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유전적 차이 1%뿐? 사람과 침팬지는 1.2%…‘성차의학’ 필요”

장수경 기자 2024. 2.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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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①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170㎝-65㎏-남성’ 표준은 오류
‘성별차이 규명’ 의학연구 새바람
국내 첫 성차의학연구소 소장 맡아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배지를 단 여성 국회의원은 18.5%다. 지난해 매출액 상위 100개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6%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은 여전히 비주류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보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여성들을 소개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의 초대 연구소장인 김나영 소화기내과 교수가 10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관련 서적을 들어보이고 있다. 240110.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여성과 남성의 유전적 차이는 약 1%다. 99%는 같다는 뜻이다. ‘고작’ 1% 차이라는 말이 나올법 하지만, 정말 그럴까.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적 차이가 1.2%라는 점을 고려하면, 1%는 실로 엄청난 차이다.

하지만 의학은 이런 차이를 간과한 채 그동안 ‘170㎝-65㎏-남성’을 표준으로 발전해왔다. 이 때문에 인류의 절반인 여성은 치료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의 위험을 안고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불면증 환자에게 처방되는 수면제 ‘졸피뎀’이 대표적 사례다. 2010년대 초반 졸피뎀 부작용으로 자동차 사고가 잇따르자,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여성과 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졸피뎀 복용 이후 혈액에 남아 있는 수치를 측정했다. 결과는 졸피뎀 10㎎을 복용한 여성의 15%, 남성의 3%가 복용 8시간 후에도 주의력 장애를 겪었다. 졸피뎀은 지방에 잘 흡수되는데, 체지방이 많은 여성의 체내에 약물이 더 오래 남아 있는 탓이었다. 미 식품의약국은 2013년 여성의 졸피뎀 초회 처방 용량을 남성의 절반인 5㎎으로 낮추라고 권고했다.

최근 성별에 따라 적합한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성차의학’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2010년대부터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이나 메이요 클리닉, 독일 샤리테 병원 등이 성차의학연구소 설립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3월 분당서울대병원에 성차의학연구소가 설립됐다. 초대소장은 김나영 소화기내과 교수다. 김 소장은 2021년 책 ‘소화기질환에서의 성차의학’을 펴냈고, 이듬해엔 위·십이지장질환, 심혈관 질환, 정신과 질환 등의 성차를 다룬 책 ‘임상영역에서의 성차의학’의 대표저자를 맡는 등 국내 성차의학 분야를 이끌어 오고 있다. ‘소화기질환에서의 성차의학’은 2022년 국제출판사인 스프링거에서 영문판이 나왔고, ‘임상영역에서의 성차의학’도 올 4~5월께 영문판이 발간될 예정이다. 지난 10일 분당서울대병원 내에 있는 성차의학연구소에서 김 소장을 만났다.

여성에게 불리했던 의학

—성차의학이란.

“성차를 두가지 측면에서 나눠 볼 수 있다. 호르몬과 유전자·염색체같은 신체적 특징인 성별(sex)과 사회·문화·심리적인 젠더다. 남녀는 생식기능, 성호르몬, 엑스(X)와 와이(Y) 성염색체로 나타나는 유전자 등이 다르기 때문에 성별에 따라 다른 질환을 발생할 수도 있고, 같은 질환이라도 다른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젠더도 마찬가지다. 젠더에 따라 스트레스 등을 달리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발생 질환도 달라질 수 있다.

성차의학이란 질병의 진단·치료·예방에 성별이나 젠더적 차이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야다. ‘맞춤의학’ ‘정밀의학’과 맥을 같이 한다. 맞춤의학을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대표적 요소가 나이·성별인데, 그동안 성별은 간과됐다가 1980~1990년대 접어들면서 의학이 남성중심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성차의학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진단과 치료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같은 심혈관 질환의 경우, 남성과 여성이 대체로 다르게 통증을 느낀다. 남성은 심혈관 질환의 전형적인 증상인 가슴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여성은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 된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여성의 관상동맥질환은 병태 생리 및 경과가 남성과 매우 다른데, 여성의 경우 급성관상동맥 증후군이 발생할 시 죽상동맥경화반이 파열되기보다 미란(피부나 점막의 표층이 결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알면 응급상황에서 더 빨리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

심장병이 남성질환이라고만 생각하면, 여성 환자의 치료는 늦어지게 된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한 일본인 심장내과 교수는 여성은 심장질환에 안 걸린다고 생각해, 여성 심근경색 환자에게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진단했다고 했다. 물론 심장 질환은 남성 환자가 더 많고, 임상 참여율도 높아 데이터가 남성 중심일 수밖에 없지만, 해당 데이터가 대표성을 가지려면 여성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

—성차를 고려하지 않아서 피해 본 사례는.

