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다소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아시안컵 시작 직전, 미리 촬영해두었던 예능까지 방영되자 팬들의 원성은 폭발했죠. "축구에 집중을 안 한다", "머리 말고 실력부터 길러라", "유튜브에 경기 영상보다 예능이 더 많이 나온다"….

장발 헤어스타일을 한 조규성 선수. 〈화면출처=FC미트윌란, 연합뉴스〉

외신(특히 영국 언론)들은 조규성 선수를 '코리안 베컴'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팬들은 조규성 선수가 베컴의 어두운 부분을 닮게 될까 우려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컴은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고 일찍이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았지만, 빅토리아 베컴과의 연애를 통해 스타가 된 뒤에는 화보와 광고 촬영에 늘 바빴죠. 결국 선수 생활 후반기를 중심 리그에서 벗어나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축구 외적인 것에 몰두하면서 한 번도 전성기 기량을 찾지 못했다고 비판받아야 했습니다.


"베컴은 아마도 마지막에 축구를 놨을 겁니다. 그리고 그건 그가 내린 결정입니다. 몇 년 후 그는 뒤를 돌아보며 '글쎄, 레알 마드리드에 머물러야 했는지도 몰라'라고 할지도 모르죠"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 감독)

물론 과도한 비난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선해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짧은 시간 눈에 띄게 성장해 온 조규성 선수에게 팬들이 요구하는 건 조규성을 빛나게 했던 '간절함을 되찾으라'는 요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간절함으로 또 한 번 도약해야 조 선수가 오랜 꿈이라고 말해온 빅리그 진출도 가능할 테니까요. 외모로 기억되는 선수가 될 것이냐, 역사에 남는 선수가 될 것이냐…. 앞으로 조규성 선수의 행보가 더 궁금해집니다.

■ 인물탐구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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