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정부 규제완화 여파...요동치는 땅값·집값

한겨레 2024. 1. 2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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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51화 부동산 대란 1
2003년 9월3일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국민임대주택 단지를 찾아 공공 임대주택 등 현황에 관한 설명을 듣고 두 집을 직접 방문해 살펴본 뒤, 주민 대표의 건의를 듣는 등 입주민들과 환담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3월27일(목) 오전 10시 건교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었다. 공공임대주택을 올해 8만호, 임기 5년 동안 50만호 건설한다는 대목을 두고 민주당 김효석 의원이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도 더 지으라고 건의했다. 수도권에는 그린벨트 말고는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만한 빈 땅이 딱히 없으니 그린벨트 규제도 재고하라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인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나중에 새누리당 국회의원)가 부동산세제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판교신도시를 건설하려면 개발이익 환수를 철저히 하라고 주문했다. 당시 시민단체에서 요구하던 아파트 후분양과 관련해서는 건설사들의 자금 압박을 우려해 주택공사부터 시범실시할 것을 권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무리 발언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은 중요하다. 국민의정부가 경기 살리려고 각종 부동산 규제를 푼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인수위 경제2분과 보고 때도 국민의정부 때 부동산규제 완화 목록을 보고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많이 풀었습니까?”라고 말했었다.

아쉬웠던 DJ 부동산 정책
김태동 수석에 “부동산 개혁” 주문
“위기 해결 급해…여력 없다” 답해
정권 초 재경부 업무보고 받은 DJ
“거래세 축소 보유세로” 지시했지만
실제론 부동산 규제완화만 이뤄져

2006년 1월16일 토지정의시민연대와 헨리 조지 연구회가 공동주최한 정책토론회가 열려 정치권, 학계 인사 등이 부동산 보유세 강화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박승화 선임기자

1997년 말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와 더불어 집권한 국민의정부는 경제위기라는 심각한 발등의 불을 끄느라 멀리 내다보는 개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당시 대구에서 10여명 교수와 ‘헨리 조지 연구회’를 만들어 10년째 부동산 문제를 토론하고 있었다. 회원들은 모처럼 들어선 진보개혁 성향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개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게 아는 사이인 김태동 경제수석에게 부동산 개혁을 강조해달라고 주문했다. 경실련 활동을 활발히 해오던 김태동 교수(성균관대)는 ‘땅’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해 오던 대표적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어렵사리 난생처음 청와대와 전화통화를 하게 됐는데, 김 수석 목소리에 영 힘이 없었다. 청와대 요직을 맡았으니 평소 지론대로 부동산 개혁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말했더니, 너무 바빠서 여유가 전혀 없고 갑자기 들이닥친 온갖 위기 해결이 급해 그런 문제는 관심조차 가질 수 없다는 얘기였다. 통화 내용을 전해 들은 회원들의 걱정이 더 커졌다.

그리고 얼마 뒤 1998년 봄, 각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처음으로 티브이(TV)로 중계됐다. 참신한 시도였다. 첫회 재경부 편을 열심히 시청하는데, 끝부분 김대중 대통령 지시사항 중에 “부동산 세금이 과거 거래세 위주였는데 잘못이니 앞으로는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 중심으로 재편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진보학계에서 늘 주장해오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이 지시했으니 이제는 개혁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노련한 관료들은 교묘하게 대통령 지시조차 사보타주했다. 이것을 감시하고 개혁을 견인해야 할 김태동 경제수석은 석달 만에 정책수석으로 밀려나더니 1년 뒤에는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정책 현장에서 멀어졌다. 야당 시절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자문해온 중경회(김대중 경제를 생각하는 모임) 멤버들(김태동, 윤원배 금감위 부위원장, 김효석 의원,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장 등)도 권력 실세와의 불화로 하루아침에 밀려나 힘을 쓰지 못했다. 그 뒤 국민의정부에서 부동산 개혁은 사라지고 오직 경기부양을 위한 부동산 규제 해제만 있었다. 주동 세력은 물론 노회한 관료들이다. 유능한 것으로 알려진 경제관료 상당수가 사실은 반개혁의 거두라는 사실을 우리 국민은 잘 모른다.

