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된장·간장이 일냈네…뉴욕 사로잡은 영문 한식 책

박미향 기자 2024. 2. 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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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미향취향 : 영문 한식 책 해외 출간 봇물
‘장’의 저자인 강민구 셰프. Artisan Books(아티장 북스) 제공 Copyright © 2024 사진 윤동길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아무리 숏폼 영상이 대세인 시대라지만, 글자가 문명을 지탱하는 근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인류가 장대한 문화유산을 구축한 데는 활자와 문자, 글의 힘이 컸다. 글은 문명의 확산과 영속성을 담보하는 데 귀중한 도구이자 자산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잇따른 영문 한식 책 해외 출간은 고무적인 일이다.

파인다이닝(고급 정찬)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40) 셰프, 뉴욕 모던 한식당 아토믹스 박정현(40) 셰프와 샘표식품 우리맛연구실 실장 겸 헤드 셰프인 최정윤(46)씨가 저자로 나선 책들은 미국에서 출간됐다.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2017년)을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사찰음식 대가 정관 스님의 음식 철학을 담은 책도 최근 스위스에서 출간됐다. 봇물 터지듯 이어진 영문 한식 책 해외 출간은 최근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식 열풍이 주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구글이 지난해 발표한 ‘올해의 검색어’ 레시피 부문에 ‘비빔밥(Bibimbap)’이 글로벌 1위를 했다. 미국 거주 음식 블로거 세라 안이 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린 냉동김밥 ‘먹방’은 조회 수가 1000만회가 넘었다. ‘한식에 진심’인 할리우드 스타도 한둘이 아니다. 기네스 펠트로, 스티븐 연, 밀라 요보비치, 톰 크루즈 등은 에스엔에스에 자랑스럽게 ‘한식 사랑’을 드러낸다.

비빔밥.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식품회사의 해외 판매 실적도 장밋빛 상승곡선이다. 지난해 3월께 일본에 진출한 ‘비비고 냉동김밥 3종’은 출시 한 달 만에 20만개 이상 팔렸다. 씨제이(CJ)제일제당 ‘냉동밥’은 최근 3년간 연평균 22% 성장했다. 2017년 7개국이었던 수출국은 대만, 베트남 등 17곳으로 늘었다. 떡볶이, 호떡, 김말이 등도 ‘케이(K) 스트리트 푸드’라는 문패를 달고 해외 공략에 돌입했다. 그런가 하면 샘표식품에서도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외국 유통 체인 상품기획자들이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고 있다. 세계적인 유명 셰프들은 한식 맛을 가미하기 위해 샘표식품의 장 구매를 타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식은 세계 식품 트렌드 유망주다. 때맞춰 나온 영문 한식 책 내용이 궁금하다.

지난해 타이 방콕에서 열린 ‘케이콘 2023 타이’ 비비고 부스. 씨제이(CJ)제일제당 제공

강민구 셰프가 오는 3월 출간 예정인 책 제목은 ‘장 : 더 솔 오브 코리언 쿠킹’(JANG : The Soul of Korean Cooking)이다. 강민구 셰프는 지난 10년간 밍글스를 운영하며, ‘미쉐린 가이드’ 별 2개를 받았다. ‘미쉐린 가이드’에 버금가는 권위 있는 시상식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의 아시아 버전인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 순위에도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공동 저자로 참여한 조슈아 데이비드 스테인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음식 작가다. 또 다른 공동 저자인 나디아 초는 ‘보나베띠’ ‘푸드 앤 와인’ 등에 음식 칼럼을 쓴 저널리스트로,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정관 스님 편 제작에 참여했다.

‘장’ 공동 저자 조슈아 데이비드 스테인. Artisan Books(아티장 북스) 제공 Copyright © 2024 사진 DeSean McClinton-Holland
‘장’의 공동저자 나디아 초. Artisan Books(아티장 북스) 제공 Copyright © 2024 사진 Diane Kang

강 셰프는 “어떤 게 한국의 장인지, 일본 미소와는 뭐가 다른지, 장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서양 음식에선 장을 어떻게 쓰면 좋은지 등” 여러 의문이 책 출간의 시작점이라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국 문화와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아서 이런 기회도 생긴 듯하다”고도 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코로나 때 힘들었습니다. 본래 밍글스는 외국인 손님이 많은 편인데, 거의 올 수 없는 상황이었죠. 걱정이 컸는데, 한편으로 한식을 재밌게 알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죠.” 그는 다른 셰프들처럼 유튜브 영상을 만들 자신은 없었다고 했다. “책을 통해 한식과 음식 철학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그는 샘플 북을 만들어 미국 유수의 출판사에 보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는 출판사 아티장을 선택했다. “아티장은 1년에 4~6권 소량만 출간하는 곳이고, 요리책은 1년에 2권 정도만 신중하게 내는 곳이라 기쁜 마음으로 정했어요.”

