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데이즈’ 윤여정 “반려견과의 연기 호흡 힘들어…감독과 전우애로 선택”[인터뷰]

2024. 1. 2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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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파친코’ 이후 3년 만 국내 작품
“나랑 닮은 민서…나처럼 연기했다”
올해 77세…“과거 연기 잘한다 착각”
[CJ ENM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반려견과의 호흡이요? 호흡이 아니라 투쟁이었어요. 반려견이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자기 맘대로 하니 아주 괴로웠죠. 완다는 훈련도 안된 7개월 생이었어요.”

배우 윤여정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반려견 완다와 함께 연기한 소감을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말했다.

영화 ‘도그데이즈’는 사람들이 반려견을 매개로 따뜻한 관계를 맺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여러 에피소드가 엮인 옴니버스 형식을 취한다. 이중 윤여정은 사회적으론 성공했지만, 가족 없이 완다와 둘이 외롭게 사는 유명 건축가 민서로 분했다. 영화 ‘미나리’(2021)와 애플TV+ 드라마 ‘파친코’(2022)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뒤 3년 만에 복귀한 국내 작품이다.

[CJ ENM 제공]

영화는 ‘영웅’, ‘그것만이 내 세상’의 조감독 출신인 김덕민 감독의 입봉작이다. 윤여정은 김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로 ‘전우애’를 꼽았다.

“우린 오래 전에 만났는데 서로가 ‘노바디(Nobody, 유명하지 않은 사람)’여서 아무 취급을 못 받았어요. 그래서 전우애가 생겼죠. 김 감독이 19년 동안 조감독을 했는데 입봉을 하지 못해서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김 감독이 입봉하면 내가 꼭 출연하리라 하고 약속했어요.”

오랜 시간 전우애로 다져진 관계인 덕분에 영화 촬영 역시 수월했다고 윤여정은 전했다.

“다 좋았어요. 김 감독이 19년을 조감독 생활을 해서 그런지 너무 준비를 많이 해오고 배우나 스탭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노력해줬어요. 제가 ‘이번엔 사람 잘 봤구나’ 뿌듯했죠.”

[CJ ENM 제공]

영화 대본은 당초 윤여정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민서에겐 윤여정의 특유의 까칠한 말투와 행동이 투영돼 있다. 대본상 민서의 원래 이름도 윤여정이었다. 때문에 윤여정은 이번 영화에서 최대한 원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이번에 다 제 옷, 제 신발을 착용했어요. 의상 값이 하나도 안 들었죠. 애초에 그렇게 하려고 맘을 먹었어요. 민서란 캐릭터를 저와 비슷하게 써놨기 때문에 저처럼 하면 될 것 같았어요.”

민서는 유일한 가족인 반려견에게 의지한 채 살아가는 외로운 인물이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살지만 식사는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사람들과 저녁 약속도 잡지 않는다. 윤여정에게 외로움에 대해 묻자 그는 오히려 외로움을 삶의 곁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은 늘 외로웠고, 외로움은 연습해야 된다 생각해요. 늙을수록 외로워지려고 노력해야죠. 다행히 전 혼자 있는 걸 원래 좋아하는 편이에요.”

윤여정에게 촬영 도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 손등을 다쳤던 때를 꼽았다. 현장에서 어닝(햇볕 차단 천막) 받침대가 손등에 떨어지면서 큰 멍이 들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현장에서 개인적인 문제로 촬영을 지연시키는 행동은 하기 싫어요. 그건 민폐라고 생각해요. 저희 세대는 그렇게 배웠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촬영은 했으니까요.”

[CJ ENM 제공]

올해로 77세. 지난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은 어느 새 배우 생활만 거의 환갑에 이른다. 그는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정작 윤여정은 당시를 자신의 연기가 좋다고 착각했던 시절이라고 되돌아봤다.

“그땐 제가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어요. 청룡 여우주연상을 탔으니까요. 그런데 38살 때 배우 생활을 다시 시작했을 때 깨달았어요. ‘내가 못하는구나. 허명이었구나’ 알게 됐죠.”

윤여정은 결혼 이후 13년 간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복귀했다. 당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두 아이를 둔 돌싱맘이라는 타이틀은 주홍글씨와 다름 없었다. 때문에 복귀해서도 2년 간 작품 제의가 없었다고. 그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김수현 작가였다.

“이혼 후 복귀했을 때 아무도 절 못 쓰게 했어요. 암묵적인 거였죠. 당시 김 작가가 제일 잘 나가는 작가였는데 저보고 ‘너는 재능이 있으니 내 도움 없이도 자립할 수 있다. 내 드라마에 나오는 순간 네 덕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내 덕이라고 할 것’이라며 혼자 일어서라고 했어요. 그런데 2년 동안 아무도 일을 안 주더라고요. 그때서야 김 작가가 절 처음으로 써줬어요. 그 사람이 제일 고마워요.”

윤여정의 배우로서 삶은 단순히 연기력으로만 점철되지 않는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한국 사회의 편견에 홀로 맞서는 투쟁의 시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윤여정은 배우라는 직업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매 순간 느껴요. 배우를 업으로 삼길 잘했다고요.”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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