신도시 두곳 추가 논의
수도권 집중에 시민단체 등 불만 커
권오규 수석·조윤제 보좌관 등
“주택공급 확대를…신도시 불가피”
나는 “신도시 아닌 분권, 분산이 답”
노 대통령 “보유세 강화 검토하라”

‘10·29대책’ 발표 직전 발리 출장
기자들 온통 부동산 이야기만

2003년 5월7일(수) 9시 수석회의에서 박주현 국민참여수석이 수도권에 신도시 두곳(판교·동탄)을 곧 지정할 계획인데, 환경오염과 수도권 인구집중을 방치하는 정부의 태도에 시민단체의 불만이 크다고 보고했다. 노 대통령이 부동산 대책이 준비돼 있는지 질문하니 권오규 정책수석이 강남 재개발의 어려움, 난개발 우려를 이야기하며 신도시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조윤제 경제보좌관도 시장원리를 강조하며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신도시 건설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공학도지만 경제학 박사이기도 했던 김태유 과학기술보좌관은 프랑스는 중앙집중형 발전인데 독일은 분산형 발전을 추구하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걱정했다. “서울 집값이 오르면 분산효과가 발생하고, 동시에 전국 지가를 자극, 파급하는 효과가 있는데 대통령의 걱정은 바로 후자다.” 내가 말했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개인이나 기업에는 이익이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큰 문제다. 이것은 시장의 실패이므로 정부가 개입해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강남의 비싼 땅값은 사람이 오지 말라는 신호인데 이를 무시하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모순이고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분권, 분산으로 가야 한다. 소설가 이호철이 ‘서울은 만원이다’를 쓴 지 40년이 되도록 역대 정부가 말만 앞세웠지 진정으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없다.”

가만히 듣고 있던 노 대통령이 부동산 보유세에 관해 물었다. 박주현 수석이 집보다 차 세금이 더 많다고 답했고 이어 내가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보유세가 90% 이상인데 한국은 거꾸로 거래세가 80% 이상이다. 보유세를 강화해야 하는데 재경부와 행자부, 행자부와 지자체 간 갈등이 문제다. (지방세인 보유세를) 국토보유세 식으로 중앙정부 세금으로 전환할 연구를 해야 한다. 보유세가 이론적으로 부작용이 적은 가장 좋은 세금이다. 단 주택은 가볍게, 토지는 무겁게 과세하는 게 옳다. 미국 피츠버그시나 호주가 이렇게 해서 좋은 효과를 봤다.” 노 대통령이 지시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서민들이 일할 의욕을 잃는다. 거품경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대책을 마련하라. 부동산 보유세가 답인지를 정책실에서 연구하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부동산 전문가를 초청해 열다섯차례 회의를 했다. 재경부, 행자부, 국세청 관료들과 외부에서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을 번역한 ‘헨리 조지 연구회’ 좌장 김윤상 교수(경북대)와 김성식(엘지연구원), 김정훈(조세연구원), 김선덕(건설산업전략연구소), 장영희(서울시정개발연구원) 등 전문가들, 참여연대 김남근, 하승수 변호사 등이 자주 참석해 좋은 의견을 내주었다. 이들의 합작품이 참여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인 10·29 대책이다.

2003년 9월3일 서민주거안정 관련 현장을 방문해 김진 주공 사장으로부터 현황보고를 받는 노무현 대통령 부부. 노무현사료관 제공

9월3일(수) 오후 2시 노 대통령의 경기 의왕 국민임대주택 방문을 수행했다. 노인들인 주민 대표 2명이 몸짓, 손짓까지 동원해 집 구하게 된 기쁨을 말하며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임대주택을 늘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노 대통령이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임대주택을 늘리고 부동산값을 꼭 잡겠다”고 연설해 주민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또 고등학교 다닐 때 25번 이사하고, 신혼 때 미국 원조로 지어진 해운대 에이아이디(AID)아파트 살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의 부러움, 부산의 언덕배기 빽빽한 집을 올려다보던 기억 등을 이야기했다. 노 대통령이 “김구 선생 손자”라며 김진 주공 사장을 소개하니 또다시 박수가 터졌다. 김진 사장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라한 모습이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2003년 9월3일 서민주거안정 관련 현장 방문 후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 부부.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가을은 부동산으로 온통 난리였다. 국민의정부에서 시행한 전면적 부동산 규제완화 여파로 2002년 전국 지가 상승률이 7%에 이르렀는데, 참여정부 들어서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2003년 10월6일 대통령을 따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한중일 정상회담에 갔는데, 한국 기자단이 수십명 동행했다. 밤 깊은 발리 해변에서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수십명 기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는데 화제는 오직 하나, 부동산이었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기자들은 부동산만 이야기하고 부동산만 질문했다. 그야말로 부동산 대란의 시기였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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