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경쟁 유도해 폰값 낮추기… “가격인하 기대” vs “소수만 이익”[10문10답]

이승주 기자 2024. 1. 3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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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단통법 10년만에 폐지 추진
당초 보조금 지급 등 차별없애
‘호갱’ 양산 막으려 도입했지만
통신·제조 시장 독과점 심화로
폰값·이용료 되레 뛰는 부작용
폐지 법 통과위해 野 협조 필수
업계·소비자, ‘효과’ 갑론을박
지원금 차별 문제 해소 과제도
방통위 “선택약정 할인은 유지”
정부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전면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2일 서울의 한 휴대전화 매장에 이동통신 3사 로고가 붙어 있다. 뉴시스

정부가 시행 10년 차를 맞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전격 폐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비자들은 단통법 폐지 이후 휴대전화를 얼마나 저렴하게 살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으며, 이동통신사·휴대전화 제조사·유통망 등은 자신들에게 밀려올 여파를 분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이통3사의 경쟁이 가열되며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통법 폐지를 둘러싼 복잡한 이슈를 10문 10답을 통해 알아본다.

1. 단통법 탄생 배경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인 단통법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215명 중 212명이 찬성하고 3명이 기권했고 공식적으로 반대한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법안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조해진 의원이 대표발의했고, 공동발의 9인도 모두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단 법안 통과에는 야당도 이견이 없었다. 애초 예상보다 법안 처리가 지연된 것은 법안 자체에 대한 이견보다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간 협상 과정에서 다른 쟁점 법안과 함께 처리키로 하면서 늦어졌을 뿐이다. 소비자가 어느 곳에서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입하더라도 똑같은 보조금을 받도록 한 이 법은 대리점마다 보조금이 달라 정보를 모르는 사람이 휴대전화를 비싸게 구매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정작 보조금 경쟁이 사라져 오히려 휴대전화를 더 비싸게 구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법안 처리에 동참했던 정의당 의원들이 법안 공식 시행 2주 만인 10월 14일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2. 윤 대통령 폐지 추진 입장은 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2일 정부 민생토론회에서 논의된 단통법 규제 개선과 관련, “단통법 폐지 이전이라도 사업자 간 마케팅 경쟁 활성화를 통해 단말기 가격이 실질적으로 인하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열린 민생토론회에 감기 등의 이유로 불참했는데, 민생토론회 이후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히며 단통법 규제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생활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단통법 전면 폐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닌 것으로 전해졌다. 법안의 본 목적인 ‘가계 통신비 인하’에 대한 효과가 없는 게 입증돼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철폐돼야 하는 규제라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평소 자유로운 시장과 이를 통한 경쟁 및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강조해왔는데, 단통법은 대표적인 ‘나쁜 생활규제’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향후 단통법 폐지를 통해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이 촉진돼 다수 국민이 싼값에 단말기를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 이통사만 배불렸나

단통법 시행 이후 현재 1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은 휴대전화 값은 이통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배를 불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른바 ‘중저가 폰’의 출고가도 50만 원을 넘는다. 단말기 가격과 이용 요금이 동시에 큰 폭으로 뛰니, 소비자는 통신비 부담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이통 서비스와 단말기 제조 시장 모두 독과점화는 심화하고 있다. 더 나은 혜택을 받기 위해 고객이 통신사를 갈아타는 번호이동 횟수는 단통법 이전 연 1000만 건에서 현재는 400만 건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 단말기 제조 시장의 경우 LG전자가 휴대전화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삼성전자와 애플의 양강 체제로 재편돼 가격 인하 경쟁이 약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4. 폐지 시 단말기 가격 얼마나 싸지나

이통업계와 증권사 분석가들은 단통법이 폐지되더라도 당장 보조금 지급 경쟁이 과열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보조금 경쟁 과열에 따른 가격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이통업계 관계자는 “아직 단통법 폐지 후 정책 대안이나 규제가 언급되지 않아 당장 시장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면서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이 10년 전보다 크게 인상된 만큼, 과거보다 지원금 규모에 따른 가격 격차가 큰 폭으로 체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5세대(G) 어드밴스드 도입 이후 고가 요금제가 다수 출시되고 우량 가입자 유치 경쟁이 다시 재현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며 “타사 번호이동 가입자 대상으로만 특화된 보조금 살포가 가능해진다면 해 볼 만한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원은 “단통법 폐지는 통신사 마케팅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 복병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번호이동 가입자 증가에 따른 단말기 교체 가입자 수 증가와 대형 유통상 부활로 인한 리베이트 상승 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5. 소비자 단체 반응은

