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알바 알아보고 있어요”···승소하고도 일자리 불안 내몰린 한전 도서지역 노동자들

이예슬 기자 2024. 1. 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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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전력의 도서지역 발전소 하청 노동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12월부터 알바 자리를 알아봤어요. 쿠팡도 알아보고. 막막할 뿐입니다.”

17년째 도서지역 발전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음현석씨(44)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음씨는 “교육 여건이 마땅치 않아 무리해서 아이들을 육지로 보내놨는데, 상황이 안 좋아져서 더 걱정이 크다”고 했다.

한국전력과 소송 중인 하청업체 JBC 노동자들은 1심에서 승소하고도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JBC 노동자 145명은 한전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에서 지난해 6월 승소했다. 그 후 한전은 이들을 자회사에 고용키로 하고,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걸었다.

JBC는 한전 퇴직자 단체의 자회사로 30여년간 한전과 계약을 맺고 도서전력발전 사업을 운영해왔다. 접근이 어려운 섬 지역의 발전소 운영·관리가 주 업무다. 이곳의 노동자 145명은 이같은 고용형태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걸었고 1심 법원은 이들이 한전 직원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한전은 JBC에 다음달 1일부터 자회사 한전MCS와 위탁 운영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통보했는데, 소송 중인 노동자들은 자회사 고용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JBC 노동자들은 당장의 생계를 고민하고 있다. 충남 보령의 고대도에서 근무 중인 21년차 발전소 노동자 이재동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장은 “노동자들 상당수가 섬에 터전을 잡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상황”이라며 “섬에 일자리도 마땅치 않아 소송을 유지하려면 일용직이라도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서 근무 중인 11년차 유모씨(43)는 “당장 생계가 어려워 올해 하려던 결혼도 무산된 상태”라고 했다. “백령도는 인천까지 4시간은 걸려 아르바이트 자리 찾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며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소를 취하하고 일자리를 알아봤겠지만 그럴 수도 없어 막막하다”고 했다. 유씨는 평생을 백령도에서 살아 온 노부모도 부양 중이다.

이들은 1심에서 승소할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지부장은 “당시 1심 판결을 받고 뛸 듯이 기뻤고, 조합원들과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며 “2심, 3심에 대한 기대치도 높았다”고 했다. 음씨도 “항소는 예상했지만, 1심 승소를 한 만큼 앞으로도 승소할 거라는 생각에 기뻤다”면서 “공기업인 한전이 이런 꼼수를 쓸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JBC 노동자들은 재판에 이기고도, 생계 불안에 내몰린 상황을 억울해하고 있다. 이 지부장은 “1심에 참여한 노동자들 상당수가 연평도 포격 당시에도 사명감으로 도서지역을 지켰던 노동자들”이라며 “잘못은 한전이 했는데 그 책임은 왜 도서지역에서 헌신해 온 노동자들이 지나”라고 했다. 유씨는 “백령도 지역 노동자들은 북한 도발 때마다 비상대기를 해왔다”며 “내 고향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저임금도 버텼는데, 한순간에 실직에 내몰리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소송을 취하하고 한전MCS로 적을 옮길 경우 고용의 질이 더 악화할 것으로 본다. 이 지부장은 “한전MCS는 임금체불 문제도 제기됐고, 향후 구조조정 위험성도 있어 신뢰할 수 없다”면서 “직접고용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고용불안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유씨도 “임금 체불도 발생했고 적자가 예상되는 회사로 보내는 게 어떻게 상생인가”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전MCS 관계자는 “(임금체불 건은) 소급분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사측과 노조 간 지급 시기에 입장 차가 있었으나 상호 합의를 통해 소급분을 지급했고 임금체불 진정서도 취하됐다”며 “2023년을 제외하고는 흑자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원에 대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논의 대상이 아니며 기존 직원의 고용안정에 각별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 열고 직접 고용을 피하려는 한전을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황규수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소송 포기자에 한해 자회사 전직하는 것은 도서발전노동자의 재판청구권과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노조 활동을 무력화하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했다.

한전 측은 “감사원 등의 대외기관 지적에 따라 퇴직자 단체 출자 회사(JBC)에 대한 특혜 논란 불식을 위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노동자 고용안정을 고려해 도서전력설비 위탁운영 업무안을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라 했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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