“역류성 식도염 등 위장질환 치료제였던 ‘시사프라이드’가 대표적이다. 2000년 이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던 캐나다 여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시사프라이드가 특히 여성에게 치명적인 심장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판매가 중단됐다. 여성은 심전도에서 큐(Q)파와 티(T)파 간의 길이가 남성보다 긴 편인데, 시사프라이드가 이 큐티(QT) 기간을 더 길게 해 특히 여성에게 치명적인 부정맥과 심정지를 더 잘 유발하게 했던 거다. 나도 환자에게 자주 처방했던 약이라, 깜짝 놀랐다. 1997년~2000년 사이 미국 시장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켜 퇴출된 10개 약물 중 8개가 여성에게 더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질환에 젠더적 차이도 있나.

“알콜 중독이 대표적이다. 남성 알콜 중독 환자는 대체로 보호자와 함께 병원에 오는 반면, 여성은 혼자 오는 경우가 많다. 남성보다 병이 더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에서 병원에 온다. 오랜 세월동안 술마시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봤던 역사 탓이다.

간경화에 걸린 젊은 아기 엄마가 의료진에게 음주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C)형간염, 비(B)형간염 모두 음성인데 복수가 차서 의료진이 이유를 찾느라 애먹었는데, 알고보니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 몰래 숨어서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다가 그렇게 된 거였다.

기능성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위장질환도 있다. 이 질환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여성은 생리적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에 취약하다. 여성과 남성이 겪는 사회적으로 스트레스도 다르기 때문에 젠더적 관점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차이들이 의학에서 간과돼 왔던 이유는.

“의학자 대부분이 남성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만 하더라도, 80학번인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의대 정원 160명 가운데 여학생은 16명이었다. 여학생이 10% 수준이면 굉장히 많은 축이었다. 그 이전엔 학번당 여학생이 1명, 3명, 8명 정도였다. 지금은 여학생이 30~40% 정도로 늘었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여성은 뽑지 않는다’며 12년동안 교수 임용이 되지 않았다. 나와 함께 박사를 딴 남자 선배에게 취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더니 연구를 하고 싶었던 내게 ‘개원의를 고려하면 갈 데는 많다’고 하더라.”

—의대 교육 과정에서도 실제 ‘여성은 작은 남성’처럼 배우는 건가.

“의대생 시절 교수들이 ‘성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남녀를 구분해서 연구해야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남녀 유병률에서 차이가 있다’ 수준에서만 설명한다. 여성 환자가 2배 더 많다면, 왜 더 많은지, 치료는 뭐가 달라져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주전공인 헬리코박터와 위암에서 성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성차의학에 대한 교육 필요성을 느낀 김 교수는 2017년 대학원 과정에 이어 2018년 서울대 의대에 ‘성차의학’ 과목을 개설했다. 수업에선 소화기·심장·간 질환 등에서 발생하는 남녀 차이를 다룬다. 매년 여름 학부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엔 학생 22명이 수강한 적도 있을 만큼 관심이 크다. “160명가량을 대상으로 10개 이상 강좌가 열리는데 22명이 수업을 듣는 거면 정말 많이 온거다. 학생들에게 왜 이 강의를 수강하냐고 물었더니 ‘정밀의학이다’ ‘학교에서는 안 배우는 내용’이라고 하더라.”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의 초대 연구소장인 김나영 소화기내과 교수가 10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소 문패를 가리키고 있다. 240110.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모두에게 유리한 성차의학

—성차의학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계기는.

“2014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의 이사 자격으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열린 ‘젠더 혁신’ 워크샵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성미경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대장암에 관해 발표할 때 임상 측면에서 도우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2016년에 대장암 성차 연구에 대한 국책 과제를 수주하면서 성차의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연구 결과 여성은 상대적으로 대장의 오른쪽에서, 남성은 왼쪽에서 암이 발병한다는 게 밝혀졌다. 질병에 성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성차의학연구소를 만들었나.