소비자 단체들은 단통법 폐지에 따른 대안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통법 폐지가 이통3사의 보조금·장려금 경쟁을 촉진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통신 가입자가 6000만 회선에 달하는 시장 포화 상황인 데다, 이통3사의 시장 점유율도 장기간 고착된 가운데 국내 단말기 시장 역시 삼성전자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적극적인 보조금 경쟁으로 이어질 요인이 적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지금 단통법을 폐지하면 이통사들의 보조금 경쟁을 촉진하기는커녕 불법 보조금으로 시장이 혼란해져 극소수의 소비자만 이득을 보고, 그 부담이 마케팅비라는 명목으로 대다수 국민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며 “공시지원금 거품 해소와 분리공시제 도입을 통해 대다수 국민이 가계통신비 완화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근본적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단통법이) 입법 취지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서도 “대책 없이 수명을 다했으니 법을 폐기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통신 시장 유통구조를 바꿀 만한 정책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6. 신중한 이통사·제조사

단통법의 핵심 당사자인 휴대전화 제조사와 이통사는 입장을 내놓기에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현재 “잘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 외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이통3사와 삼성전자 등 제조사를 불러 의견 수렴 절차에 돌입했다.

이론적으로 제조사들은 단통법 폐지로 단말기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통사가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쓴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또, 실제 단통법 폐지가 이뤄지기까지 정부가 제조사에 중저가 단말기 출시와 가격 인하 압박을 거세게 할 경우 악재가 될 수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통사가 단통법 폐지로 단말기 유통에 적극 나선다는 점은 제조사에 긍정적”이라면서도 “정부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제조사에 중저가 단말기를 내놓으라고 하거나 대리점에 장려금을 많이 주는 방식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부정적 이슈”라고 말했다.

7. 대리점주는 왜 폐지 요구하나

휴대전화 판매업자들은 ‘단통법 폐지 이후’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보조금을 두고 다른 업체와 출혈 경쟁하던 단통법 이전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15년째 휴대전화를 팔고 있다는 김모 씨는 “단통법이 정말 폐지된다면 (업황이 좋아져) 다른 업계로 넘어갔던 옛 동료들이 다시 돌아올 것 같아 좋으면서도 걱정이 된다”며 “공시 지원금이 사라지게 되면 무한 경쟁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가입자가 꾸준히 몰리는 이른바 ‘성지’가 아닌 일반 소형 판매점도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사실상 마진을 적게 남기고 판매해야 하는데, 가입자 확보를 장담할 수 없어서다. 가입자가 적은 달엔 인건비, 운영비도 건지지 못하고 밑지는 장사를 해야 하는 처지다. 서울 중구의 한 판매업자는 “소위 ‘목 좋은 곳’에 있지 않은 판매점은 임대료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며 “규모가 작은 판매점 위주로 1∼2년 내 폐업하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8. 칼자루 쥔 야당 입장은

민주당은 단통법 폐지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의 정책 추진이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며 대국민 사과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단통법 통과를 주도했을 때 이용자 후생 감소, 편법 보조금 확산, 통신 시장 혼란 초래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지적했으나 정부·여당이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다는 취지다.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단통법은 이통사의 가격 담합을 부추기고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비싼 값’으로 휴대전화를 사게 만들었다”며 “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상임위에서 법 개선과 폐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지만 정부·여당은 단 한 번도 적극적인 자세로 검토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단통법 폐지 시 △이용자 지원금 차별 △알뜰폰 사업자와 제4 이통사 고사 우려 △무절제한 지원금 확대로 단말기 출고가 상승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제도 개선 로드맵 마련이 선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과방위는 전체 위원 20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과반인 11명으로 법안 통과를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9. 과거 단통법 처벌 사례

단통법 15조는 단말기 제조업체와 통신사에 대해 위반 행위가 적발될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매출액의 100분의 3 이하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돼 있다.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 이후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는 모두 수차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영업정지 처분까지 받은 첫 사례는 SK텔레콤으로, 2015년 3월 일부 최신 단말기에 대해 최대 50만 원의 장려금을 지급했다가 과징금 235억 원과 신규 모집 금지 7일을 부과받았다. 또 단통법 20조는 일부 위반 사항에 대해선 3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 1억5000만 원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7년 3월 인천 부평의 한 판매업자가 불법 보조금 페이백 사기를 벌였다가 첫 징역형(10월)을 선고받았다. 방통위에 따르면 지난해 단통법을 위반한 과태료 규모도 54개 유통점에 총 1억9800만 원에 달했다. 현재도 단통법 위반 신고 사례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10. 이용자 차별 문제 대책은

10년 전 단통법 도입 이유 중 하나가 단말기 지원금이 차별적이고 불투명하게 지급된다는 점이었던 만큼, 단통법이 폐지되더라도 이용자에 따른 지원금 차별 지급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단통법 위반 신고대상으로 가장 먼저 3조 1항에 명시된 지원금의 차별 지급이 올라와 있는 이유다. 방통위는 “보조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게도 통신비 절감 혜택을 주는 선택약정 할인제도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요금할인을 받고 있는 소비자들의 혜택이 계속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앞으로 단말기유통법 폐지 및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등을 위해 국회와 논의를 거치고 소비자, 업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이승주·이예린·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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