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생] 쇼는 기발하게, 국수는 정석대로…마을아, 고맙다

황지원 기자 2024. 1. 3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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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인생] (21) 귀촌한 개그맨 전유성씨 <전북 남원>
겨울 지리산 보러갔다 3개월 동안 정착 ‘인연의 끈’
메뉴개발 후 중군마을에 국숫집 ‘국수교과서’ 열어
지역주민과 교류 활발…콘서트·잡담쇼 등 기획
개그맨 전유성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국숫집 ‘국수교과서’ 앞에서 젊을 적 사진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책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을 출간한 전씨가 지역주민들과 북토크를 열고 있는 모습. 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사방이 지리산으로 둘러싸인 전북 남원시 인월면 중군마을. 이곳에 개그맨 전유성씨(75)가 살고 있다. 서울 태생 전씨는 어쩌다 남원으로 귀촌하게 된 걸까?

“지리산엔 별로 가본 적 없었는데 갑자기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에 물어보니까 ‘지리산은 봄이 좋다’ ‘여름에 멋있더라’ ‘가을이 진짜배기다’ 이러는 거예요. 겨울 좋다는 말이 안 나오길래 겨울에 갔죠.”

1997년 12월, 전씨는 겨울 지리산을 보러 남원으로 향했다. 잎이 다 떨어지고 헐벗은 나무를 통해 지리산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남원에 살며 친구를 여럿 만들었다. 서울에 올라갈 때가 되니 문득 ‘조선시대 여기 살던 사람들은 과거 보러 한양에 어떻게 갔을까’ 궁금해져 서울까지 걸어 올라갔다. 꼬박 12일이 걸렸다.

국수교과서 내부 모습. 전씨가 세계를 여행하며 사 모은 소품들로 가득하다.

그로부터 20년 후, 전씨는 남원에 아예 정착하게 됐다. 그의 권유로 딸 내외가 2011년 귀촌해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오래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도 많았다. 재작년부턴 중군마을에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국수교과서’라는 국숫집도 열었다. 정석대로 음식을 내놓겠다는 의미다. 15가지가 넘는 국수를 직접 개발한 끝에 ‘소고기뭇국국수’와 ‘비빔생면국수’를 대표 메뉴로 정했다. 그는 시간이 될 땐 가게에 나와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다. 국숫집 안은 테이블부터 의자·소품까지 전씨가 여행을 다니며 모아온 것들로 가득하다. 중국에서 사 왔다는 커다란 테이블을 보고 기자가 “직접 고르고 나중에 배로 들여온 건가요?”라고 묻자, “저 정도 크기는 잘 접어서 배낭에 넣고 왔지”라고 대답하는 그는 천생 개그맨이다. 겨울엔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국숫집은 휴업한 상태다.

전씨는 지역주민과도 활발히 교류한다. 2020년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산야초반에 입학해 주민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이후에는 학교 고문을 맡아 행사가 있을 때 참여한다. 딸이 운영하는 카페에선 ‘전유성의 잡담쇼’ ‘고(故) 이동원 추모공연’ 등을 기획해 진행을 맡으며 주민 관객을 만나고 있다.

누구보다 코미디 무대를 사랑하는 전씨. 그의 꿈은 원래 배우였다. 방송국 공채 탤런트 시험에 번번이 탈락하면서 개그맨에 도전하게 됐다.

“당대 최고 코미디언이었던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님이 진행하는 쇼 녹화장에 무작정 갔어요. 곽 선생님이 화장실에 가길래 저도 얼른 따라 들어갔죠. ‘선생님 원고를 제가 써오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나왔습니다.”

그는 콩트 대본 20여개를 준비해 다시 스튜디오로 향했다. 곽씨는 전씨가 쓴 대본을 쇼에 활용했고, 이후 전씨는 후라이보이 뮤직 프로덕션에서 일하며 대본 작성과 잡다한 일을 하며 쇼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전씨는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것 외에도 쇼 기획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21년 남원과 가까운 경남 함양에서 열린 산삼엑스포에 코로나19로 관객이 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산삼에게 국악을 들려주자’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비대면 음악회를 열었다.

2007년 전원생활을 하러 간 경북 청도에선 동물을 데려와 함께 볼 수 있는 클래식음악회 ‘개나 소나 콘서트’를 열었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고장에서 정작 동물을 위한 콘서트가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2011년엔 “지방 사람들에게도 코미디를 짜장면처럼 배달하겠다”는 의미로 ‘코미디 철가방극장’을 열어 성업을 이뤘고, 청도지역 경제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코미디 철가방극장은 관객뿐 아니라 개그맨 지망생에게도 고마운 존재였다. 전씨는 극단을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숙식을 제공하고 월급까지 줬다. 기자가 전씨를 만났던 날, 청도에서 함께 공연했던 극단 제자들이 새해 인사를 하러 남원을 찾았다. 그들은 “전유성 선생님은 개그뿐 아니라 인생의 스승”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씨의 기발한 쇼 기획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겨울에 강원 태백에서 폐광을 위한 음악회를 열려고 계획 중입니다. 제목은 ‘광산아 고맙다, 석탄아 고맙다’로 정했어요. 춥다고 사람이 안 와도 상관없어요. 노래는 광산을 위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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