“지속적으로 성차의학 연구를 진행하니, 여성과총 전 회장이던 백희영 서울대 명예교수가 “국외에는 성차의학연구소가 있는데, 한국엔 없다’며 만들어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당시 병원장님에게 연구소 설립 제안서를 만들어 제출했는데 통과됐다. 그리고 2023년 3월 설립돼 현재 연구진이 39명 있다. 타 의대 교수님 등 외부 위원도 6명가량 된다. 심부전 약이 남녀에 따라 효과가 다른 이유 등애 대한 연구 비용을 연구소가 지원하고 있다.”

—성차의학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

“아직 인식이 높지 않다. ‘성소수자(LGBT) 관련 연구를 하는 거냐’라고 하거나, 막연히 ‘별 차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성차의학이 중요하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다. 반면, 적극적으로 연구에 적용하는 분들도 있다.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전임의의 경우엔, 성별을 나눠 폐암 연구를 진행했더니 생존율 등에서 새로운 차이를 발견했다며 고맙다고 하기도 했다.”

—성차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여성을 위한 거라는 오해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동안 의학이 남성 위주로 발전돼 왔고, 여성 연구가 되지 않았다보니 여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배제돼 왔던 ‘여성을 주목하자’ ‘여성은 남성의 작은 남성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거니까. 하지만 성차의학은 여성만 연구 주제로 삼자는 게 아니라, 성차를 인식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에게도 유리하다. 예를 들어 전체 유방암 환자 중 남성 비율은 0.5%로 적긴 하지만, 남성도 걸린다. 하지만 남성은 유방암 2차 약제를 사용할 때 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이다. 유방암이 여성질환이라고 여겨지는 탓이다. 또 노인성 가려움증은 남성이 훨씬 심한데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연구소에서 가려움증 부분을 연구할 예정이다.”

국내 성차의학 아직 초보 수준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16년부터 연구비를 신청하는 모든 연구계획서에 성별이나 젠더 요소를 고려하고 있는지 명시하도록 했다. 척추동물 이상을 대상으로 연구를 할 때 암·수를 모두 포함시키거나, 그럴 필요성이 없는 경우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캐나다 보건연구소와 유럽위원회도 각각 2010년, 2014년부터 비슷한 규정을 뒀다.

한국은 아직 성차의학 연구에 대한 정책 지원이 거의 전무하다. 임상시험 가이드에 성별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지만 권고사항이다. 다행히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 특성을 고려하도록 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지난해 6월 시행됐다.

—국내 성차 의학 연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시작 단계다. ‘임상에서의 성차의학’ 책을 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동안 진행된 연구가 많지 않아 교수들이 참고할 논문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여전히 ‘질환에 성차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연구가 많이 진행돼야 한다.”

—성차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대에서 강의할 때 ‘남녀 차이가 왜 발생하느냐’는 질문에 종종 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학은 이념적 주장을 하면 안 되고 구체적인 실증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연구가 필요하고,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가 있어야 한다. 다양한 성차의학 연구를 위해서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고, 초기엔 인위적으로라도 성차를 연구하도록 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임상단계에서 특정 성별이 일정 비율 이상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는 임상에 참여하는 성별 비율에 대한 기준이 없다. 제약사들은 빨리 임상실험을 끝내고 싶어하기 때문에 참여율이 높은 성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임신 가능성 때문에 젊은 여성을 임상 과정에서 포함시키는 걸 탐탁지 않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최소 30% 이상 성별을 달리한다면, 대조군이 적절하게 배치될 수 있다.”

김 소장이 연구한 성차의학은

김 소장은 그동안 헬리코박터, 위암 등을 주전공으로 연구해왔다. 소화성궤양과 위암의 원인인 헬로코박터 파일로리균의 전염 과정과 재감염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출간해 2017년 여성 의사로는 처음으로 서울대의대동창회에서 수여하는 ‘함춘동아의학상’을 받았다. 김 교수는 “매년 3명씩 주는 상인데, 20여년 만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수상자가 됐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최근 남성이 여성보다 대장암에 잘 걸리는 이유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결과 유산균(젖산균)과 낙산균 등 장내 유익균이 대장선종·대장암 환자보다 건강한 사람의 대조군에 유의미하게 많았는데, 특히 여성과 55살 이하 연령에서 장내 유익균이 많았다. 남성의 대장암 발병률이 여성보다 높은 이유도 유익균 분포 차이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위암에서도 차이를 발견했다. 전체 위암 환자 수는 남성이 2배 많지만, 여성은 예후가 좋지 않은 미만형(넓게 퍼지는 형태) 비율이 남성의 2배였다. 남성은 장형(덩어리 형태)이 많았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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