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위해 쓴 詩, 김광석 마지막 노래로… 시와 노래는 다르지 않더라

이영관 기자 2024. 1. 3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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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38] 시인 정호승
정호승 시인은 “대구에 눈이 내렸을 때 찍은 어릴 적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눈사람을 100개도 넘게 만들었을 거다”라며 “그 시절 만든 눈사람은 제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봄이 와도 녹지 않는 눈사람을 지금도 기다린다”고 했다. /김동환 기자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

대구 수성구 정호승문학관. 입구에 들어서자 정호승(74) 시인은 벽면의 이런 글귀를 가리켰다. 초상화·동상 같은 개인의 얼굴 없이 오직 시와 글로 지은 이 문학관을 상징한다고 했다. 행정복지센터가 이전해 빈 건물이 지자체 주도로 작년 문학관이 됐다. 정호승이 살던 고향 집과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곳. 1968년 경희대 국문학과에 입학하며 대구를 떠난 그는 이곳에 흐르는 범어천을 ‘시의 모천(母川)’이라 여겨 왔다. 민주주의·산업화의 뒤안길에 선 이들을 위로해 온 그가 지은 시의 숲을 함께 거닐며, 시대의 얼굴을 살폈다.

◇“대학 다니기 위해 신춘문예 응모… 그 덕에 어머니 틀니 해드려”

신춘문예 당선을 알리는 전보엔 청년 정호승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 담겨 있다. 한국일보(동시·1972), 대한일보(시·1973), 조선일보(소설·1982) 신춘문예 3관왕.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은행을 그만두고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난’이 평생 화두가 됐다. 대구 기와집 본채를 세놓고 그의 가족은 닭장이 있던 자리에 슬레이트로 방 한 칸 집을 지어 나왔다. “가족들은 가난을 이기기 위해 각자도생하기 시작했다. 저도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대학에 갈 수 없었다.” 문예 장학생으로 경희대에 들어간 후로도, 등단을 못 하면 2학년부터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다. 군대에서 한국일보·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복학할 수 있었다. “신춘문예 상금으로 어머니의 틀니를 해드렸다. 가계부에 남몰래 몽당연필로 시를 쓰며, 가난의 고통을 견뎠던 어머니였다.”

1982년 정호승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됐을 때 받은 전보. 가운데 전보에는 ‘귀하의 조선일보 신춘문예 응모작품 ‘위령제’가 당선되었음을 축하합니다/ 당선소감과 약력(2백자 원고지 3장 이내) 및 사진 1장을/ 12월 25일까지 등기속달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정호승 문학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로 당선될 때 받은 전보는 각별하다. “시인으로 등단한 상태여서 아들 이름으로 투고했다. 소설에 대한 꿈이 있었다. 어릴 적 헌책방에서 ‘현대문학’을 사서 읽으며, 어른 세계의 비밀을 보며 자랐다. 그게 정말 재밌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가난은 미덕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된 시인은 교사, 잡지사 기자 등으로 일했다. 1991년 소설을 쓰려고 마지막 회사인 월간조선을 관뒀다. 5년을 매달렸지만 결과는 실패. 최근 출간한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 그는 “속력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며 “내 문학적 기질에 맞는 장르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국가 권력이 지배하던 시대… 참여성과 서정성 모두 잡고 싶었다”

문학관 한편에는 빛바랜 육필 원고가 쌓여 있다. 1979년 출간한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원고도 그곳에 있다. 시집 14권 중에서 ‘슬픔이 기쁨에게’는 작년에도 중쇄를 찍은 그의 대표작.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며 공동체적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다. 흔히 ‘서정 시인’으로 불리는 시인이지만, “시대 상황과 서정성을 모두 지닌 시를 쓰겠다”는 결기로 쓴 시다. 당시 폭압적 정치 상황을 ‘기쁨’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고통을 ‘슬픔’으로 은유했다. “개인의 모발조차 국가 권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였다. 저는 1970년대를 같이 산 김지하 시인처럼 직접적으로 저항하진 못해,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제 나름대로 참여성과 민중성을 지향하되 서정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인 ‘위령제’가 실린 신문 지면. /정호승 문학관

이 시집의 표지는 맹인 부부가 노래를 부르고, 갓난아이를 업고 있는 목판화다. 이상국 화백이 광화문 육교 아래에서 구걸하는 이들의 모습을 따스하게 포착한 시 ‘맹인 부부 가수’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시인은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는 맹인 부부를 봤다”며 1970년대 후반을 회상했다. “사람들이 돈도 안 주고 지나가는데 계속 노래를 부르더라. 그러다 남자가 구멍가게에서 하드 두 개를 사 와서, 더듬더듬 아내에게 하나를 줬다. 하드를 먹는 둘의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매우 컸고 한편으론 사회가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던 때였지만, 그들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정호승은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의 상상력을 길어 올리는, 아주 오래된 시인이자 동시에 아주 새로운 시인”(김승희)이란 평을 받는다. 1976년 ‘반시’라는 동인 활동을 시작하며 품은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란 신념을 평생 지켜왔다. “현실이 배제된 채로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1960년대의 시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언어의 미학적 구조보다는, 인간 삶의 고통을 위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왔다.”

가수 김광석의 1주기를 추모하며 1997년 나온 앨범 ‘가객’. 정호승이 쓴 시 ‘부치지 않은 편지’에 곡을 붙인 김광석의 노래가 담겼다. /정호승 문학관

◇”시 속에 노래가 있고, 노래 속에 시가 있다”

가수 김광석(1964~1996)의 1주기를 추모하며 1997년 나온 앨범 ‘가객’은 정호승 시인에게 운명과 같은 물건. 1987년 발간된 그의 세 번째 시집 ‘새벽편지’에 수록된 시 ‘부치지 않은 편지’가 김광석의 목소리로 이 앨범에 실렸다. 그의 목소리가 담긴 마지막 노래가 됐다. 죽기 직전 작곡가 백창우와 한국 시를 노래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것이 유일하게 남았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40대 중반 우연히 콘서트에서 김광석을 만난 적이 있다. 마침 고향도 대구이고….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에 직접 샀다. 가끔 그의 목소리로 ‘부치지 않은 편지’를 들을 때마다 울음이 솟는다.” 이 시는 1987년 사망한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며 쓴 작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추모곡에 쓰이는 것도 한없이 기쁘지만, 원래는 박종철 열사를 기리기 위한 시다. 시대적 죽음에 헌사하는 시와 노래로 계속해서 재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정호승의 시는 ‘이별 노래’(이동원), ‘우리가 어느 별에서’(안치환)를 비롯해 80여 편이 노래로 만들어졌다. “저는 문학인이지 음악인이 아니란 편협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발표된 이후, 작곡가 백창우씨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시 속에 노래가 있고 노래 속에 시가 있다는 것을.”

1979년 출간한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육필 원고. /김동환 기자

정호승의 글과 책, 스승·친구 등 인연의 물건으로 가득 찬 이 문학관은 작년 3월 개관 이후 9000여 명이 다녀갔다. 반세기 만에 고향에 돌아온 소감을 묻자, 그는 5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대학 때 저를 따라 서울에 올라온 이후, 대구를 찾은 적이 없다. 항상 어머니가 계시는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별을 바라보며 사는 시인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라. ‘무슨 걱정이 많으세요’ 물어보니, ‘내가 죽고 나면 네가 어떻게 살지 그것이 걱정이다’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많은 잘못을 저지른 저를 용서해주셨듯, 남과 이웃과 가족을 용서하는 것이 제게 남은 마지막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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