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사라진 설연휴 극장가… “더이상 명절특수는 없다”

최지선 기자 2024. 1. 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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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연휴 극장가는 여느 명절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압도적인 규모로 관객을 홀리는 블록버스터가 늘 한두 편씩 개봉한 예년과 달리 올해는 한국영화 개봉작 3편이 모두 제작비 100억 원 미만의 중·저예산 작품들이다.

지난해 설 연휴 개봉한 영화 '유령'은 제작비 137억 원이 투입됐지만 관객 수가 66만 명에 그쳤고, '교섭' 역시 150억 원을 들이고도 관객이 172만 명밖에 들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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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12억-‘도그데이즈’ 80억 등
韓영화 개봉작 3편 모두 중저예산
“OTT 확산으로 영화개봉전략 변화
기존 흥행공식보다 영화의 질 중시”
설 연휴 극장가를 찾는 영화 ‘소풍’(왼쪽 사진)과 ‘도그데이즈’. 배우 나문희 김영옥이 주연한 ‘소풍’은 쇠약해지는 노인의 삶을 그린 작품. ‘도그데이즈’는 배우 윤여정 유해진 등이 강아지를 중심으로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따뜻한 옴니버스 영화다. 두 영화는 모두 제작비 100억 원 미만의 중·저예산 영화다. CJ ENM·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설 연휴 극장가는 여느 명절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압도적인 규모로 관객을 홀리는 블록버스터가 늘 한두 편씩 개봉한 예년과 달리 올해는 한국영화 개봉작 3편이 모두 제작비 100억 원 미만의 중·저예산 작품들이다. 그간 명절 연휴가 극장가의 성수기였음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팬데믹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산되면서 영화 개봉 전략에도 ‘뉴노멀’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설 연휴 극장가에서 맞붙는 한국영화 중 가장 먼저 홍보에 나선 작품은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의 ‘소풍’이다. 나문희(83) 김영옥(87) 박근형(84)이 주연한 영화로 노인의 일상과 죽음을 현실감 있게 풀어냈다. 약 12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저예산 작품이다. 나문희는 “영화에 노인네들만 나온다고 하니 투자자가 참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극 중 은심(나문희)은 패스트푸드점 무인 키오스크에서 버벅대며 햄버거를 6개나 주문하는가 하면, 금순(김영옥)은 허리가 말을 안 들어 누운 채 대소변 실수를 한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노인의 삶’이 여운을 남긴다.

CJ ENM은 영화 ‘도그데이즈’로 설 연휴에 출사표를 냈다. 강아지로 인해 얽히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다. 윤여정 유해진 김서형 등이 출연했고, 신인인 김덕민 감독이 연출한 제작비 80여억 원의 중소 규모 영화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조진웅 김희애 주연의 ‘데드맨’을 개봉한다. 이름을 팔며 살아온 바지사장 세계의 에이스 이만재(조진웅)가 1000억 원 횡령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75억 원이 들어 역시 중저예산 작품이다.

최소 2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작 한국영화가 올 설 연휴에 개봉되지 않는 건 이례적이다. 지난해 명절 개봉 영화들이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성적이 좋지 않았던 영향이 크다. 지난해 설 연휴 개봉한 영화 ‘유령’은 제작비 137억 원이 투입됐지만 관객 수가 66만 명에 그쳤고, ‘교섭’ 역시 150억 원을 들이고도 관객이 172만 명밖에 들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 개봉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1947 보스톤’ ‘거미집’ 모두 손익분기점 달성에 실패했다.

반면 비성수기로 꼽히는 5월과 11월에 각각 개봉한 ‘범죄도시3’와 ‘서울의 봄’은 100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개봉 시기보다 영화의 질이 중요해졌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이전에는 명절을 중심으로 1년 개봉 스케줄을 짰지만 이제는 시기보다 작품 흥행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OTT 확산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OTT가 콘텐츠 소비의 시공간 개념을 바꿔놓으면서 기존 흥행 공식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됐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소비자들이 이제는 영화를 볼 때 ‘꼭 극장에 가야 하는지’, ‘꼭 지금 봐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명절이면 극장 개봉 영화만 수동적으로 보던 시대는 끝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개봉 시기와 상관없이 탄탄한 기획과 대본이 바탕이 되는 작품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제작사들도 거액의 제작비, 스펙터클, 가족애 코드를 넣은 ‘1000만 영화’ 공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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