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노리는 ‘부동액 테러’…우리 안에 숨은 범인은?
고양이 혐오하는 캣맘 글 게재
10년 간 길고양이 돌본 강승희씨
"10일 만에 3마리 죽고 1마리 실종"
부검결과 사료서 부동액 성분 검출
판매 제한 및 제대로 된 처벌 필요
고등어 무늬 고양이 등오가 싸늘한 사체로 발견된 건 지난해 12월 2일 오전 9시쯤이었다. 첫 발견자는 이곳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약 10년 동안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던 강승희씨(51).
오랜 세월 고양이를 돌봐온 강씨도 전날까지 건강하던 고양이가 아무런 증상 없이 갑자기 죽은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피를 흘리지도 않았고 설사나 토를 한 흔적도 없었다. 등오는 산책로 옆 담장 너머 추위를 피하도록 만들어준 겨울집 안에 잠든 듯 죽어있었다.
갑작스런 죽음에 놀랍고 슬픈 것도 잠시였다. 등오와 함께 잘 어울리던 삼색이 고양이 은이도 무언가 이상해 보였다. 전날보다 힘이 없이 몸을 조금 비틀거렸다. 함께 다니던 고양이 깻잎이의 모습도 웬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깻잎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은이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에 곳곳을 찾아보았더니 눈에 잘 띄지 않는 낙엽 쌓인 맨홀 입구에 은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입을 벌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강씨는 은이를 데리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검사 결과 급성 신부전이었다. 독성 물질을 먹은 것으로 의심됐다. 급하게 치료했지만 은이는 다음날 오전 5시 45분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사라진 깻잎이도 아마 어딘가에 숨어 같은 증상을 앓으며 고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다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강씨는 생각했다.
‘고양이 혐오’ 좌표 찍힌 북서울꿈의숲
의심스러운 일이 있었다.
약 한 달 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에 ‘북서울꿈의숲 공원에 냥퀴벌레 밥 뿌리는 캣맘’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냥퀴벌레는 고양이(냥)와 바퀴벌레라는 말을 섞어 만든 단어로 길고양이를 혐오하는 이들이 쓴다.
지인에게 이런 글이 올라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강씨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커뮤니티에는 고양이를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영상이 올라온 적도 있다. 길고양이를 어떻게 죽일지, 어떻게 괴롭히고 학대했는지 등의 이야기가 자랑스럽다는 듯 올라온 일도 적지 않다.
강씨는 주변 지인들과 순찰을 돌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누군가 길고양이들을 해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한 달 가까이 지나면서 ‘괜한 우려였나’ 하고 조금 마음이 놓였을 때, 등오와 은이가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다.
누군가 고양이들을 죽인 것으로 의심됐다. 강씨는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동물권행동 카라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고발하고, 수의사의 소견서를 근거로 등오와 은이의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결과를 기다리며 조마조마 하던 12월 13일 오전, 평소에는 밥만 먹고 훌쩍 떠나는 노란 줄무늬 고양이 금비가 겨울집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같은 무리였던 고양이 세 마리가 사라지자 남겨진 칠이와 금비는 우울해 보였다. 금비는 경계심 많고 새침한 성격이지만, 슬퍼하는 칠이를 옆에서 위로해주는 것 같다고 강씨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얼른 와봐. 금비도 똑같은 증상이야.”
다시 가보니 금비는 은이처럼 비틀거리며 힘없이 주저 앉아 있었다. 몸이 아파 경계심이 심해진 금비를 겨우 병원으로 데려갔다. 치료와 검사를 했지만 결국 금비도 목숨을 잃었다. 검사 결과도 은이와 같았다.
강씨는 슬프고 화가 나고 무서웠다. 수년째 아무 일 없이 자라던 고양이들이 불과 10여 일 만에 세 마리가 죽고 한 마리가 사라졌다. 거리에 사는 녀석들이 안타까워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중성화 수술도 시키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돌보던 고양이들이다.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글이 도화선이 되었을까. 그 글을 보고, 혹은 누군가 그 글을 쓰고 이곳에 와서 고양이들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강씨는 작은 증거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금비가 죽은 주변을 다시 꼼꼼히 살펴봤다. 처음 보는 고양이 사료가 바닥에 뿌려져 있었다. 누군가 캔사료를 따서 부어놓고 간 듯했다. 강씨는 마치 탐정처럼 조심스럽게 금비의 사체와 함께 이 사료 흔적도 수거해 성분 검사를 의뢰했다.
며칠 후 등오와 은이의 부검 결과가 나왔다.
고양이 살해 증거 ‘부동액’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동오와 은이에게선 에틸렌 글리콜(ethylene glycol)이라는 성분이 검출됐다. 추가로 부검한 금비의 사체와, 함께 보낸 사료 흔적에서도 같은 성분이 나왔다. 에틸렌 글리콜은 자동차 연료를 얼지 않게 해주는 부동액의 주 성분이다.
누군가 일부러 부동액을 사료에 섞어 고양이들을 죽였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모방 범죄가 우려되지만, 이미 학대자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져 있고, 주변의 경각심과 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부동액이 사용됐음을 밝힌다.)
에틸렌 글리콜은 무색무취한 부동액의 주성분이지만, 단맛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맛은 달지만 먹었을 때의 결과는 결코 달콤하지 않다. 구토, 쇠약, 대사성산증, 급성신부전, 발작, 혼수, 호흡부전 등의 증상을 보이다 사망한다. 고양이는 체중 1㎏당 최소 1.4㎖면 치사량이다. 실제로는 부동액을 한두 번 핥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이다.