덴마크 레스토랑 노마의 셰프 르네 레드제피, 미국 셰프 토마스 켈러 등이 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출간했다. 그는 공동 저자들과 4년간 전국을 다니며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우리 발효음식을 연구했다. 제주, 순창, 고창, 청송, 오송, 보은 등 전국에 퍼져있는 명인들을 만나 우리 장의 뛰어난 가치를 확인했다. “한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 용어 정리도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한식 책 ‘장’ 표지. Artisan Books(아티장 북스) 제공 Copyright © 2024 사진 윤동길

책은 두 명의 ‘한식의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로 시작한다. 본래 서양요리를 전공한 강 셰프는 정관 스님과 한식 대모 조희숙 셰프에게서 한식을 사사했다. 책에는 강 셰프가 밍글스에서 차린 메뉴 레시피와 만두전골, 떡갈비 등 우리에게 익숙한 한식의 ‘강민구식 버전’이 적혀 있다. ‘된장 바닐라 크렘 뷔렐레’ ‘간장 그래놀라와 요거트’ ‘고추장 풀드 포크 샌드위치’ ‘고추장 초콜릿 무스’ 등이 유독 눈에 띈다. 이질적인 재료들의 조합이 호기심을 부른다. 장을 여러 배율로 조합해 만든 ‘라이트 맛간장’ ‘다크 맛간장’ 등의 레시피가 적힌 챕터는 그가 유독 심혈을 기울인 페이지라고 한다. 오는 3월 출간과 동시에 뉴욕 등 미국 도시 몇 군데에서 출간기념회를 할 예정인 그는 “벌써부터 설레고 걱정된다”고 말한다.

‘더 코리언 쿡북 한식’을 출간한 박정현 셰프(사진 오른쪽)와 최정윤 셰프. 박미향 기자
미국 매체에 실린 ‘더 코리언 쿡북 한식’ 기사. 매체 화면 갈무리

앞서 지난해 10월 뉴욕에서 출간된 ‘더 코리언 쿡북 한식’(The Korean Cookbook 한식)도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등에 소개되는 등 화제가 됐다. 영국의 대표적인 아트북 출판사인 파이돈이 펴냈다. 저자는 박정현·최정윤 셰프. 박 셰프는 6년 전 미식의 격전장 뉴욕에 문 연 레스토랑 아토믹스가 ‘미쉐린 가이드’ 별 2개, ‘2023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50’ 8위 수상 등 화려한 성과로 세계 미식계에서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받고 있다. 최 셰프는 스페인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 등에서 경력을 쌓은 이로 2010년부터 샘표식품 한식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겨레와의 만남에서 박 셰프는 “최고의 미역국이 아닌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특히 ‘홈쿡’하는 외국인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미역국을 소개해야한다는 관점에서 책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식에 대한 궁금증은 커지고 있는데. 정작 그것을 풀어줄 책이나 채널이 미국에 별로 없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매운 라면 등 자극적인 ‘먹방’으로 소비하는 이가 많습니다. 슴슴한 우리 음식이 많은데도 말이죠.”(박정현)

최 셰프는 “외국인들이 한식 경험에 실패하는 이유 중에 ‘먹는 방식’을 몰라서도 있다. 김치를 따로 먹는 것과 밥 위에 올려 먹는 것, 다른 것에 싸먹는 것은 각각 완전히 다른 맛의 경험이다”라며 “레시피를 통해 제대로 먹는 방식을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더 코리안 쿡북 한식’ 표지. 파이돈 제공

박 셰프가 대학생이던 시절 요리사 모임에서 처음 만나 18년간 우정을 나눈 이 둘은 지난 3년간 작업에 몰두했다. 496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에는 350개 한식 조리법이 촘촘히 담겼다. 한식의 간략한 역사, 발효음식의 가치를 포함해 박광희 김치 장인 등 여러 명인의 삶도 녹였다. 한식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점은 돋보인다. 녹두부침개는 ‘Noku Buchimgae’, 나물 튀김은 ‘Namul Twigim’으로 적었다.

정관 스님의 철학을 담은 요리책. 정관 스님 제공
정관 스님. 박미향 기자
지난해 11월 ‘지역 상생 정관 스님 갈라 디너’ 행사에서 정관 스님이 차린 사찰음식. 박미향 기자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의 조리법과 음식 철학을 담은 책 ‘정관 스님, 어 컬리너리 바이오그래피 위드 레시피’(Jeongkwan Snim, a culinary biography with recipes)도 최근 스위스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후남 실만. 그는 스위스에 거주하며 한국 문화를 오랫동안 알려온 철학 박사 출신의 한국인 저널리스트다. 46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는 사찰음식의 소박한 레시피와 이야기가 담겼다. 지난해 11월 정관 스님이 머무는 암자 천진암이 있는 장성군이 서울 남산 엔(N)타워 전망대 3층 레스토랑 한쿡에서 연 ‘지역 상생 정관 스님 갈라 디너’ 행사에서 스님은 책 출간의 의미를 밝혔다. 그는 “사람을 살리고, 지구 환경을 살피는 수행이자 철학인 사찰음식의 가치와 실천 방법이 책을 통해 (세계에)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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