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다가와도 '구구구'…비둘기 먹이 함부로 줬다간

이승주 기자, 김지은 기자 2024. 2.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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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구로구의 한 거리에 비둘기들이 모여있다. /사진=이승주 기자

"봐요. 옆에 또 왔네."

지난 17일 서울 구로구의 한 포장마차. 상인 김모씨는 비둘기 한 마리가 포장마차 내부로 살금살금 다가오자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가 발로 이곳저곳 '쿵쿵' 밟자 깜짝 놀란 비둘기는 날갯짓을 하며 도망갔다.

김씨는 평소에도 비둘기가 먹이를 찾아 포장마차 내부로 들어와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그는 "젊은 손님들은 비둘기가 가까이 오면 놀라기도 한다"며 "주변에 비둘기 배설물도 많아서 냄새가 난다. 장사하기 영 불편하다"고 말했다.

포장마차 건너편 공원을 가보니 회색, 검은색 비둘기 40여마리가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곳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간식을 주는 사람도 있고 벤치에 앉아 다가오는 비둘기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나눠 주는 사람도 있다. 워낙 비둘기가 많은 탓에 주변 바닥은 배설물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서울 시내 공원에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아달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사진=뉴스1

최근 비둘기 같은 야생동물의 배설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면서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제한하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민들은 주변 환경이 청결해지는 것에 반색했지만 동물보호단체는 먹이 주기 금지 행위는 동물 학대와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로 유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먹이를 주는 장소나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 제한할 수 있다. 오는 12월20일부터 적용되며 위반시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동안은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었다.

비둘기는 2009년 유해 야생동물로 공식 지정됐다. 비둘기는 분변 및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 훼손이나 건물 부식 등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생활에 피해를 줄 수 있다.

평소 비둘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시민들을 반색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주부 정모씨(44)는 "아파트 단지 안에 비둘기 때문에 실외기 쪽에서 밤마다 '구구구' 소리가 들렸다"며 "배설물 냄새도 심각해서 방충망도 새로 설치했다. 비둘기가 스스로 음식을 찾아 먹도록 해야 비둘기도 사람과 충돌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송모씨(50)도 "비둘기는 유해한 동물인데다가 개체 수도 많은데 먹이까지 주면 번식 속도가 더 빨라져서 환경오염이 심각해질 것"이라며 "비둘기가 자연 그대로 살아가게 하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닭둘기'를 만드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야생동물보호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평화의비둘기를위한시민모임과 한국동물보호연합은 지난 3일 야생동물보호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비둘기 등에게 먹이를 주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은 (비둘기가) 굶어 죽으란 소리와 같다"며 "비둘기, 고라니 등 많은 동물을 유해 야생동물이라고 무책임하게 지정해 온 것은 대표적인 인간 이기주의 정책이다. 야생동물 개체수 조절을 위해 외국처럼 비둘기들에게 불임 모이를 주며 관리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비둘기에게 쌀 알을 준 적이 있다는 직장인 박모씨(32)는 "카페를 갔을 때 사람들이 참새한테 먹던 쿠기를 주는 것을 봤다"며 "참새나 비둘기 모두 같은 새라고 생각한다. 먹이를 주는 장소나 시간을 제한하는 건 이해하지만 먹이 주기 자체를 금지하는 건 극단적"이라고 했다.

직장인 김모씨(27) 역시 "먹이를 주는 건 생명을 돌보는 일"이라며 "이걸 금지하는 건 생명에 경중을 두고 제한하는 것과 같다. 비둘기는 인간에게 병을 옮길 확률도 매우 적다. 개체수 조절이 필요하다면 생식을 줄일 수 있는 생활 환경 조성 등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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