강씨는 “의심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했다. 사체가 발견된 곳 주변에서 고양이 간식 포장지의 뜯겨진 끝부분이 버려진 걸 발견한 적이 있다. 강씨가 지금까지 이 근처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제품이었다.
금비가 죽은 뒤 순찰을 돌던 중 의심스런 20대 남성 몇 사람을 발견하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죽은 밥자리에서 나오는 걸 강씨가 붙잡아 물었다. 그들은 고양이들이 추울까봐 핫팩을 놓아주려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고양이가 죽은 일이 있었거든요.”
“다 죽었나요?” 강씨가 의심스럽다는 듯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강씨는 이 남성이 의심스러워 전화번호와 신분증을 확인해도 되냐고 물었다. 남자는 선뜻 번호와 신분증을 보여줬다.
누구나 살 수 있는 독극물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며 접근하는 낯선 이들이 의심스러운 것은 비슷한 일이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5월에는 충남 계룡시에서 길고양이 급식소에 사료를 주는 척 다가가 부동액을 뿌리던 20대 남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 남자는 부동액을 작은 분무기에 담아 사료에 뿌렸다.
별 다른 이유 없이 고양이를 죽이고 학대하는 이들 사이에서 ‘부동액 테러’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부동액은 개나 고양이 또는 소, 돼지는 물론이고 사람이 섭취해도 매우 치명적이다.
부동액을 먹고 죽거나 다친 이들의 이야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2022년 9월 인천에서는 음료수에 부동액을 타 60대 어머니에 먹여 살해한 친딸이 붙잡혔다. 보험금을 노리고 어머니를 죽인 것이다.
부동액은 매우 위함한 독극물이지만 아무런 제재없이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유명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2~3l 들이 부동액이 1만원선에서 판매된다. 부동액 겉면에 ‘어린이 보호포장’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인 것과 “위험 마시면 유해하거나 치명적임. 즉시 의사에게 문의할 것”이라는 경고 문구가 쓰인 것이 위험성을 알리는 전부다. 음료로 오인하지 않도록 시중에서 파는 부동액은 색소를 더했지만, 비슷한 색의 음료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차고가 딸린 주택이 많은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반려동물이나 야생동물이 부동액을 먹고 죽거나 다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 때문에 수의사들과 동물보호단체들은 부동액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함부로 구입하지 못하게 하거나, 더 안전한 성분으로 대체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쉽게 먹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굉장히 쓴맛이 나는 데나토늄 벤조에이트(denatonium benzoate)를 부동액에 첨가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한 번만 핥아도 매우 쓴 맛이 느껴지기 때문에 실수로 먹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아이들이 쉽게 입에 넣을 수 있는 게임팩 등의 제품에 첨가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선 부동액 생산시 데나토늄 벤조에이트을 첨가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부동액 테러 막으려면
부동액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일단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동물단체들의 주장이다. 아무 이유없이 길고양이를 죽이는 부동액 테러는 명백한 범죄다. 하지만 부동액 테러를 적발해 처벌하는 길이 매우 까다롭다. 범행 현장 적발이나 범행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 길고양이를 노린 부동액 테러가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역시 아직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북서울꿈의숲 사건은 범행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고 한다. 관할인 서울 강북경찰서 관계자는 “강씨가 의심스럽다며 제보한 인물은 혐의를 부인했고, 다른 증거를 찾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소개한 계룡시에서 벌어진 부동액 사건도 결국 고양이가 부동액이 묻은 사료를 먹고 숨졌다는 직접적 증거를 확인할 수 없어 사료의 효용을 훼손했다는 재물손괴죄로 벌금 100만원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부동액 테러를 밝히기 위해선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들 뿐 아니라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 등오처럼 아무런 증상이나 흔적 없이 죽어있는 경우라도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바로 신고하고 부검을 의뢰한 뒤 주변의 사료나 현장 영상 등 증거를 찾아야 한다. 부동액을 사용할 일이 없는 데도 이를 구입하거나 작은 분무기에 소지하고 다니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다면 잘 지켜봐야 한다.
계룡시 사건을 포함해 길고양이 학대자를 끈질기게 추적해 온 김미나씨는 “부동액 테러를 우려하는 이들 중에는 사료에 키친타월을 깔아 부동액의 색소가 번져 나오도록 하거나 멧돼지 방지용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3040530001
디시인사이드에는 북서울꿈의숲 사건이 알려지자 범인을 ‘영웅’이라고 묘사하거나, 사건 수사를 두고 ‘인력낭비’라며 조롱했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누군가가 고양이 살해 방법을 공공연히 공유하고 있었다.
부검으로 사인이 밝혀진 등오와 은이, 금비는 맘껏 뛰놀던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부검한 동물은 전염병 예방 등을 이유로 소각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들이 밥자리와 신상을 공개할 경우 위협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강씨는 세상을 떠난 고양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범인을 반드시 붙잡아 다른 희생이 없길 바란다며 지난 22일 인터뷰에 응했다.
“칠이가 혼자 남게 되니까 우울한지 밥도 잘 안 먹고 기운이 없어 보였어요. 이제는 조금 괜찮아진 것 같지만 걱정이네요.” 강씨는 남은 칠이를 걱정했다. 칠이가 주어진 수명을 무사히 안고 살아가는 것이 강씨의 바람이었다.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는 다시 읽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장문의 내러티브 기사로 소개하는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의 버티컬 채널입니다.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는 이들과 영감을 나눕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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