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이 ‘학교폭력’으로 번져… 부모 개입 ‘아동 학대’될 수도

최예나 기자 2024. 2.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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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학교폭력 예방 팁
상처주는 말과 행동도 가해 행동… 악의 없어도 위험한 장난 삼가야
잘못한 즉시 사과하도록 교육을… 폭력 맞대응 땐 ‘쌍방 사안’ 처리
방관-가담 땐 가해자 될 수 있어… 상대측 아이 직접 훈계는 자제를
새 학기가 한 달가량 남은 시점에서 학부모 상당수는 ‘우리 아이가 새 반에서 친구와 갈등 없이 잘 지낼까’를 걱정한다. 특히 학기 초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낯선 환경 등으로 예민한 상황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크다.

동아일보는 교육부의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 작성 및 검토를 맡았던 전현직 담당자인 김승혜 유스메이트 아동청소년폭력예방협회 대표와 최희영 부대표, 변국희 경기 화진초 교감, 변성숙 경기도교육청 변호사 등의 조언을 듣고 부모가 자녀에게 알려줄 수 있는 학교폭력 예방 팁을 정리했다. 김 대표 등은 최근 학교폭력 해결 노하우를 담은 책 ‘학교폭력, 교육을 만나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글 속의 사례들은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으로 이름은 가명이다.

● 위험하거나 불쾌한 장난, 학폭 가해자 될 수도

사례1
“너희들 수진이가 아이돌 춤추는 영상 올린 거 봤어?”

“완전 연예인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던데?”

“관심 끌려는 거, 진짜 웃겨!”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자 초등학교 5학년 수진 양은 자신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장난인데 예민하게 군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물리적 행동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 역시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학부모가 자녀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칫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선 장난으로 건넨 말이 학교폭력 사건으로 번져 소송까지 가는 일도 빈번하다.

사례2
초등학교 4학년 희수 군은 쉬는 시간에 같은 반 치열 군이 앉아있던 의자를 갑자기 빼는 장난을 쳤다. 치열 군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꼬리뼈가 부러져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다. 희수 군 측은 “장난치다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치열 군 측은 “학교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신고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에서 규정한 학교폭력은 학교 안팎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다. 법원도 대체로 학교폭력의 개념을 폭넓게 본다. 김 대표는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피해를 주는 언행은 하지 않고,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한 행위라도 상대의 기분이나 안전을 살펴야 하며 혹 잘못했다면 즉시 사과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면 둘 다 가해자

사례3
초등학교 3학년 수민 양은 놀이터에서 놀던 중 같은 학교 1학년 재우 군에게 모래를 뿌렸다. 재우 군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수민 양은 무시하고 계속했다. 참다못한 재우 군이 집어던진 돌멩이가 수민 양의 종아리에 맞아 피가 났다. 수민 양의 부모는 4주 진단서를 떼고 재우 군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다. 재우 군 부모는 “수민 양이 먼저 우리 아이를 괴롭혀서 방어한 것”이라고 맞섰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자녀에게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피해 학생이나 그 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 학교는 사안을 처리해야 한다. 만약 재우 군 부모가 수민 양을 학교폭력으로 ‘맞신고’하면 학교는 쌍방 사안으로 처리해야 한다.

변 교감은 “학교폭력 사안에서 소극적 방어의 한도를 벗어나 본격적인 싸움으로 번지면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먼저 때렸거나 더 많이 때린 사람만 가해 학생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 피해자 부모가 직접 실력 행사하면 아동학대

사례4
중학교 3학년 수민 양은 골목길에서 같은 반 친구 현경 양이 담배를 피우며 다른 학생을 때리는 걸 목격했다. 수민 양은 맞고 있는 학생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 자리를 떠났다. 며칠 뒤 학교는 수민 양을 현경 양의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해 같이 조사하겠다고 했다. 수민 양은 폭력 상황을 목격했을 뿐인데 가해자 취급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학교폭력예방법상 가해자는 학교폭력을 직접 행사하거나 가담한 자다. 수민 양이 폭행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그냥 지나쳤다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도 가해자라고 판단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피해 학생이 폭행 장면을 지켜보는 수민 양으로부터 모멸감이나 두려움을 느낀 경우, 수민 양이 피해 학생이 도망갈 수 있는 통로를 막고 있었던 경우 등에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학부모는 학교폭력 상황을 목격했을 때 동조·방관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최 부대표는 “학교폭력을 봤을 때 ‘우린 네 행동이 불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용기 있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며 “평소에 자녀와 ‘학교폭력을 봤을 때 직접 도와줄지, 선생님께 알릴지’ 등을 주제로 대화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사례5
초등학교 4학년 규현 군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자녀 교실에 들어와 “왜 우리 규현이를 자꾸 괴롭히냐”며 같은 반 지민 양을 야단쳤다. 지민 양이 복도로 나가려 하자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한 번만 더 그러면 학교 못 다니게 할 거야”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안 지민 양 어머니는 규현 군 엄마를 학교와 경찰에 신고했다.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력 행위다. 따라서 규현 군 어머니가 지민 양에게 한 행위는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 변 변호사는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학부모가 직접 상대 측 아이를 훈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자녀가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더라도 직접 가해 학생을 혼내면 또 다른 학교폭력이나 아동학대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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