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제 손을 거쳐야 성이 풀려요”

한겨레 2024. 2. 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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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이 맛있는 집이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막 썰어 내는 것이라 '주먹고기'라 한다던데, 이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

화려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반찬도 무엇 하나 맛이 빠지는 것 없이 꽉 차 있다.

비결이 뭐에요, 여쭤보니 "반찬 준비부터 고기 써는 것까지, 주방 아주머니도 고생하지만 그래도 내 손을 전부 다 거쳐야 성이 풀려요. 결국 내 장사인데, 맛있어야 하잖아요." 우직하게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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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고 삽시다
‘주먹고기’. 필자 제공

이종건|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이 맛있는 집이 있다. 콩나물 한줌도 대충 내지 않는 섬세함이 묻어나는. 술꾼들은 상이 차려지기도 전에 소주 한병 비운다며 좋아하고, 먹보들은 본 게임 시작도 전에 김치에 공깃밥 한그릇을 뚝딱 비운다며 좋아하는 그런 집 말이다.

‘주먹고기’ 네글자만 쓰여 있는 단순한 간판. 한때 먹자골목으로 불리던 서울 명동재개발2지구 골목 한구석, 오래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드라마 촬영장인가 싶은 오래된 고깃집 풍경이 펼쳐진다. 열평 남짓 작은 가게에 동네 사랑방 드나들듯 인근 직장인들이 문지방을 열심히 넘나들고 있다. 제대로 된 숯불 위로 질 좋은 돼지고기 기름이 떨어지며 연기가 오른다. 네댓개 테이블에 손님이 차면 환풍기로는 감당할 수 없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하지만, 그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단골들로 복작거린다.

주먹구구식으로 막 썰어 내는 것이라 ‘주먹고기’라 한다던데, 이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 같은 자리에서 17년, 그 전까지 더하면 50년 고깃집을 해왔다는 지긋한 나이의 사장은 평생 그래 왔듯, 자신의 결대로 고기를 먹기 좋게 잘 썰어낸다. 아무리 바빠도 초벌은 꼭 본인이 해야 한다. 화려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반찬도 무엇 하나 맛이 빠지는 것 없이 꽉 차 있다. 고기부터 반찬, 찌개에 들어가는 재료까지 전부 국산을 쓴단다. 고기는 오래전부터 거래해오던 정육점 것만 받아쓰니 한결같은 품질이다. 무침과 장아찌부터 김치까지 전부 다 주인장 손길을 거친다. 이런 식으로 장사하는데 동네에서 입소문이 안 날 리 있나. 점심이면 김치찌개에 두툼한 계란말이 먹으러, 저녁이면 고기에 소주 한잔하러 오는 사람들로 작은 가게가 북적인다.

그렇게 일군 가게가 명동재개발로 사라질 위기다.

‘주먹고기’. 필자 제공

메뉴판에는 주먹고기, 삼겹살, 김치찌개, 계란말이. 이렇게 딱 네개 메뉴만 적혀있다. 십년 전쯤 멈춘 것 같은 가격과 함께. 이렇게 팔아서 뭐가 남습니까, 하니 “가게가 변변찮아 손님한테 미안해서 가격을 못 올려요” 하신다. 비결이 뭐에요, 여쭤보니 “반찬 준비부터 고기 써는 것까지, 주방 아주머니도 고생하지만 그래도 내 손을 전부 다 거쳐야 성이 풀려요. 결국 내 장사인데, 맛있어야 하잖아요.” 우직하게 일했다. 단순하지만 고된 일을 타협 없이 해왔다. 고집스럽게 지켜 온 고깃집 신념은 아무래도 성격에서 비롯됐나 보다. 처녀 시절부터 쓰던 기업은행 통장이 가장 오래된 통장으로 선정돼 인터뷰했던 10년 전 기억이 큰 자랑이시란다. 통장을 기증하며 받은 3돈짜리 금은 어디 뒀는지 찾지도 못하시면서.

명동에 남은 마지막 재개발지역인 명동재개발2지구에 있는 아홉개 가게는 중구청 중재로 재개발 시행사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구청 요청으로 시행사는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강제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상인들과 약속했다. 한시름 놨지만, 어렵게 지켜온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릴까, 두려움은 여전하다. 시리게 추웠던 지난 저녁, 뜨겁게 타는 고깃집 숯불 앞에 앉아 기도했다.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이 도시를 풍성하게 하는 묵묵한 상가세입자의 삶이 쉬이 쫓겨나지 않기를. 그저 정직하게 손님 대접하는 걸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순박함이 배신당하지 않기를. 그렇게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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